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릭 루빈 <창조적 행위 : 존재의 방식>
자꾸 꾀가 나니 큰 일이다.
이거까지만 하고 잘까?, 5분만 더 잘까,라는 생각이 어느새 쌓여서 새벽루틴을 다 깨뜨릴 지경이다.
새벽 늦게까지 안 자고 노니까 (책 읽고, 글 쓰고, 노랫말 쓰고 만들고..)
정작 진짜 아침해가 뜨는 새벽에는 이렇게 책상에서 졸고 있는 것이다.
책 읽다 계속 눈이 감겨서 오늘 새벽독서와 글 발행이 늦어진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을 두려워하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의 모든 재능과 지식을 마을 돕는 수단으로 생각하라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신중하라. 그러나 말은 적게 하라
_수피
남의 눈을 통해서만 제 흠집을 볼 수 있다.
_중국 속담
세상사 살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상대하고 싶지 않아도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으며 감내해야 할 시간들도 있다.
그때마다 내가 떠올리는 사자성어가 있다.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이 나가르침을 주는 대상을 이르는 말.(네이버 국어사전)
오늘 읽은 부분에서도 중국 금언이 나온다.
"만일 세 사람이 모인다면 나는 반드시 거기서 두 스승을 발견한다"(297면)
선인은 그 자체로 본받고, 악인은 자기 자신을 바로잡는 스승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날 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오... 오늘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분을 만났구나...' 속으로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남을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 쉬운 말로 상처 주고 남을 깎아내리지는 않는지 다시 나를 뒤돌아 본다.
여럿이 모일 때 나는 선인으로 그의 스승이 되는지 악인으로 그의 스승이 되는지 나 스스로 판단해 볼 일이다.
예술가는 우주에 낚싯줄을 던진다
예술가는 우주에 낚싯줄을 던진다. 영감이나 인식의 순간이 언제 다가올지는 선택할 수 없다. 다가오는 것을 받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127면)
씨앗이 많이 쌓일수록 선택이 쉬어진다
씨앗이 많이 쌓일수록 선택이 쉬워진다. 예를 들어, 씨앗 100개가 모였을 때 54번 씨앗이 그 무엇보다 당신을 잡아끌 수 있다. 하지만 54번 씨앗 달랑 하나만 있다면 비교할 대상이 없으므로 판단이 더 어렵다(129면)
때로 씨앗의 목적은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원래의 형태와 전혀 닮지 않은 무언가로 변신해서 당신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는 작품이 나를 초월하는 더 거대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좋다.
그래야 가능성에 대한 경외심을 키우고, 씨앗의 생명력이 나의 손끝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129면)
릭 루빈은 영감 수집을 "씨앗"에 비유한다.
씨앗의 가치, 운명을 미리 판단하지 않고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흥미를 끄는 모든 것을 수집해야 창조활동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영감을 수집하는 단계, 즉 씨앗을 모으는 과정에서 너무 적극적으로 자기 색깔을 주입하는 것도 경계하라 말한다.
또한 지름길을 택하거나 목록에서 너무 빨리 지워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과 함께.
생각해 보니 나도 목록에 쌓아뒀던 곡에서 나중에 좋은 멜로디를 찾아내기도 하니 릭 루빈의 말이 맞다는 걸 느낀다.
그 당시에는 별로였던 것 같아도 노래를 듣는 시간이나 감정에 따라 그 멜로디가 와닿기도 하고 반대로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지나고 들어보면 너무 과한 경우도 있다.
자기 기준의 틀에서 너무 이른 판단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능성에 대한 경외심"
내가 그리고, 만들고, 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초월하는 더 큰 우주의 힘이 그것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나를 거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상상한 이상으로 더 훌륭한 무엇이 되기 위한 가능성의 씨앗이 내 주위에 가득하다는 마음.
그 마음으로 오늘도 쓰고, 그리고, 노랫말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