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절라 더크워스 <그릿>, 사아디 <사아디의 우화정원>
앤절라 더크워스는 심리학자가 되기 전에 세계적 경영컨설팅 회사에 근무했었다.
하지만 그는 회사를 떠나 외곽 도시 지역의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는 대학에 다니면서도 인근 공립학교 아이들의 개인지도나 멘토가 되어주기도 하고 무료학력 신장 프로그램을 만들어 2년 동안 운영하기도 했었다.
교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는 그녀.
그녀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떤 걸 느꼈고 왜 교사를 그만두고 심리학자가 되었을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그녀가 가르치던 학생은 12~13세였다.
수학에 두각을 나타내던 학생들 중 일부가 그저 그런 성적을 받은대 반해, 처음에 고전했던 학생들 중 다수가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녀는 그런 학생들, '과잉성취자'의 특징을 서술했다.
'과잉성취자'의 특징
- 매일 준비물을 확실히 챙겨서 수업에 들어왔다.
- 수업에 집중해 필기하고 질문을 했다
-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몇 번이나 다시 복습했다
- 점심시간이나 선택과목 시간에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40면 참고)
그녀는 결혼 후 학업 성적을 토대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로웰고등학교의 수학 교사로 지낸다.
심화반에 들지 못한 일반반 수학을 가르치다 "배움을 갈망하는 학생" , 데이비드 르엉을 만난다.
그녀는 그가 수업 시간에 완전히 몰입하고, 수업 후에는 좀 더 어려운 과제를 달라고 부탁하는 그를 심화반으로 추천해서 보낸다.
기하학 수업의 첫 시험에서 D를 받았던 그가 B를 받았다.
학점 D를 받은 에이비드 르엉, 그의 선택이 무엇이었을까?
낙담했죠.
정말 실망했지만 그 일을 곱씹고 있지는 않았어요.
다음에 어떡해야 할지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그는 공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고 UCLA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로켓 과학자'가 됐다.
난도가 높고 진도가 빠른 수학 수업을 들을 준비가 안 됐다고 여겼던 소년이 에어로스페이스 공학자가 된 것이다.
앤절라 더크워스는 몇 년간 교직 생활을 하며 깨닫는다.
재능이 성취를 좌우하지 않는다
그녀는 노력의 결실에 대해 점점 흥미를 갖게 되고 결국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교직을 떠난다.
13세기 페르시아 사람 사아디가 들려준 우화를 모은 책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시공"을 초월한 진실을 내가 찾을 수 있을까?
책은 손바닥만 한 사이즈로 아담하다.
글은 짧게는 한 장, 길게는 두어 장이다.
감사하게도 양장본이다.
손에 쥐면 착 감긴다.
표지는 페르시아 정통 무늬일 것 같은 디자인이다.
표지 뒤에 본문 중에서 한 부분을 발췌한 문장이 있다.
아마 이 부분을 읽으면 어떤 느낌인지 여러분도 감이오리라.
딱 한 번
딱 한 번 나는,
나의 불운을 원망하며
불평한 적이 있다.
당시 너무나도 가난하여
신발을 마련할 수 없었기에,
아린 맨발로 투덜거리며
쿠파 신전으로 들어갔다.
그때 거기서 나는
발 없는 사람을 보았다.
- 본문 중에서
좋은 모범
사람들이 루크만에게 물었다.
"누구한테서 그렇게 훌륭한 태도를 배우셨습니까?"
"고약한 태도를 지닌 자들한테서 배웠네."
"어떻게요?"
그들이 하는 고약한 짓을 볼 적마다 나는 저러지 않으리라 다짐했지
"반면교사" (反面敎師) :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을 이르는 말
페르시아 우화 "좋은 모범"을 읽으니 "반면교사"라는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주부 23년 차, 아르바이트 2년 차로 나름의 사회생활에 뛰어든 나는 이 한자를 늘 마음에 갖고 출근한다.
처음엔 이해되지 않는 상대의 행동이나 과한 감정표출을 바라볼 때, 나는 마음으로 생각했다.
"왜 저러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
그런데 이 사자성어를 마음에 담고 살게 되니 비슷한 상황이 오면 마음으로 생각한다.
"오... 오늘도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분. 반면교사.... 나는 이런 상황에 저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깨달음(?)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돈도 벌고 수행도 하는 삶이라... 나쁘지 않다.
새벽독서글 마무리하고 나는 또 "반면교사"의 가르침이 있는 생생한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때론 "반면교사"의 대상이 아닌, 말 그대로 "좋은"의 의미가 긍정으로 읽히는 "좋은 모범"이 되는 삶을 꿈꿔보는건 너무 큰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