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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의 허드렛일

새로운 경험을 위해 떠난 주임님을 떠올리며

by 윤서린


나는 화, 수, 목 오후에 특수부위 고기를 파는 고깃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에 나와 함께 5개월 넘게 같이 일한 주방 주임님이 있었다.

나보다 네댓 살이 적은 그녀는 언제나 목소리도 카랑카랑 활기차고 에너지도 강했다.

내향적인 나와는 달리 외향적인 그녀는 언제나 주방의 이야기 흐름을 주도하는 예능 MC 같았고 6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토크꾼이기도 했다.


이런 그녀와 나의 유일한 공통점은 자녀가 넷인 진정한 다둥이들의 엄마라는 것이다. 이 동네에는 “기”가 좋아서 다자녀가정이 많다는 엉뚱한 가설을 늘어놓으며 우리는 급히 친해졌다. 그러나 그녀가 가끔씩 던지는 이야기 주제에 흐름을 타지 못하고 나는 조금 삐끗거렸다.


내가 누군가와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 주제로는 이야기하지 말자고 부탁하는 세 가지가 있다. 나는 회식자리에서 우스개 소리로 그녀에게 이 세 가지를 말했는데 모두 그녀가 해당사항이 있다고 해서 그녀도 나도 순간 움찔했다.


바로 “정치” “전도” “다단계” 이야기다.


첫째, “정치” 이야기는 내가 잘 모른다. 나는 지지당도 없고 정치가 뭔지도 잘 모르지만 뭐가 옳고 그른지는 내 나름 기준이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사석에서 나오면 결국 꼭 누군가는 큰소리를 내기에 애초에 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둘째, “전도”이야기는 좀 복잡하다. 나는 자발적으로 어린이 성경학교를 찾아간 어린양 이었지만 성탄절을 맞아 연극을 시키는 바람에 교회에서 도망쳤다. (나는 어려서나 지금이나 주목받는 게 겁나는 내향인이었으니까.) 그러다 결혼을 하며 어설픈 기독교 집안(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온갖 미신을 믿는)의 며느리라는 위치에 어쩔 수 없이 집 앞 교회를 시부모님들과 다녀야 했다.


내가 교회에 가지 않아서 집안이 안 풀린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였다. 소 뒷걸음치다 개구리를 잡듯이 교회를 다니며 성화에 못 이겨 성경공부를 하고 “집사”라는 직분도 받았었다. (훗날 내 유골함에 “집사”라는 직분을 부디 새기지 말아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해 두었다. 천국문 앞까지 갔다가 가짜 “집사”인 게 탄로 나 지옥으로 떨어지기 싫어서였다.)

그런 탓에 종교 이야기는 가능하나 “전도”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셋째, “다단계” , 과거에 우리 가족과 친했던 이웃 아주버님이 함께 사업을 하자면서 남편에게 손을 내밀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사업이라는 걸 도통 모르니 못하겠다고 말하고 그분에게 사업자금만 빌려주었다. 그런데 그분이 하는 일이 처음에 말하는 것과 달랐다. 심각한 다단계였다. 그분은 주변 사람들 돈을 다 끌어다가 탕진하고 가족도 버리고 혼자지방으로 떠돌며 다단계 강연을 하며 살고 있다.

이러니 아무리 검증된 좋은 “다단계”라도 본인이 좋아서 하는 것 외에 나한테 권하는 것에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그녀는 나와 정치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단계” 영업직 경험이 있었고 그 물건을 신봉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와 이야기하는 게 나쁘지 않았다.


그녀가 늘 말하길 자신은 주방에서 잠시 설거지를 하고 있지만 곧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이 일은 더 나이 들어서까지 하긴 힘든 육체노동일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이곳을 떠날 거라고.

나는 그녀가 진짜 떠날까 봐 걱정했는데 그 일은 지난주에 현실로 일어났다.


그녀가 떠나는 이유가 그거라면 나도 이곳을 조만간 떠나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됐다. 그녀는 내게 커다란 물음표를 던지고 떠났다.


‘내 삶,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는 경력단절로 인해 치과위생사 면허도 정지된 상태다.

보육교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지만 사람 상대로 하는 일에 에너지를 심하게 뺏기고 상처를 많이 받기에 도저히 새롭게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오후 홀 서빙 아르바이를 시작한 것도 오전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요지경 사람들과 어울리며 면역을 키운 덕분이기도 했다. 오후 알바는 사실 설거지를 지원했지만 사장님의 권유로 홀서빙을 하게 된 경우다. 쫄리는 마음을 우황청심환과 푹 눌러쓴 모자, 검은 마스크로 가리고 시작한 일이었다. 마스크 속에 숨은 나는 일하는 동안 내향적이지도 소심하지도 않다. 애써 씩씩하고 당당하다.


이제 일은 몸이 기억해서 정신이 멍할 때도 몸은 움직일 수 있는 아르바이트의 최고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오전 설거지 아르바이틀 할 때는 계속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과 이야기를 만들며 나만의 놀이시간을 갖는다.

다섯 시간 동안 무거운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상추와 깻잎을 몇 박스씩 씻어도 몸은 고되지만 머릿속은 늘 끝없는 상상으로 재미있다. 대부분의 글들의 소재도 이때 많이 생각한다. 잊지 않기 위해 화장실에 갔을 때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둔다. 나는 나름 마음대신 몸을 쓰는 나의 아르바이트 인생을 즐기고 있다.


지난 시절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구겨진 종이처럼 쭈그리고 살았다.

부당하고 집요한 시아버지의 시집살이에 “아니요”라는 말 한마디 대꾸 못하는 바보로 24년의 시간을 힘겹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는다. 못하는 건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침 한 번 꼴깍 삼키고 이야기하는 배짱도 생겼다.


지난 몇 달간 퇴근길, 우리 집과 반대 방향에 사는 그녀를 태워다 주고 돌아가는 길에 홀로 듣던 노래가 오늘도 내 차에서 울려 퍼진다.

텅 빈 보조석 자리를 쳐다보며 그녀의 빈자리를 알아챘다.

문득 성격이나 생각이 무척이나 다른 우리였지만 서로의 고단한 삶을 응원하고 있는 마음만은 많이 닮아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설거지와 홀 서빙, 남들이 하찮다 여기는 허드렛일이지만 그 허드렛일이 나와 그녀를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오게 이끌어 주었다.


허드렛일은 무뎌진 마음을 깨끗이 씻어준다.

허드렛일은 무너진 육체를 반듯이 세워준다.

허드렛일은 무력한 정신을 또렷이 일깨운다.


허드렛일이 나를 만든다.

허드렛일이 나를 키운다.

허드렛일이 나를 살린다.

그래서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이런 나의 삶도 그럭저럭 괜찮지 않나?’하고 잠시 안도한다.


차의 유리창을 살짝 내리고 몸에 밴 고기냄새를 밤공기와 바꿔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겨울바람을 손가락 사이로 잡아채 본다.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용감한 사람이기에…


새로운 일을 위해 떠난 그녀가 꼭 다시 찾아와 들려준다는 상담요원 적응기 에피소드도 즐겁게 기다려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는 허드렛일의 의미와 내가 생각하는 허드렛일의 의미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

고 그녀를 응원하기로 한다.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할 때 더 강해지기에”(주)


벌써부터 “아~ 별거 아니던데 뭘~”하며 하얗게 웃는 그녀의 카랑한 웃음소리가 미소와 함께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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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할 때 더 강해진다.” _ 넬슨 만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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