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무기력감과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애 첫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스무 살 초반 겪었던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압박감을 감당하기 싫어 혼자 묵묵히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경력단절 20년이 넘는 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설거지가 다였다.
감정기복이 심하고 권위적인 시아버지의 시집살이에 지쳐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얽히는 게 겁났다.
그저 묵묵히 몸을 쓰며 일하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작은 위로와 응원도 받았고 때론 깊은 상처를 입었다.
몸은 고되지만 내 일의 가치를 금전적으로 보상받는 일은 기뻤다.
주부로서 육아와 살림을 할 때나 남편의 채소농장에서 일하면서는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내 노동의 정당한 가치를 아르바이트가 찾게 해 주었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를 쪼개 내 취미생활을 할 때는 가져보지 못한 당당함과 평일에 고생한 나에게 주말 하루는 취미생활을 하는 게 정당하다는 인식을 시어른들에게 심어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다.
규칙적으로 월수금 오전에 일을 시작하면서 방안에만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나는 조금씩 생기를 찾았다.
첫 알바를 시작하고 8개월만에 오후 서빙 알바를 시작했다. 사람들 속에 들어간다는게 겁이나서 많이 망설였지만 지난 8개월간 나는 좀 더 단단해진 것 같았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살아온 20년의 시간들을 조금씩 털어내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큰 하천이 흐른다.
온통 비닐하우스였던 이곳에 24살에 시집와서 아이넷을 키우고 살았다.
10년 전쯤 재개발이 되면서 큰 도시가 생기며 하천 정비를 깨끗하게 해서 우리 동네의 명소가 된 곳.
그동안은 생계에 치이고 우울증에 갇혀서 그쪽 방향으로 눈길과 발길을 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난 그곳을 작년에 처음으로 걷게 된다. 이토록 좋은 산책코스와 자연의 풍경이 내 가까이에 있었다니 새삼 놀랐다. 10년 넘게 한 번도 이곳에 와서 산책할 생각을 해보지 못한 내 자신이 처량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걸었다. 걷다보니 자연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고 하루하루가 선물같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
우울증이 심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져 한 문단을 읽어도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아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야했다. 그저 눈으로만 읽혔다.
머릿 속이나 마음속에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다.
결국 20년 가까이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없었다.
그저 짧은 하이쿠 시를 들쳐 보는 게 나의 독서의 전부였는데 어느 날 문득 서점에 가고 싶어졌다.
쇼핑몰에 있는 대형서점이 아닌 동네의 작은 독립서점.
그곳에 가면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무턱대고 네이버 지도를 켜서 찾아간 곳 "한평책빵"
용기 내 책방에 들락거리며 난생처음 북콘서트도 참여해 보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이야기도 나눴다.
서점에 오는 다양한 사람들 속에 나는 그저 너무 초라하기만 한 우울한 주부이자 허드레꾼이었다.
이곳에 나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고 책이나 여행, 예술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그들을 보며 나의 비루한 지식과 경험, 독서량에 주눅이 들어 내가 낄 수 없는 세상이라는 생각도 초반에 많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의 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고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끌고 가는 그들과 뭔가 함께 해보고 싶었다. 다시 내 안의 동굴로 숨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한 달 회고 글쓰기 모임 "야옹시의 비밀글방"에 참여하면서 나에 대한 글을 처음 써봤다.
하찮고 시시콜콜한 나의 일상 이야기를 쓴 글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응원해 주는 분들을 만나 행복했다.
책방지기님이 추천해 준 <황보람의 저니>라는 책을 읽고 작가님의 북토크에 참여하게 됐다.
그날 작가님과 "누구나 책이 될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렇게 결성된 글쓰기 모임에 합류했다.
초반에는 나의 유년시절 상처를 보듬어줄 그림책을 구상하다가 아직 해결되지 않는 나의 상처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에는 이르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많이 좌절했다. 하지만 함께 글을 쓰는 분들과 황보람 작가님의 응원으로 그림책이 아닌 내 이야기를 쓰는 과정으로 자연스레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 운이 좋게 바로 승인이 나면서 나의 첫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내 글의 첫 연재 시작은 <허드레꾼의 허튼 생각>이었는데 나의 이런 어설픈 이야기가 과연 글로써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초기 시기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이 글이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할 이유가 있나? 이렇게 시답지 않은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때마다 황보람 작가님은 나처럼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단 한 사람을 생각하며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해주신다. 반드시 이 글은 누군가를 위해 더 써 내려가야 한다고.
일주일에 세 번 글을 연재하기로 하고 몇 달을 보낸 후 어제 처음으로 <난독의 낭독>의 연재를 끝냈다.
아쉽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도 여기서 끝은 아니다. 시즌 2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아직 열어보지 않은 몇 개의 서랍이 있다.
그 서랍 안에는 날 위로해 준 음악이야기, 하늘에 있는 아빠와 화해하는 이야기, 소울메이트 친구를 찾아가는 이야기, 끄적였던 동시, 단편소설과 그림책 소재 등이 담긴 이야기가 작은 퍼즐 조각처럼 담겨있다.
이 서랍을 언제 열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른다.
2024년도에 글쓰기에 문을 열었다면 2025년도에는 지치지 않고 작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나의 목표다.
그 첫 단추로 엊그제 "엄마"를 주제로 한 시 한 편을 응모했다.
결과가 어찌 됐든 내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던 추상적인 소재를 시로 적어보았다는 게 나한테는 큰 의미가 있다.
학교 독후감 쓰기나 일기를 제외하고 한 번도 제대로 된 글이라는 걸 써본 적 없이 40년 넘게 살아왔던 나지만 쓰지 않고 지나왔던 내 삶도 그만한 가치가 있고 그 이야기는 언젠가 내 손끝에서 쓰일 거라는 확신이 있다.
사실 나는 조금 두렵다.
내가 세상에 드러나는 게 두렵고 나의 우울한 과거가 밝혀지는 게 힘들다.
나의 글이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 겁나고 별 볼일 없을까 봐 겁난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설거지하는 허드레꾼에서 지친 삶을 뽀드득하게 닦아 빛나게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고.
앞으로도 글쓰기를 통해 나를 치유하고 더 나아가 나의 글로 누군가를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