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음식 하기 싫어서 반항 중입니다.
이번 추석의 테마는 '우리 며느리가 미쳤어요' 혹은 '며느리 반항기'가 될 것 같다.
이틀 전 명절음식 장보기 대신 추석 맞이 책쇼핑을 한 아름 했다.
원래대로라면 퇴근 후 마트에 들러서 카트 두 개 분량의 장을 봤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퇴원 후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한 나에게 일주일간 고생한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폐렴으로 입원했다 퇴원 후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상황.
아래층에 함께 사는 시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두 분이 번갈아서 수시로 전화하시는 바람에 산소호흡기를 끼며 통화하느라 기가 다 빨렸었다.
지금 너무 아파서 통화가 힘들다고 말씀드려도 그런 말은 안중에도 없다. 전화가 불이 난다.
늘 적당히가 없다. 과하다. 며느리에 대한 사랑인지 집착인지 도통 알 수 없다.
'우리 집 대들보'(언제부터 내가 그런 위치였던가, 의구심이 폭발한다)가 아프면 안 된다고 눈물을 찔끔거리시는 시아버님의 말이 나를 반항하게 만든다.
"명절음식 우리 때문에 할 생각하지 마라. 너희 먹을 거만 해. 우리 신경 쓰지 말고"라고 하셨다. 나는 이게 전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25년의 결혼생활로 육감적으로 알지만 우선은 알았다고 말씀드렸다.
한상 가득 음식을 차려도 정작 본인은 '먹을 게 없다'라는 말로 늘 나를 한숨짓게 했던 시아버님.
'그래, 이번에는 진짜 딱 두 가지만 하자. 갈비찜과 전'
출근하며 남편에게 명절 장보기를 부탁했다.
퇴근 후 집에 와보니 남편이 장을 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내가 써 보낸 장보기 목록 문자가 감쪽같이 증발한 것이다. 내 기록에도 없고 남편 기록에도 없다. 분명 전송 버튼을 누른 것 같았는데 이 무슨 일일까?
남편이 적극적으로 내게 연락해서 묻거나 장 볼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에 화가 잠시 났다.
명절음식 준비하는 게 왜 나만의 걱정거리가 되어야 하는 거지?
그러다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이것은 이번 명절에 음식을 하지 말라는 일종의 계시는구나! 드디어 결혼 25년 만에 명절음식에서 해방되는 건가.'
갈비 20근을 손질하고 삶고 양념하지 않아도 된다.
동태 전, 대구전, 고추전, 깻잎 전, 버섯 전, 애호박 전, 동그랑땡을 만드느라 반나절동안 기름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잡채, 과일샐러드, 식혜, 밑반찬... 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을 바리바리 만들어서 냉장고에 쟁이지 않아도 된다.
막상 명절 아침에 기름 냄새나는 음식이 하나도 없으면 분명 뭐라고 하시겠지?
아니지... 전날에 전을 부치지 않으니 그때부터 잔소리가 시작되려나?
늘 하시는 말씀 '바로 구워서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는 거야'
그 말이 꽤나 진심이라서 그 후론 상에 전이 올라와도 거의 드시지 않는다.
그런데 왜 종류별로 전을 부쳐야 되는 걸까? 우리가 전집도 아닌데.
명절 음식을 안 만들겠다고 다짐하니 뭔가 해방감에 우쭐 어깨가 올라간다.
한량처럼 뒹굴거리며 밀린 책이나 읽어야지... 하는 생각에 기분이 들뜬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슬슬 걱정이 된다.
명절 연휴가 긴데 명절 음식이 없으면 나는 무엇으로 삼시세끼 시부모님 밥상을 차려야 할까?
일 년에 몇 번 안 만드는 엄마표 갈비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실망감을 어떻게 채워줘야 할까?
매끼 반찬 걱정하느니 지금이라도 당장 장을 봐서 명절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며느리는 장보기 대신 오전에 화실에 가서 그림을 그릴 예정이고 오후에는 미용실에 가서 막내와 명절맞이 이발을 할 예정이다. 미용실에 가면 옆에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싶을 것이고 관성처럼 카트 가득 명절음식을 만들 재료를 가득 주워 담을게 분명하다.
25년 동안 몸에 밴 나의 습관. 명절음식 만들어서 식구들과 동네분들 대접하기. 이제 시어머님이 거동이 불편하시니 집에 놀러 오시는 분들이 안 계신다. 예전처럼 동네잔치상 차리듯 하루 대여섯 번씩 상차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앗! 지금 전화벨이 울린다. 아침 7:04분. 시어머님 전화다.
이럴 줄 알았다.
"명절 장 보러 가야 되지 않겠니... 나한테 상품권이 있는데 나랑 같이 가자"
"명절 음식 안 할 건데요..."
"그래도 갈비라도 하고 해야지. 명절인데..."
(다른 건 몰라도 애들 때문에 갈비는 할까 말까 했는데 어찌 아셨을까? 이렇게 당연하듯 말하니 괜히 하기 싫어진다.)
"아버님이 안 해도 된다고 그랬는데요.... 이번에 안 할 건데...."
"왜 그럴까, 우리 착한 며느리가...". (이 말에 발끈한다. 왜 나는 착한 며느리가 되어야 하는가!)
"........"
"나랑 같이 가서 장 보자. 네 돈 안 쓰게 할게..." (돈이 문제가 아닌데...)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카트 밀어야 해서 어머님 휠체어 밀면서 같이 못 가요. 저 혼자 갈게요."
"내가 뒤에서 살살 따라가면 되니까 같이 장 보러 가자..."
어머님은 분명 불안하셨을 거다. 며느리가 명절 장보기로 냉장고를 진작에 가득 채워야 하는데 감감무소식이니 말이다. 참고 참았다가 7시가 넘자마자 내게 전화를 하신 거다.
나의 명절 반항기는 이렇게 하루 만에 끝나게 되는 것일까?
나는 오랜만에 미움받을 용기를 다시 꺼낸다.
"어머니... 장은 제가 알아서 볼게요. 그리고 오전에 제 일정이 있어요. 9시에 같이 못 가요. 어머님이 기다렸다가 7시 넘어서 전화한 거 제가 잘 아는데 그래도 이렇게 일찍 전화하지 마세요.... 음식은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멋쩍어하는 어머님과 쭈뼛거리며 말하는 나 사이에 어색함이 잠시 흐른다.
하지만 시어머님과 나는 사이가 좋기 때문에 이 어색함이 불편함이 되진 않는다.
만약 똑같은 이야기를 시아버님과 나눴다면 익기 전에 뒤집혀 바스러진 동태 전처럼 처참한 마음이 됐을 테지만.
빈 속에 음식 이야기를 쓰고 있으니 머릿속에 윤기가 쫘르르 흐르는 단짠단짠 갈비찜이 아른거린다.
입 안에 침도 고이고.
당차게 명절음식을 하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애들이 좋아하는 갈비찜 하나는 해도 되지 않을까?
시어머님과 전화를 끊고 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부디 카트 가득 명절음식 재료를 채우지 않기를.
부디 시아버님이 먹을 게 없다고 밥상 물리는 일이 없기를.
부디 내가 쫄아서 동태 전을 부치지 않기를.
부디 5일동안 15끼니를 반찬 걱정없이 잘 차릴 수 있기를
부디 마음 편히 책 한 권 읽을 수 있기를.
명절 내내 앞치마에 기름 튀어가며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할 나와 당신,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며느리.
명절 일은 당연히 며느리 몫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가진 이들에게 자신을 다 헌신하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