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기 166일 차]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매우 아끼므로 매우 아껴 읽는다
한 번에 쓰윽~하고 다 읽고 싶지 않다
다 읽으려면 몇 달, 몇 년?
그래도 괜찮다.
시집은 원래 그런 거니까.
한 문장, 한 편의 시로도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거니까.
[마음이 기우는 곳]
사투리를 쓰는 시의 주인공이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그 대화를 그대로 옮긴듯한 시.
난 박준이 이런 일상시를 정말 잘 쓴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목소리]
너도 그만 일어나서 한술 떠
밥을 먹어야 약도 먹지
병도 오래면 정들어서 안 떠난다
일어나, 일어나요
_ 박준 [목소리]이 일부
시인은 아픈 누군가에게 '상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이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다들 '상철'이라 부르니까 그렇게 부른다.
그는 다리가 불편해도 얼마나 잘 뛰던지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등꽃이 피었다고
그믐이라고, 보름이라고
그는 밥 먹고 뛸 때가 가장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그러니 너도 그만 일어나 밥 한 술 뜨라고 말한다.
병도 오래된 정들어 안 떠나니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라고.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 뛰어다니던 상철이처럼
너도 너무 삶에 심각해지지 말라고
너도 그저 삶의 모든 순간을 사랑해 보라고.
허기진 마음 따뜻한 밥 한 끼로 기운 내 이제 그만 일어나 보라고.
상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누군가의 목소리.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길 바라는 자기 스스로의 목소리는 아니었을까.
나는
삶의 모든 순간, 일상이 한 편의 시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은 하이쿠처럼 한 줄도 너무 길게 느껴지는 삶이 있다.
어느 날은 산문처럼 무언가를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삶도 있다.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과 일상을 모두 노래하고 싶다.
행복, 슬픔, 불안, 우울, 희망, 실망, 사랑, 우정, 농담, 기쁨, 갈망, 좌절,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 사소해서 근사한 것들, 곧 사라질 것 같은 것들,
너무 아름다워서 영원할 것만 같은 것들, 그러나 일순간 하찮아질 것들
그럼에도 다시 품고 싶은 가녀린 마음 같은 것.
그런 날에는 시를 쓰고 노랫말을 쓴다.
누군가가 가끔 찾아와 먼지 묻은 나라는 시집을 꺼내 이렇게 휘리릭 넘겨 보아도 좋다.
사실 매일 조금씩 들려 이렇게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아도 좋다.
갑자기 시를 읽으니 시를 쓰고 싶어서 조금 끄적여 본다.
[냄비받침]
- 늘그래
나라는 삶의 시집 한 권을 남긴다
마음의 허기가 달래 지지 않은 밤
그대, 나를 냄비받침으로 써도 좋다
후우 후우~ 조심스레 불어가며
마음을 채우는 시간
당신이 겨우 삼켜내는
우울과 한숨, 눈물
내게 뚝뚝 떨어져
작은 얼룩을 남겨도 좋다
그대의 삶을 뜨겁게 달궈준
냄비자국도 남겨준다면 더 좋고
그렇게 나라는 시집에
누군가의 얼룩을 담아내고 싶다
얼룩과 얼룩이 모여 무늬가 되는
한 편의 시집을
오래 오래
같이 써 내려가고 싶다
긴긴밤을 함께할
한 권의 냄비받침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