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과 주임님의 싸움
내게 일주일에 세 번 "반면교사反面敎師"(주1)의 가르침을 여실하게 알려주는 곳이 있다.
바로 오전에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식당이다.
그곳에는 살아온 세월이 거칠고 묵직한 어른들의 세계가 있다.
고단한 일에 찌들고 진절머리 나는 인간 군상들을 상대하는 터에 예민함이 기본 탑재되어 있는 이모들.
사장님과 이모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주방 부장님과 어린 직원들.
그 사이에 깍두기처럼 껴있는 나까지.
다행히 나는 홀(매장) 직원이 아니라서 이모들의 타깃이 되진 않는다.
다만 싱크대 앞에서 그들이 내려놓는 빈그릇과 함께 쏟아놓는 서로를 향한 불만을 묵묵히 들어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때 들은 말을 물어다 다른 이모들에게 절대 옮기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저 화가 난 이모들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과 "아.. 그래요?" "기분 푸세요..."라는 별 위로되지 않는 말들을 이모들에게 한다. 물론 두 이모가 모르게 서로에게 공평하게 위로를 해준다. 딱히 누구 편을 들지 않는다.
이 쪽 이모의 말만 들으면 저 쪽 이모가 꾀를 부리고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이고 저 쪽 이모의 말을 들으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어서 누구의 잘못이랄 것도 없다.
그저 지쳐고 힘든 상태에서 서로가 서운한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졌다가 한 번에 폭발하는 게 문제였다.
9시 25분, 주차장을 통해 주방 뒷문으로 들어서며 부장님이 출근하셨나 도망가셨나 살피는 게 나의 첫 번째 루틴이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한 지가 1년 5개월째인데 지난 6개월 동안 주방 부장님이 다섯 번이나 바뀐 터라 내게 생긴 웃지 못할 버릇이다.
이번 부장님은 나와 서먹함이 가시는데 두 달 넘게 걸린 것 같다. 첫 번째 나의 사수였던 부장님을 제외하고 다른 부장님들은 한 달, 이 주, 일주일 만에 다 떠나서 친해지고 말고랄게 없었다.
지금 부장님은 워낙 말 수도 적고 도통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나도 그런 거리를 유지하며 지냈었다. 그러다 최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오후에 다른 곳에서 홀서빙한다는 비밀을 털어놨더니 요즘 들어서야 슬쩍 자기 속내를 비추곤 한다.
(내가 왜 일손이 모자란 이곳에서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홀이모들에게 비밀로 하는지는 내 글을 읽으면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안녕~하세효~~~"
(차분한 "안녕하세요"아니고 “안녕~하세효~~~” 포인트는 “효~~~”라는 마지막 단어의 높고 강한 음이다. 어색함을 이겨내려고 일부러 더 씩씩하게 인사하는 내성적 "늘그래"의 또 다른 자아가 내는 목소리다.)
"아... 네.. 안녕하세요" 힐끗 뒤돌다 말며 인사하는 부장님을 뒤로하고 앞치마와 모자를 챙겨 싱크대 앞으로 간다.
이때 홀 주임님이 베개만큼 커다란 흰 김치통을 싱크대에 던져 넣으며 카랑카랑하게 한마디 한다.
"부장님! 제발 이런 거 쓰면 바로바로 치워~ 하루이틀도 아니고 진짜 뭐야!"
"아, 지금 쓸려고..."
"쓰긴 뭘 써! 부장님이 이러는 게 하루이틀이냐고!! 왜 이렇게 늘어놓는 거야! 말 좀 들어!"
"아니.. 그거 아니고 지금 제가 얼음 받으려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말대답 좀 그만해!!!"
'아.. 뭐지.. 오늘 주임님 왜 저렇게 아침부터 화가 나있지... 나 오기 전에 무슨 일 있었나?'
나는 슬금슬금 앞치마를 챙겨 홀로 향하는 복도로 피신했다. 그때 홀에 있는 다른 이모도 큰소리에 놀라서 나를 쳐다본다. 우리는 소리 없이 입만 벙긋거린다.
‘무슨 일이에요?’
’ 나도 몰라.. 이게 무슨 일이래....‘
"아! 주라고요!!! 지금 쓸건대 진짜 왜 이렇게 이래라저래라 해요. 왜 자꾸 주방일에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해요? “
김치통을 들고 서로 실랑이를 하는지 주방이 요란스럽다.
“내가 쓴다고!!! 이리 줘요~ 내가 지금 쓸건대!! 도대체 왜 그러는데 이 아줌마야~~!!!"
나는 순간 너무 익어버려 터져 날아간 김치통 뚜껑처럼 지난 두 달 넘게 참았던 부장님의 인내심이 터져 날아가는 걸 목격했다.
'어쩐지 잘 참는다 했다...'
부장님은 일을 익히는 적응기간 동안 동네북처럼 사장님과 이모들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엄청 잔소리를 들었었다. 간섭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조차 이해 안 되는 부장님의 고집스러운 행동을 몇 번 경험해 봤기에 그들이 왜 화를 내는지도 한편으로 이해가 갔다. 나도 고쳐줬으면 하는 행동을 여러 번 말하다 포기한 적이 있었기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었다.
쿠당탕~~
김치통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소리가 들린다.
"뭐, 아줌마? 아줌마? 말이면 다인줄 알아? 지금 그게 할 말이야? 얻다 대고 어린 게..."
‘아... 나는 모르겠다.’
우선 화장실로 피신한다.
주임님은 여장부에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로 사장님 내외를 제외한 실질적인 이 식당의 서열 1위다.
그런 이모한테 소리 지르고 대든 건 아마 이 부장님이 최초인 것 같다.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몇 번의 싸움은 이모들 간의 싸움이었기에…)
다들 주임님이랑 같이 일 못하겠다고 이르고 그만두는 게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 부장님은 다르다. 같이 악을 쓴다.
카리스마 주임님의 당황한 기색이 떨리는 목소리와 뒷모습에서 느껴진다.
이럴 때는 모른 척 자리를 피해서 흐지부지 주임님이 그곳을 벗어날 수 있게 통로를 비켜 줘야 한다.
역시나 홀로 돌아온 주임님의 표정은 어이없다는 듯 망연자실했다.
슬쩍 꼬리 내린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이 들킨 것 같아 머쓱해서는 괜히 "뭐야 진짜..." 하며 주방을 향해 눈을 흘긴다.
주임님이 굳이 그렇게 카랑거리는 목소리로 할 얘기는 아니었는데 뭔가 본인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나한테 한 번만 걸려봐라.. ’ 이런 느낌으로 오늘 날을 잡은 것 같은데 어처구니없게 부장님 기강 잡기는 실패로 돌아간 것 같다.
부장님은 이상하게 불필요한 고집을 피운다. 그걸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포장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더 편한 방법이나 순서를 알려줘도 꼭 변명을 한다. 수차례 말해도 개선하지 않는다. 이번 김치통 사건도 그렇다. 늘 주방의 동선에 걸리는 지점에 툭! 하고 던져놓고 다른 일을 한다. 다른 직원들이 신경 써서 피해 다니지 않으면 발길에 김치통이 걸려 굴러다닌다.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김치통이나 소쿠리에 걸려 넘어질까 봐 다른 사람들이 한쪽으로 들어다 옮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왜 그런 고집을 못 버리는 걸까?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주임님은 이상한 아집이 있다. 모든 일이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돌아간다. "너는 실수하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실수해도 쿨하게 인정하니 상관없다"는 내로남불(주2)의 캐릭터다. 일하면서도 굳이 큰소리치며 화낼 일이 아닌데 화가 나있다.
실수로 음식이 다른 테이블로 나간 걸 수습하기에도 바쁜데 누구 탓이냐고 따져 들고 악을 쓰느라 시간을 더 끈다. 상황을 해결하기보다 본인 기분을 푸는 게 우선이다. 다른 이들의 작은 실수는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다. 논리에 어긋나도 본인이 뱉은 말은 거두기 싫어한다. 본인 유리한 쪽으로 말을 돌려 그 말이 맞다고 우기는 바람에 다른 이모들의 넋을 놓게 만든다.
오늘 고집과 아집이 만나 한판 붙었다.
부장님은 융통성 없는 자신의 고집이 자기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집은 어리석은 자의 방패(주3)라고 했는데 언제쯤 부장님은 김치통 대신 고집이라는 방패를 던지게 될까 궁금하다.
또한 주임님은 불같은 성격과 자기 아집을 버리고 다른 직원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이해할 수 있는 더 큰 어른이 될 수 있을지도.
부장님도 다른 부장님들처럼 참지 못하고 그만둘까?
왜 이곳은 전쟁터처럼 하루가 멀다고 큰소리가 날까?
과연 이 둘은 화해할 수 있을까?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던 주방이 조용해지고 띡~띡~띡~~ 주문벨이 울린다.
프라이팬에 눌어붙은 매콤하고 붉은 주꾸미 양념을 닦으며 내 마음속에도 이들처럼 새카맣게 타 눌어붙은 고집과 아집이 달라붙어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수세미를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뽀득뽀득 닦고 또 닦았다.
깨끗해진 프라이팬의 밑바닥처럼 내 마음도 반들반들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남아있던 고집(固執)과 아집(我執)의 조각들이 배수구를 거쳐 흘러 흘러 이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주1) 반면교사 :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을 이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주2) 내로남불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 자신에게 관대하지만 남에게는 윤리적, 이성적으로 비판하는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 뜻이 있다. (출처:나무위키)
주3) “고집은 어리석은 사람의 방패이며, 현명한 사람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 벤자민 프랭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