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가게의 매출은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았다.
작년 8월에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두 달 만에 비수기가 찾아왔다.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가는 초가을이었는데 11시 땡 하면 울리던 주문 콜이 어느 날부터 바로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9:30분부터 상추, 깻잎을 한 상자씩 씻어 손질해 둔 터라 주문 콜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설거지를 하면 됐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첫 주문이 들어오질 않으니 멀뚱하니 빈 싱크대만 반들거리게 행주질해야 했다.
이럴 땐 식자재 저온 창고로 들어가 손질할 마늘이나 버섯이 있는지 둘러본다.
다행히 마늘 한 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거라도 꼭지 자르고 슬라이스 하면 30-40분은 지나갈 것이다.
주방 부장님과 어린 직원들도 소스를 만들거나 피클을 담을 준비를 한다.
바쁘게 일할 땐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볼 시간도 없는데 일이 없으니 나도 모르게 벽시계만 노려보게 된다.
누가 분침, 시침에 껌을 붙여놓은 걸까? 도통 고장 난 듯 움직이지 않는 무심한 시곗바늘.
드문드문 주문 콜이 들어오면 아주 잠깐 주방에 활기가 돈다.
화르륵 불맛을 입힌 해산물 볶음이 접시에 올라가고 노릇하게 익은 피자도 접시 위로 날아오른다.
설거지를 하다 마늘을 다듬고 컵 조금 닦다가 선반들 틈을 청소한다.
그래도 시간이 안 가니 저온 창고에 들어가 물받침용 쟁반들을 죄다 꺼내 뽀드득 씻는다.
괜히 주방 바닥을 빗질하고 물청소를 한다.
어찌어찌 다섯 시간의 지루한 아르바이트 시간이 지나가면 꼬꾸라진 오전 매출 수입을 홀 이모들을 통해 전해 듣는다.
“오늘은 밥 값도 못했나 보다 우리….” 홀 주임님의 말에 다들 어깨가 처져있다가도 점심밥은 또 맛나다며 웃는다.
“정신없이 바쁜 날 중에 가끔 이런 날도 있어야 허리 좀 펴지…” 홀에서 일하는 파트타임 언니가 조용히 한마디 한다.
비수기가 길어지자 홀에서 일하던 파트타임 동생이 하루아침에 잘렸다.
나는 다시 당근 어플을 열어 알바를 뒤적거려야 했다.
다행히 가을 단풍놀이가 끝날 때쯤 떠났던 손님들이 다시 돌아왔다. 언제 비수 기였냐는 듯이 정신없이 연말 모임과 예약 손님들을 받다 보면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미친 듯이 몰려드는 사람들, 주문 콜이 끝없는 연주곡처럼 울리고 주문표가 대롱대롱 매달려 땅까지 닿을 기세다.
3미터 넘는 싱크대에는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그릇들과 접시, 궁중팬, 컵 등이 폭주 기관차처럼 밀려든다.
이모들이 밀어놓고 가는 설거지들을 크기 별로 쓰러지지 않을 만큼 쌓아두고 음식물을 버리고 초벌 설거지를 해서 식기세척기에 돌린다.
식기세척기 밧트 4개를 기차처럼 늘어뜨려놓고 씻고 돌리고 말리고 정리하고…. 나중에는 더 이상 그릇을 정리해서 올려둘 자리가 없는데 홀 이모들은 손님들과 전쟁 중이라 차마 그릇을 빼로 올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릇을 빼서 가져다줄 수도 없다.
저번에 더 이상 그릇을 쌓을 수 없어서 시간 될 때 씻어둔 그릇을 빼줄 수 있냐고 홀 파트타임 언니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그 언니가 다음날 출근한 주임님한테 담당 언니가 느려서 그릇도 제때 못 뺐다고 이르는 바람에 홀에 한바탕 싸움이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되도록 홀이모들과 척을 지지 않고 평화롭게 알바를 하고 싶다.
수차례 홀 파트타임 이모들이 새로 들어왔다 그만뒀다.
그러다 다시 사람이 없으면 잘린 이모들을 또 불러서 일했다. 서로 언니, 언니 하며 웃고 지내다가도 내가 궂은일을 더 많이 한다느니, 사장 앞에서만 일하는 척한다느니 늘상 큰소리 났다. 그러면 또 서운하다고 그만뒀다가 언제그랬냐느듯이 아쉬우면 다시 와서 일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 안에서 그분들의 하소연과 싸움을 중립적으로 지켜보는 역할을 해야 했다.
때로는 매번 반복되는 언쟁이 싫어서 막내 하원 시켜야 한다는 핑계로 커피 타임 없이 집으로 줄행랑치기도 했다.
봄이 되니 이번에는 다들 벚꽃을 보러 떠났다.
손님이 줄어들고 매출도 바닥을 찍고 사장님도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설거지통 앞에 작은 창문 밖으로는 푸릇푸릇한 나무와 하늘이 예쁘다.
나도 어디론가 벚꽃 나들이를 떠나는 상상을 하며 지루하고 눈치 보이는 알바 시간을 버텨본다.
올해 4월부터 시작한 오후 알바는 주방 면접을 보러 갔다가 홀서빙에 도전한 케이스다.
너무 떨려서 우황청심환 먹고 시작했던 알바였는데 이것도 8개월 차에 접어든다.
5:30~11:30분까지 여섯 시간. 다섯 시간과 여섯 시간은 체감 시간이 다르다.
평일 세 번씩 하는 오전 다섯 시간 알바는 머리를 쓸 일이 없다.
단순 반복해서 매일 하는 채소 손질과 설거지 업무만 하면 되니까 몸만 고될 뿐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다.
머릿속으로 온갖 공상을 하면서도 손만 계속 움직이면 된다. 이때 주로 밤에 꿈꿨던 장면을 떠올리거나 잠깐 봤던 책의 구절이나 이야깃거리를 머릿속으로 계속 굴린다. 그러다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면 휴대폰 메모장에 한 두 단어라도 적어둔다. 언젠가 글 쓸 때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겠지 싶어 혼자 뿌듯하다.
하지만 오후 알바는 늘 긴장하고 있다. 뜨거운 불판과 기름받이를 옮겨야 하고 주문을 일일이 찾아가 받아야 하며 여기저기에서 부르는 손님들을 응대해야 한다.
그 시간에는 거의 두뇌와 청각을 풀가동하고 있으니 몸이랑 마음이 늘 긴장 상태다.
그래서 다른 알바를 알아봐야 할까 계속 고민했다.
너무 늦게 끝나는 것도 주말에 나를 대타로 부르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사장님 내외와 주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동생이 서로 자녀들 연령도 비슷하고 나잇대로 거기서 거기라 육아며 건강에 관한 이야기가 잘 통했다.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요즘 어디 어디가 아프다. 그러니 뭘 챙겨 먹어야 한다. 어떤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게 주된 주제이고 저녁을 뭘 맛있게 만들어 먹을지가 하나의 이벤트처럼 여겨진다.
서로서로 집에서 반찬도 챙겨 오고 과일, 빵도 챙겨 와서 간식 타임을 갖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즐거움의 하나다.
일은 고되지만 옛날 노래도 마음껏 듣고 이런저런 잔잔하고 소소한 재미들이 있다.
그런데 요즘 오후 알바도 극한 비수기에 접어들어 매출이 바닥을 긴다.
처음에는 주방에서 일하는 알바 동생과 우리끼리 30분 정도 일찍 퇴근하자고 의견을 맞췄다.
손님이 없으니 주방도 홀도 일찍 마감되는 분위기인데 우리 알바 시간을 다 채우자고 멀뚱히 있는 것은 우리 둘 성격에 맞지 않았다.
차라리 일찍 가서 쉬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사장님 내외가 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들어가 보겠노라고 말했다.
그렇게 11월이 지나 12월에 접어들며 1시간 조기 퇴근하는 날이 자주 생기고 급기야 이번주에는 출근 두 시간 반 만에 조기 퇴근하는 상황이 생겼다.
출근 후 손님이 딱 두 테이블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앞치마를 풀며 사장님께 말했다. “우리도 생계가 있으니 매번 이렇게 조기 퇴근하는 건 어려울 것 같지만 그래도 힘든 이 시기를 같이 잘 버텨보기로 해요. 힘내시고 다음 주에 봬요…“ 사장님보다 몇 년 더 인생을 더 살아본 인생 선배로써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나라가 어수선해서인지 다들 연말모임을 위해 시내로 떠난 것인지 거리에도 다른 주변 가게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나는 주방에서 일하는 알바 동생을 집에다 태워다 주고 다시 가게 앞을 지나갔다.
여전히 가게 안에는 테이블 한 곳에만 손님이 앉아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너무 이른 8시 30분. 괜히 집으로 바로 들어가기 싫어서 주차장에서 노래 한 곡을 마저 들으며 당근 어플을 열었다.
일정 수입을 만들기 위해 주말 알바를 새롭게 알아봐서 쓰리잡을 해야 되는 건 아닌지 깊게 고민하는데 저번주에 대학생 조카가 손님이 없어서 양꼬치집 알바에서 잘렸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딜 가나 다 힘든 상황인가 보네… 나는 검색하던 휴대폰 화면을 끄고 무거운 몸을 내렸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이 조금 가라앉아 있다.
나는 남편이 냉장고에 넣어둔 맛없는 노브랜드 맥주를 한 캔 꺼냈다.
평상시에는 맛없다고 입도 안대는데 오늘은 이거라도 마셔야 할 것 같다.
투명한 맥주잔에 맥주 한 캔을 따르고 이름 모를 위스키를 쪼르륵 따라 섞는다.
밍밍했던 맥주맛이 알싸하게 변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음..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것에 새로운 걸 조금 첨가했더니 제법 그럴듯한 맛이 됐네…’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내 삶도 이런 새로운 레시피를 발견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매출이 멈추니 알바의 시계도 멈추고 아르바이트비도 그만큼 줄어든다.
다들 삶이 퍽퍽한 가운데 그걸 어떻게 버티고 이겨낼지 조금은 어깨가 무거워지는 겨울이지만 나라도 나를 응원해 줘야겠다.
‘그래야, 힘들어도 조금만 더 버티고 힘을 내 보자. 결국 봄은 곧 올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