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홀저의 라이트 라인(Jenny Holzer : Light Line)
뉴욕 맨해튼 89번가에 위치한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은 독특한 외관과 나선형으로 설계된 내관으로 유명한 미술관이다. 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작품으로 20세기의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며, 2019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뉴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인 구겐하임 미술관의 정식명칭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부유한 실업가이자 자선가인 솔로몬 R. 구겐하임이 1937년 재단을 세운 후, 미술관을 개장하고 당시 최고의 현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디자인을 의뢰해 설계하나 여러 가지 문제로 1959년에야 완성되었다.
미술관은 외관벽이 하얗고 매끄럽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희미한 선들이 그려져 있으며, 색상과 텍스처가 공간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이트는 원래 대리석 외장을 계획했지만, 예산과 구조 문제로 건나이트(Gunite)라는 스프레이 콘크리트 기술을 적용했다.
드가, 마네, 반고흐 등의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그리고 현대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달팽이를 닮은 디자인의 계단이 없는 나선형 구조로,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지름이 넓어진다.
자연스럽게 걸어 올라가면서 작품을 구경할 수 있는데, 가운데가 빈 건축 공간은 실제 면적은 작은 편이라 관람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글 하나로는 미술관 전체를 담기가 모자라기에 두 편으로 나눠 글을 올리려 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9월 29일까지 열리는 제니 홀저의 라이트 라인 (Jenny Holzer: Light Line) 전시는 1989년 구겐하임에서 열린 제니 홀저의 상징적인 설치 작품을 재구성한 전시이다.
1989년 전시에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원형 건물 로툰다(rotunda)의 세 바퀴만 차지했던 작품이 이번에는 여섯 개 램프를 따라 L.E.D. 나선 위에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텍스트의 회전하는 리본으로 꼭대기 오큘러스(oculus)까지 올라가며 제니 홀저의 비전을 실현한다.
시간과 미디어를 넘나드는 정치적 언어로 하나의 서사시가 펼쳐지는 화려한 설치 작품은 <진리들(Truisms)>과 <도발적인 에세이들(Inflammatory Essays>과 같은 그녀의 대표적인 시리즈에서 선택된 스크롤링 텍스트이다. 짧고 강렬한 문구들은 1989년보다 두 배 긴 시간인 6시간 이상 반복 없이 텍스트를 스크롤한다.
제니 홀저는 1950년생으로 오하이오 대학교에서 판화와 회화 학사 학위를,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회화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뉴욕으로 이주하여 휘트니 미술관의 독립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1977년부터 언어를 통한 예술적 탐구를 시작했다.
1977년에 <Truisms> 시리즈를 시작으로 1979년까지 <Inflammatory Essays>와 같은 시리즈를 통해 수백 개의 짧은 문장의 언어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일상적인 불의에 대한 짧고 강렬한 평가에서부터 인생의 모순적인 측면을 다루는 문구들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드러나는 일관된 관점이 있다면,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라 적극적으로 참여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시 곳곳에 포스터로 붙여졌으며, 이후 전자 간판, 대리석 벤치, 건물 외관 등 다양한 매체로 확장되어 더욱 사회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1989년 구겐하임 박물관 전시에서는 나선형 램프를 따라 설치된 LED 디스플레이 보드를 통해 개인적, 정치적 문제 등 1980년대 미국 예술의 중요한 이슈들을 깜박이는 LED로 다루며 공공 예술의 실행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라이트 라인 전시는 1970년대 초기에서 현재까지의 제니 홀저의 회화, 종이 작업, 돌 작품과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비밀문서를 바탕으로 한 작품 등 다채롭게 전시되었다.
제니 홀저가 1980년대에 처음 사용했던 전자 간판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도한 비전자 작품들도 전시되었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독설이 담긴 금속판들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Cursed>(2022)에서, 제니 홀저는 납과 구리에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 후 발행한 트윗들을 새기며 재현했다.
나선형 길을 따라 올라가면, 하이 갤러리(High Gallery) 벽에 네온 색상의 종이에 검열된 문서들을 재현한 캔버스 작품들이 밝은 체커보드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 예술을 거리로 가져가고, 협력 작업을 중시해 온 제니 홀저의 초기 거리 예술 작업을 기리기 위해 갤러리 벽에 전시한 그녀의 <Inflammatory Essays>이다. 전쟁 지역에서의 은폐된 정보와 고통스러운 개인 증언들, 그 뒤에 숨겨진 잔혹한 현실을 강조한다.
거리 예술의 창시자 중 한 명이자 홀저의 오랜 협력자인 리 키뇨네스(Lee Quiñones)는 전쟁 지역에서의 고통스러운 개인적인 증언들 위에 그의 검은 손글씨 그라피티로 부분적으로 협업했다.
제니 홀저가 복제한 정부 문서 중, 검열되지 않은 문서에는 이라크 침공 직전에 미국이 점령할 수 있는 이라크의 석유 유전을 명확히 표시한 잘린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제니 홀저의 <Protect Protect metal>(2023)은 이라크의 석유 유전을 점령할 수 있는 위치를 표시한 간략한 군사 지도이다.
제니 홀저의 <Orwell yellow white I>(2006)은 조지 오웰에 대한 정부의 검열된 파일들을 담은 린넨 위에 오일로 그린 작품이다.
제니 홀저와 그녀의 스튜디오 팀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기하학적 추상화를 실험했다. <SLAUGHTERBOTS> (2024) 작품의 기하학적 형태는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생성되었는데, 예상치 못한 아주 작은 비대칭이 나타났다. 그녀는 AI의 신뢰성과 AI의 실수가 인명 피해를 초래할 때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질문한다.
미술관의 마지막 램프에서는 금박으로 덮인 7개의 캔버스가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중 트럼프의 내부 서클에서 퍼진 긴박한 소통 내용을 드러낸다. 한 텍스트는 "POTUS(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가 국회의사당에서 이 일을 그만두도록 해주세요. 폭도들에게 흩어지라고 촉구해 주세요. 간절히 부탁드립니다."라고 호소한다.
전시의 끝자락에서 그의 답변이 나타난다. 이는 미술관의 로비에 있는 유일한 작품인데, 이 작품은 트럼프가 1월 6일 집회에서 연설하기 전에 그에게 전해진 손글씨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당신이 준비되면
그들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They are ready for you,
when you are.
제니 홀저의 <READY FOR YOU> (2023)는 24캐럿 골드와 문 골드 잎으로 제작되었으며, 2021년 1월 6일 집회 전에 전 대통령 도널드 J. 트럼프에게 전달된 메시지를 재현한 것이다.
제니 홀저의 <For The Guggenheim> 2008/2024는 이번 전시 라이트 라인의 일부로, 구겐하임 미술관 외벽에 5월의 밤에 투사된 빛 작품이다. 그녀가 존경하는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등 시인들의 간결하고 가슴 아픈 시로 반총기, 반폭력 운동을 위한 공공 예술을 이어갔다.
제니 홀저의 스튜디오 작업 역시 협력적이며, 수많은 연구원들에 의존하고 있다. 그녀는 이해를 더하는 깊이 있는 정보를 전달하지만, 지침을 제공하거나 희망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가고 있는 어두운 길을 밝히려는 것이다.
제니 홀저의 이번 전시에서 그녀의 예술적 여정과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 등 그녀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이어서 구겐하임 미술관의 인상파 화가 등의 전시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