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전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많이 의지하고 예뻐했던 어린 청년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곳에 취직해서 온갖 힘든 일과 웃어른들의 거친 말을 참아가며 묵묵히 일하던 훈이라는 청년.
맞다. 9화 <인정과 인성의 간극>에 등장했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성실하고 착해서 이모들 이쁨을 듬뿍 받던 아이.
오늘은 그 아이에게 마음속으로만 썼다 지웠던 편지를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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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씨에게.
훈이씨~ 잘 지내고 있나요?
나는 월수금에 만나서 같이 일했던 주방 이모예요.
혹시 내 이름을 알 수도 있지만 잘 모를 수도 있고 넉 달이 넘은 시간 동안 잊었을 수도 있어서 그냥 편하게 월수금 이모라고 나를 칭해 봐요.
훈이씨가 내게 커다란 설거지 거리를 줄 때마다 “이모는 큰 거보다 작고 반짝이는 거 좋아하는데~~~” 이러면서 농담을 던지곤 했죠.
그러면 훈이씨는 이런 아줌마 농담에 머뭇머뭇 설거지 거리를 내밀며 수줍게 웃어 줬고요.
우리가 고단한 일과 힘든 상황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런 유치한 농담과 소소히 건네던 서로의 이야기였을 거예요.
재료를 손질하며 주고받던 이야기 중에 나는 훈이씨에게 오후 알바를 시작했다는 비밀을 털어놓았죠.
훈이씨는 조만간 이곳을 그만두고 격투기를 배워 선수가 되겠다는 비밀을 내게 알려줬는데 이제는 그 꿈을 마냥 신나게 응원해 줄 수 없게 되어 마음이 아파요.
넉 달 전 사장님께 훈이씨가 퇴근길 오토바이 사고로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아직도 그날 아침을 떠올리면 가슴이 콩닥거려요.
다행히 몇 주 후 면회 다녀온 다른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잘 회복하고 있다고 해서 마음이 그나마 놓이네요.
병원이 어딘지 궁금하고 면회를 가볼까도 여러 번 생각도 했지만 내성적인 이모는 훈이씨가 부담스러워할까 용기를 못 냈네요.
훈이씨가 그동안 힘든 거 참고 일했던 것도 1년을 채우고 퇴직금 받은 후 군대를 가려고 했던 건데.
그 인내의 시간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커요.
그리고 운동으로 전향하겠다는 꿈도 이제 조금 어려워진 건 아닌가 해서 안부를 묻기가 더 조심스러웠던 것도 있어요.
이 시점에 내가 훈이씨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 그게 과연 위로가 될지….
마음속으로만 문자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반복했는데 새해가 지난 오늘이 되어서야 편지를 쓰게 되네요.
훈이씨, 이모가 생각해 보라고 했던 “삶의 작고 반짝이는 것”을 이제는 찾았나요?
지치고 힘든 날 자신을 위로해 줄 “작고 소소한 행복들”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나요?
훈이씨는 쉬는 날 훌쩍 오토바이를 타고 짧지만 바람 쐬고 돌아오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어떤 걸로 기분전환을 하나요?
월수금 오전 출근하면서 주차장에 비어있는 오토바이 자리를 바라보며 훈이씨를 생각해요.
쉬는 시간 피곤한 몸을 눕혔을 낡은 창고방도 괜히 힐끗거려 봅니다.
커다란 설거지 거리가 나올 때마다 머뭇머뭇 웃으며 “감사합니다~~” 작은 소리로 말하던 훈이씨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리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10개월 남짓이고 소식이 끊어진 지는 넉 달이 넘었네요.
점심식사를 할 때 나와 맞은편 자리에 앉아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처진 어깨로 밥을 먹던 훈이씨.
늘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홀 이모들이 훈이씨 눈이 안 보인다고 답답해했는데 어느 날인가 헤어스타일 바꿨다고 내게 수줍게 모자를 벗은 모습을 보여주던 훈이씨.
성실하고 착한 마음이 좋아서 내가 딸을 하나 더 낳아 사위 삼고 싶다고 했을 때 빙그레 웃으며 고개 흔들던 훈이씨.
이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 사위 삼고 싶다는 거였는데 훈이씨는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을까요?
이모가 좀 더 용기가 있었다면 훈이씨가 참고 들어야 했던 고성과 온갖 험한 말들을 더 빨리 멈추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소심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몇 주동안 마음속으로 준비한 몇 마디를 사장님에게 에둘러 말하는 게 전부였어요.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이 후회되네요.
왜 당당하게 훈이씨를 막아주고 지켜주지 못했을까…
내가 이러고도 과연 어른인가…
시간이 흘러도 훈이씨에게 진 어른으로서의 마음의 빚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아요.
예전 같은 그런 상황이 다시 생기면 이제는 용기 내서 내가 젊은 청년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
물론 쉽진 않겠죠…
요즘은 내 마음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문장을 설거지하는 와중에 마음속으로 조금씩 연습하고 있어요.
그 말이 입 밖으로 차분이 나올 수 있을지, 화를 내며 말할지, 울먹이며 말할지는 나도 잘 몰라요.
하지만 분명한 건 다시는 부당한 대우에 아무 말 못 하는 무력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훈이씨, 다리의 회복이 어느 정도 됐는지 알 수 없지만 꿈꾸던 격투기 운동을 못할 가능성도 있어서 이런 말을 덧붙여봅니다.
신은 하나의 문을 닫을 때 하나의 창문을 만들어 둔다고 합니다.
문이 닫혀 가야 할 길이 캄캄하고 어두워도 포기하지 말고 조금 더 걸어 보세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더라도 몇 발자국 더 내디뎌 빛이 새어 나오는 훈이씨만의 창문을 찾아내길 바랍니다.
훈이씨, 나는 가끔씩 점심시간에 불쑥 식당으로 안부 인사를 하러 찾아오는 훈이씨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이렇게 사고 소식으로 헤어진 게 우리의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만약 다시 만나게 되다면 나는 반갑게 묻겠지요.
“훈이씨, 이모가 좋아하는 작고 반짝이게 뭔지 찾아왔어요?”
그러면 훈이씨는 예전처럼 말하겠지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럼 나는 다시 말하겠지요.
“훈이씨, 사실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작고 반짝이건 어디에 있어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냥 내 손에 쥐어진 하루하루를 반짝이도록 닦아주다 보면 그게 바로 우리가 찾던 행복일지 몰라요…”
훈이씨, 언젠가 내가 이 답을 훈이씨에게 직접해 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좋겠네요.
사고 후유증으로 계속 악몽을 꾼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모도 악몽을 많이 꾸는데 등짝이 시리도록 무서웠던 악몽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흐려지더라고요.
부디 오늘은 악몽 없이 푹 잠들길 바라요.
건강하게 다시 만나길 소망하며,
월수금 이모가.
2025.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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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씨~
운명처럼 이 편지를 쓰고 바로 얼마 뒤에 훈이씨가 식당에 들려 인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내가 화목 이모였으면 훈이씨 얼굴을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아직 다리를 절뚝 거리고 걷는다는 홀 이모들의 말에 마음이 아리다 얼굴에 살이 붙어 좋아보인다는 말에 또 한시름 놓았어요.
돈모아 다시 오토바이를 사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기에 그 말이 진심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훈이씨가 바람을 가르며 자유롭게 여행다녔던 이야기를 떠올리니 그저 안전하게 타기를 기도하기로 했어요.
젊은 시절 한 번의 시련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 것보다 어쩌면 겁이나도 그걸 극복해 나가는게 청춘인 것 같기도 하고요.
부디 잘 회복하고 한동안 햇빛을 못봐 뾰얗게 됐다는 얼굴도 웃으며 볼 수 있길 바라요.
이모는 늘 그렇듯 월수금에 그 곳에서 기다릴게요.
2025. 0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