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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그래 Oct 08. 2024

작은 동네에 생긴 카페 이야기

우리 동네는 몇 년 전만 해도 단층으로 이뤄진 오래된 주택이 많았다.  

편의시설이라고는 낙후된 노인정과 작은 편의점, 동네 안쪽에 점빵이라 불리는 작은 가게 두 곳이 다다.  

그러던 어느 날 산을 등지고 커다란 단층 건물이 만들어졌다.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지나가며 한 마디씩 했다.  

도대체 시골 동네에 이렇게 큰 가게가 왜 생기느냐고.  

오가는 사람도 드문 작은 동네에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그런 우려와 맞물렸는지 가게는 지어진지 한참이 되어도 불이 꺼진 채 주인을 찾지 못해 열리지 않았다.  

집기와 의자들이 수북이 쌓인 채 몇 달이 지나자 ‘그럼 그렇지... 누가 여기다 가게를 차리겠어?...’ 동네 사람들은 설레었던 마음을 아쉬운 한숨으로 내뱉었다.  

그 한숨이 소원탑이 되어 하늘에 닿을 때쯤 건물에 작은 불빛이 들어왔다.  나는 빼꼼히 큰 창안을 들여다봤다.  누군가 의자를 분해하고 있는 듯했는데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날마다 분해된 의자가 사부작사부작 쌓이자 내 기대감도 쌓인 의자만큼 커졌다.  어느 날은 페인트를 칠하고 어느 날은 테이블을 몇 날 며칠 만들고 ...

그리고도 한참을 더 기웃기웃거린 후에야 작은 깃발하나 달린 카페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카페에 이름이 뭔지 한참을 두리번거리고야 알았다.  

영문으로 나무테이블에 쓰인 ’아이라이크 마운틴‘. 카페 주인장의 손길이 투박한 듯 섬세하게 빛났다.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달빛 아래 사부작거리며 손끝발끝을 세우고 페인트칠하던 뒷모습,  

허리 굽혀 의자와 테이블을 만들던 모습... 뒷산에 카페 팻말을 세우던 모습... 한 달여 카페 외관과 공간을  손수 고치느라 허리에 무리가 와 부축을 받고 걸어가는 뒷모습까지도...


나는 이곳에서 주문할 때마다 케일키위주스? 키위케일주스? 하며 벽에 쓰인 메뉴판을 흘깃 훔쳐봐야 하는건망증 초기환자지만 그 건강한 맛은 잊지 않고 지인들에게 추천한다.  

예전에는 누군가 우리 집이 어디냐고 했을 때 “서울 가는 방향에 땡땡 어린이집 아세요? 아 몰라요? 아.. 그쪽 동넨데...” 이렇게 말했다면 이제는 “카페_아이라이크마운틴 아세요?

아보카도 오픈 토스트 유명한... 네네~ 맞아요. 뒷산 소나무 보이는 커다란 창문 있는 카페요.  네~ 거기가 저희 동네예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우리 동네 핫플이자 명소가 되었다.  


10월의 지금 그곳은 무엇보다 가을의 밤 떨어지는 소리가 듣기 좋은 가을명소다.  곧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며 큰 창문밖으로 눈 쌓인 나무들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비 오는 날 이곳에 오는 걸 좋아한다.  창문에 올려진 돌멩이와 빗방울이 만나는 서정적인 그 장면과 순간들을 사랑하고  무심한 듯 섬세하게 꽂혀있는 화병들의 꽃과 잎사귀의 늘어짐, 그 그림자를 사랑한다.  나는 그 순간을 기억에 새기고 싶어서 그림을 그렸는데 햇살이 눈부신 나무창살의 겹겹의 그림자는 수차례 그리다 덮고 또 덮어야 했다.  나는 좌절했고 이 그림에서 손을 놓았다. (결국 창살의 그림자는그려지지 못하고 덮혔다.)


부족한 그림이 되어 마음에 먼지가 앉을 때쯤 카페 인스타에 작은 초록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어 꽃대에 둥지를 튼 사진이 올라왔다.  

그리고 얼마 후 탈피하고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멋진 호랑나비 영상도... 나는 그 순간을 기다려 온 것처럼 그림 속에 나비의 일생을 그려 넣었다.  

그림이 뭔지도 모르는 내가 애벌레처럼 꼬물거리며 붓을 잡던 내가, 지금, 이 순간 번데기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꼼짝없이 제자리에 죽은 듯 있어도 그 안에서는 작은 날개를 애쓰며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다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려는 순간, 화려하고 멋진 호랑나비는 못되더라도 작은 나방이 되어 살포시 빛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그렇게 그 순간은 자연이 내게 보내준 삶의 전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작은 애벌레가 내 다음 그림에도 소재로 등장하게 되었다.  


나에게 실패의 기억을 안겨준 카페 창살의 그림자는  망치고 덮고 망치고 덮는 과정에서 실패가 쌓여도 다시 덮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 겁내지 말자라는  삶의 태도를 알려주었다.  

또한  원하고 추구하는 그대로를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새롭게 변주하고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를 그려 넣을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을 선물해 주었다.

앞으로도 삶의 그늘과 자연의 그림자라는 테마는  내 그림과 사진, 글 속에 자주 등장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휴식과 영감을 주는 동네 카페가 있다는게 행복하다.    


깊어가는 가을, 누구나 자신에게 삶의 반짝임을 선물하는 그런 공간 하나씩은 찾아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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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찰나] 2024. 한빛그림전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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