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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20년 넘게 우울증 환자로 살아오다 설거지와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삶을 일으키는 아이넷을 키우는 주부의 이야기입니다.
내향적이고 소심한 사회초년생일 때 겪었던 직장 내 트라우마로 사람들과의 관계에 자신이 없는 제가 용기 내서 세상밖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쓰고 있습니다.
허드렛일을 하며 저를 일으키고 그 허드렛일의 고단함을 허튼 생각으로 뽀드득거리게 씻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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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주일은 이렇게 돌아간다.
월, 수, 금 오전에 5시간씩 큰 식당에서 설거지와 주방보조 아르바이트를 한다
화, 수, 목 오후에 6시간씩 고깃집에서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 12시쯤 집에 돌아온다.
토, 일 거동이 불편하신 시어머님 케어와 시부모님 식사를 챙긴다.
나는 일주일과 한 달의 기준이 날짜가 아닌 요일을 기준으로 돌아간다.
위에 나열한 요일대로의 스케줄을 끝내면 일주일이 지나가고 그게 4번 반복되면 한 달이 지나가는 식으로 공장 레일에 올려진 인생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
그런 삶에 잠시나마 숨통을 트이는 것이 토요일 오전 취미미술을 위해 화실에 가는 일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토요일 오전에 화실에 가는 것은 시부모님들과 주말을 보내야 하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주말을 반납하는 내 삶을 위로하는 경건한 의식이다.
토요일 밤 11시경에야 남편과 바통을 터치하고 우리 집으로 올라온다. (시부모님은 빌라 3층에 거주하시고 우리 여섯 가족은 4층에 산다. 결혼하고 20년 가까이 한 공간에 같이 살다 두 번의 시댁탈출 후 시어머님께서 큰 사고로 몸이 불편해지시면서 다시 합가 해서 극적으로 위/아래층으로 분리되어 산지 5년째다. )
원래대로면 토요일 밤 내가 어머님 환자침대 밑에 이불을 깔고 쪽잠을 자는 게 맞다. 그렇게 4년 넘게 살았고 일요일 7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삶을 살았다.
주말이 없는 23년의 세월. 늦잠 자는 게 소원인 나란 사람. 그래도 예전에 채소농장을 할 때는 새벽 5시에 어른들 식사 를 챙겨야 했는데 이제는 그런 삶에서 벗어나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나다.
한 달 전부터 일요일 오전에 시부모님 밥을 챙기려 내려가지 않고 늦잠을 잔다. 어느 날 몸이 아파 전날 국이나 반찬을 준비해 놓고 남편에게 일요일 아침상을 차려서 먹으라고 했는데 한 두 번 그렇게 해보니 세상 너무 편하고 행복한 거다. 이제는 글쓰기 숙제가 있다는 핑계로, 새벽 줌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더 좋은 핑계로 일요일 밥당번에서 벗어났다. 야호~~
그런데 이런 일요일의 평온을 되찾은 것도 잠시 요즘 들어 오후 아르바이트 사장님이 자꾸 내게 일요일에 대타를 부탁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작년 4월에 오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주말 인원이 빠지거나 일이 생기면 내가 그 자리를 메꿔가며 대타를 해줬는데 그렇게 몇 달을 하니 몸이 쉬질 못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괴로웠다.
이제는 되도록 일요일 오후만은 내 시간으로 확보하자, 아직 어린 초등학교 5학년 막내아들이랑 시간을 보내자 이런 마음으로 당일 전화 오는 대타 제의는 독하게 마음먹고 거절하려고 했다.
얼마 전 일요일 오후 5시, OO 사장님의 이름이 내 휴대폰에 뜬다.
불길하다. 불길해….
역시나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지금 급히 출근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네? 몸이 안 좋으시다고요? 아. 네. 지금 바로 갈게요.”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고 아르바이트 장소로 갔다.
정말 사장님이 아프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얼굴이 하얗게 떴다. 곧 쓰러지게 생겼다.
사실 그 쓰러질듯한 이유도 전날 나한테 가게를 맡기고 동창들과 술 마시러 가서 술병이 난 거였지만 아프다는데 어쩔 수 없이 내 일요일 오후를 포기하고 도와줘야지.
우리는 나름 가족 같은(?) 사장님 내외와 아르바이트생의 관계니까.
술병으로 거의 죽다 살아난 사장님은 당분간 절주를 선언하며 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나에게 설파했다.
그 후 얼마 뒤 토요일 저녁 늦게 사장님 전화가 또 온다.
이번에는 바로 안 받았다. 내 일요일 오후를 몇만 원의 아르바이트비로 퉁치기 싫었다.
그런데 문자가 온다.
어지러워서 내일 대타로 나와주면 안 되겠냐고…
아… 사람이 아프다는데 나는 그러마 했다.
일요일에 넘쳐나는 손님들을 받느라 대학생 아르바이트생과 둘이 종종거리며 일을 하다 음식값을 계좌로 입금하겠다는 손님의 말에 급하게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사장님 어눌한 목소리와 주변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내 신경을 건드렸다.
‘어, 뭐야…. 아파서 쉰다더니 술 마셨네….‘
순간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아프다고 핑계대면 절대 대타 안 해줄 거야.’
하지만 그 결심과 다르게 나는 이번 주 일요일도 대타를 나간다.
원래대로면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건데 일요일 오후를 반납하고 일을 해야 되는 것이다.
어제 아르바이트가 끝날 무렵 대타를 해줄 수 있는지 여부를 묻는데 내가 괜히 휴대폰 스케줄을 찾는 척하면서 뜸을 들였더니 여사장님이 말을 덧댄다.
“딸이 생일인데… 엄마 아빠랑 생일 파티하고 싶다고 해서… ”
에잇… 절대 절대 대타 안 해주려고 했는데. 나도 이번 주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었는데. 오늘 밤 일 끝나면 월요일 아침이 되기 전까지 푹 쉰다고 생각하고 일주일 버틴 건데….
“아… 생일이구나. 아. 그치…그치… 생일이면 애들 챙겨야죠. 그런 날 엄마, 아빠가 같이 있어줘야지… 맞아… 제가… 제가 할게요. 하하… 제가 하면 되니까… 생일 파티 잘하세요.”
그렇다. 애들 핑계에는 내가 거절할 방도가 없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니까.
결국 우리 막내는 이번 일요일에도 엄마 없이 보내겠구나 생각하며….
다른 집 아이의 행복을 위해 나와 내 아이의 행복은 미루는 게 맞나 심히 고민스러워진다.
’정말… 이번엔 생일이라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
나는 이번 한 번 뿐이라고 나를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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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바로 오전 아르바이트를 가야 한다. 옷도 아직 못 입었는데 알람이 빨리 나가라고 울린다.
여러분, 저 다녀올게요. (또르르… 왠지 흐르지 않는 눈물이 눈가에 흐르는 것 같다. 아… 내 주말…. 정말이지 대타인생은 괴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