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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동심과 눈물

by 윤서린

아르바이트생에게 크리스마스란 그저 엄청 바쁜 날이고 유난히 일복이 많은 나는 이런 공휴일에 알바가 잘 걸린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인데 오전, 오후 알바가 모두 있는 날이다.

우리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건 초등 4학년 막내아들뿐.

성인이 된 두 딸과 곧 성인이 되는 큰 아들은 굳이 내가 뭘 챙기지 않아도 각자 친구들 만나러 나가니 걱정이 없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아침 등교하며 막내가 묻는다.

“엄마, 크리스마스가 뭐 하는 날이야? “

나는 4학년이 된 아들의 이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안다.

산타가 없는 건 눈치채서 이미 알고는 있지만 선물은 받고 싶다. 그러니 나에게 갖고 싶은 선물을 물어봐 달라.

그리고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면 진짜 크리스마스는 뭐 하는 날인지에 대한 순수한 의문도 포함된 질문이다.


나는 산타의 유래와 예수님의 탄생일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게임아이템의 가격도 물었다.

7만 9천 원이라는 게임 아이템 가격을 듣고 이게 맞나 싶어 바로 알았어라는 답을 해주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날에 다행히 남편이 쉬는 날이라 막내의 식사와 감기약을 챙겨 먹일 것을 부탁하고 아르바이트를 갔다.

오전 아르바이트는 재료손질과 설거지가 주 업무인데 1년 넘게 다니다 보니 크리스마스날인 오늘의 노동강도가 극악할 것이라는 것쯤은 예상했다.

역시나 4시간 넘게 설거지 지옥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빈 그릇에 3미터 싱크대가 그릇탑으로 아슬아슬하다.

폭주하듯 설거지를 하고 이것만 마무리하고 화장실을 다녀와야지… 했는데 밀려오는 설거지는 내게 화장실 다녀올 2-3분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장갑과 앞치마를 벗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설거지 탑은 더 이상 쌓을 수 없어 쓰러질 것이고 홀이모들은 우왕좌왕할 것이 뻔했다.


이것만 치우고, 이것만 해치우고… 이러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지났다.

홀주임님은 내게 탈출하라고 눈짓을 했지만 그 많은 설거지를 두고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 30분만 더 도와주고 가자. 그동안 따뜻한 밥 맛있게 얻어먹은 보은은 이런 날 하는 거지…‘


작년에도 이러다가 무임금 50분 노동을 한터라 이번에는 30분 만에 탈출해야겠다 마음먹었건만 앞치마를 벗으려는 순간 집게가 없다고 다급히 나를 찾는 홀이모 때문에 10분이 연장됐다.


겨우 옷가지와 가방을 챙겨 들고 차에 올라탔다. 집에 오는 길은 역시나 대형 쇼핑몰로 몰려든 차들로 길이 막힌다.

15분 거리를 45분 걸려 집에 겨우 도착했다.

1시간 허리라도 펴고 누웠다 오후 알바를 가야지 했는데 집에 도착해 보니 아이는 빵으로 아침 겸 점심을 때운 상태고 피곤에 지친 남편은 겨우 잠에서 깨어있었다.

아이 기침이 심한데 밥도 약도 챙겨 먹이지 않은 남편이 미웠다.

정신없이 볶음밥을 해 아이와 함께 먹고 오후 알바에 갔다.


크리스마스날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로 나와서 외식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특히 어린 초등자녀들과 함께 온 테이블에 자꾸 시선이 간다.

남들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나한테는 왜이렇게 어렵지…


오후 7:30분 막내 이름이 뜨는 전화가 울린다.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구석에서 전화를 받았더니 “엄마, 어디야? 언제 오는데…” 아이가 묻는다.

“어, 엄마 일하는 중인데. 늦게 끝나. 아빠는 뭐 하셔?” “아빠, 자는데… 엄마 빨리 오면 안 돼?”

“미안. 오늘 바쁜 날이라 좀 곤란해. 엄마가 아빠한테 전화해 볼게.”


나는 전화기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전화기 너머로 잠에서 깬 남편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들려온다.

순간 나는 너무 울컥하고 화가 나고 속상했다.

“오늘 크리스마스잖아. 하루종일 잠만 자면 어떡해. 아들은 아빠 쉬는 날이라고 같이 놀 수 있을 거라 기대했을 텐데. 피곤해서 못 나가면 뭐 먹고 싶은지 물어봐서 배달이라고 시켜서 같이 먹고 놀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어… 물어볼게…”

되돌아오는 성의 없는 대답에 화도 나고 서글퍼진다.

‘정말 최악의 크리스마스야.‘

가게로 돌아오니 사장님이 너무 걱정되면 퇴근해도 된다고 하신다.

나는 남편이 있어서 괜찮다고 말하고 큰애들 단체 대화방에 문자를 남겨뒀다.

“막내는 아직 크리스마스 기대하는 초등학생인데… 엄마는 일하고 아빠는 피곤해서 주무시고… 혼자 너무 외로운 듯… 외출한 사람들 집에 가면서 과자나 음료라도 하나씩 사들고 가줘라….”

다들 바쁜지 답이 없다.


다행히 마지막 주문이 조기 마감이라 30분 정도 일찍 끝나 11시에 퇴근하게 됐다.

주방 아르바이트하는 동생에게 오늘은 미안하지만 태워다 줄 수 없겠다고 말한 뒤 근처 편의점으로 달렸다.

‘미리 게임 아이템 선물이라도 기분 좋게 사줄걸. 레고 십만 원짜리 장난감은 되고 게임아이템 7만 9천 원짜리는 왜 안된다고 생각한 걸까?‘

나는 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아르바이트하는 내내 생각해 둔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초콜릿 페레로로쉐를 집었다. 막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이다.

케이크를 사기에도 늦은 시간, 내가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초콜릿 몇 개라니…


찹찹하고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오니 막내가 식탁에 혼자 앉아 뿌링클 치킨을 먹고 있다.

미운 남편은 ”어, 왔어.. “ 하며 거실 돌소파에 누운 채 인사한다.

“왜 혼자 먹어? 누나들이랑 형아는?”

“다 먹고 들어갔어요. 이 치킨 형아가 사줬어요. 엄마도 저랑 같이 먹어요~“

“어? 그거 자기가 주문해 준 거 아니었어?” 무심한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나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핑 돈다.

고3아들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동생 치킨을 사줘서 기특하기도 하고, 이제 초등4학년이니 산타 선물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못나서도 그랬다.

특히 아이 마음도 모르고 하루종일 잠만 잔 남편한테 화가 났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 최악으로 만들까 봐 남편한테 한마디 할까하다 꾹 눌러 참으니 그 서러움에 눈시울이 더 붉어졌다.


나는 울지 않으려 치킨을 입안 가득 넣었다.

“음~ 뿌링클 오랜만에 먹으니 정말 맛있다~~ 정말 맛있어. 그렇지? “

나는 미처 포장도 하지 못한 페레로로쉐를 비닐에서 꺼내주었다.

“늦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순간 막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이거 내가 완전 좋아하는 초콜릿인데?”

아이는 치킨을 내려놓고 탁탁한 포장지를 뜯어 소중한 초콜릿 두 알을 나에게 건넨다.

그리고 자기도 금박 종이를 벗겨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물곤 “역시~ 최고의 맛이야” 하며 웃는다.

“누나하고 형한테도 하나씩 주는 거 어때? 이제 크리스마스가 5분 정도 남았는데…”

막내는 큰 누나 방으로 찾아가 “큰 누나 ~메리 크리스마스~”하며 초콜릿 하나를 건넸다.

큰 아이는 막내를 부둥켜안고 까르르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한다.

작은 누나, 형아까지 초콜릿 전달이 끝나고 식탁으로 돌아온 막내에게 초콜릿 하나를 건네며 “아빠한테도 드리는 거 어때?” 조심히 묻는다.

막내는 다다다 달려가 소파에 누워있는 아빠에게 “메리~크리스마스” 인사하고 안아준다.


12월 삶이 불안정하고 일상이 흔들리는 사건들로 인해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어른이 되니 크리스마스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라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 집 막내는 아직 초등학생이다.

크리스마스가 셀레는 나이.

이제 그 설렘이 몇 년 남지 않았을지 모르는데 난 왜 벌써 그 아이의 설렘과 동심을 지켜주지 못했을까?

덩치가 커져버려 이제 안아주기 벅찬 11살 아들.

하지만 아직은 여린 마음에 어린이라는 사실을 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자꾸 눈물이 났던 건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내 자신이 못나고 미안해서였다.

오늘은 내게 정말 슬픈 크리스마스로 기억될 것 같은데 부디 아이에게는 그러지 않길 빈다.


이미 동심을 잃은 어른들은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하는 동심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가 나이에 비해 너무 일찍 철들지 않게 하는 게 어쩌면 부모의 사랑인 것 같기도 하다.

나도 그 의무와 사랑을 잊지않고 지켜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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