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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ing myself Mar 24. 2024

우리가 평화로울 수 있는 적절한 거리감

episode 1. 애정이라는 이유로 상처 주는 그녀


   그녀는 또 선을 넘는다.

관심과 애정의 의미라며 내 옷 스타일이 촌스럽다, 살쪄보인다  등등..


  심리전공자이자 상담사라는 정체성은 가끔은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상담사라면 좀 더 의연하고 성숙할 것을 내게 기대하는 타인들의 눈빛을 알기 때문이다(물론 상담사면 인간적으로 꽤 괜찮은 사람이어야 할 것 같은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도 있다). 그녀로부터 자주 애정 어린 말이란 이름 하에 날카롭게 파고드는 말이 날아들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당황해서 말의 속도도 빨라지고 순간의 불편함을 장난으로 받아보고자 ‘아하하’하고 어색하게 웃어 보기도 한다. 상대와 헤어지고 나면 웃어 보인 내 모습에 더 화가 나고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며 다시는 그 사람을 보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하기도 한다.


   나는 또 다른 날 그녀를 보면 이 불편감을 말해보리라. 그녀와 그래도 아직은 잘 지내고 싶고 그런 무례한 말투 밑에는 나를 위하는 마음이나 행동도 있음을 알기에 잘 대처해 보자고 다짐하며 방에서 혼자 중얼대며 시뮬레이션도 해보았다.


‘나는 그런 말 들으면 좀 힘들어. 나는 충고보다는 지지해 주는 게 더 와닿는 편이야’


  다른 날.

드디어 또다시 그녀와 그런 불편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녀가 또 내게 불편한 말을 걸어온 것이다.

좋고 멋진 남자 인생 살며 한 번은 만나고 싶다며 잘 안 되는 연애고민을 이야기하는 내게

“아하하~우리 처지를 알아야지~우리 그런 남자 못 만나. 연봉 많고 괜찮은 남자가 널 왜 만나? “


쿠궁.

심장이 내려앉는다.

날 좋아한다는 그녀는 정말 날 좋아하는 게 맞을까?

이젠 그녀의 마음도 의심이 된다.

나를 낮춰 상처를 주고 싶은 걸까? 아니면 상대를 낮춰 자신의 자존감을 올리려 하나?


  지금이다!!

나는 그런 말이 소화하기 힘들고 응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게 자신의 스타일이며 받아들이는 나의 방식이 너무 예민하다고 이 세상 살 때 좀 독해져라고 한다. 일순간 마음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흐를 것 같고 그녀를 만난 후 집에 가는 길은 아주 차가워진다.

아.. 그녀는 나와 다르고 내가 원하는 걸 주기보다 그녀가 원하는 걸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

우린 더 친해지기 어렵겠다는 생각정리가 되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나도 미적 되며 미련이 남았던 것 같다. 관계 초기에 조심하며 배려해 줄 때 그녀의 따뜻함이 누구보다 따셨고 그 안에서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변한 관계는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노력할수록 더 좌절감이 밀려들고 그녀와 더 멀어지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약속과 카톡을 줄였고 보내는 시간과 마음을 줄였다.



    그러다 보니 그녀와 관계는 적절한 거리감이 생겼다. 추후 생각해 보니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들었던 바로 조심스레 추론해 보면 그녀는 그녀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경험되는 열등감을 동력으로 성장해 온 사람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열정적인 여자였지만 자신에게도 너무 가혹했다. 그녀는 단지 나에게도 자신이 사용했던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사용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그런 방식이 아프고 불편하다. 그녀의 일부분은 따뜻하고 좋지만 그녀의 나머지 부분은 내겐 너무 따갑고 아프다.


  잠깐은 불편한 그녀의 말에 그녀라는 사람 전부를 미워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다른 부분들(열정, 따뜻한 진심 등)은 또 내가 그녀를 참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린 전보다는 꽤 멀어진 거리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이에는 다치지 않을 정도의 빈틈은 생겼지만 깨지지 않은 채로 존재는 해있다. 그녀와 관계를 통해 적절한 거리감을 배웠다. 가까우면 깨지는 관계도 있다.



  당신도 누군가의 말이 아프다면 당신이 예민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다. 서로 살아온 삶의 방식,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당신의 세계에서는 상대방의 말이 아플 수 있다. 그러니 자책하지도, 당신이 아프지도 않았으면 한다. 우리 모두 꽤 괜찮은 충분한 사람이다.

첫 벚꽃. 까만 밤에 하얗고 붉은 꽃의 대비를 보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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