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3. 가족이 제일이라는 그녀
얼마 전, 지인과 만났다. 나와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연상의) 그녀는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그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순수함이 느껴진다. 그녀는 대체로 온전하고 다정한 원가족*이 있고 순탄한 원가정에서 성장했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그녀 인생이 평탄하다고 함부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알고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안다고 아마 살아온 환경이 대체로 순탄한 영향도 있어서 세상의 아름다운 부분과 사람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을까 추측만 해볼 뿐이다.
사람은 어릴 때 주양육자와 관계에서 타인에 대한 신뢰감과 세상에 대한 상(image)을 형성하기에 그녀의 그런 긍정적 지각(그녀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자신에게 친절하며 세상이 나에게 호의적이라 지각한다)은 어린 시절 안정적 가정의 영향이 있으리라 짐작하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애착이나 타인에 대한 상은 성인이 되면서 안정적이고 따뜻한 타인과 관계하며 변화될 수 있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분이 대인관계에서 최근 친구로부터 실망한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뭐 내 가족 아니니 그렇지 않을까? 늙으면 내 가족이 날 부양해 주지 친구가 날 도와주겠어?
사람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 느꼈던 그녀의 입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적인 말이 나온 것에 참 놀랐다. 그런 후에 그만큼 이번 관계에서 회의감이 컸구나 하는 이해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족 이외에 내가 선택해서 만드는 관계들(친구, 지인 등)은 정말 부질없는 것일까?
MZ세대에 대해서 기성세대들이 치를 떠는 부분이 손해보지 않으려 하는 마음에서 오는 정 없는 문화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그 세대에만 국한되어 있나? 요즘 다들 살기 퍽퍽한지 타인에게 배려, 시간과 마음을 내주지 않는 것 같다. 시대가 이렇게 건조하니 사람들 얼굴엔 웃음이, 생각에는 유연성이, 마음에 정이 고갈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다. 항상 약속시간을 자기 사정으로 어기지만 내가 늦으면 안 되는 사람, 카톡을 읽고 씹는 사람, 계산대만 서면 내 월급이 많다는 이유로 뒤로 빠지는 직장동료 등
이 모두가 내겐 너무 퍽퍽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손해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고 이전보다 요즘 인간관계에 대한 난이도와 피로도가 높다고 느낀다.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이런 비유가 맞을지 모르지만 적절한 관계란 마블링이 있는 고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름기를 덜어내면 살은 덜 찌겠으나 퍽퍽하고 맛이 없다. 관계에서 손해를 안 보면 좋은 거 같지만 정도 이해도 없는 관계는 퍽퍽한 고기와 다를 바 없다. 관계에도 이해와 배려, 때로는 손해를 따지지 않고 상대를 믿어주는 맘도 필요하다.
가족이 제일이라 말하는 그녀의 마음도 그런 의미에서 이해가 간다. 나도 관계에서 오는 실망감과 현타들로 관계를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 잡아본다. 나 역시도 관계에서 주고받는 것의 손익계산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려 본다. 손해보지 않는 관계여야만, 나이가 들어서 늙은 나를 보살필 수 있는 관계여야만 의미 있지 않다. 날 실망시키기도 외롭게도 만드는 게 인간관계지만 그럼에도 관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내 인생에서 나의 부족한 점을 비춰주고 나를 성장시키는 것만으로도 참 도움을 많이 받는구나 하고.
여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브런치라는 공간에서도 직접 만나보지도 않았지만 라이크를 눌러주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정과 연결감을 느낀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댓글로 소통도 언제든 해보아요^^
* 원가족(family of origin)
가족을 구조적인 측면에서 분류할 때 개인이 태어나서 자라 온 가정, 혹은 입양되어 자라 온 가족을 말하며, 근원가족 또는 방위가족이라고도 함(출처: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