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은 대나무가 크는 것 같이 더디다.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성장이 더딘 나는 툭하면 잘 울어서 친구들이 잘 삐진다고 했다. 또 무언가 배우면 같이 배운 다른 아이에 비해 늘지 않아 가르친 이가 포기하고 싶을때즘 폭발적 성과를 보이곤 하는 편이었다.
소심한 난 커오면서 혼잣말을 많이 했다.
혼잣말은 그 소리가 작든 크든 마음에서 떠도는 말이라 바깥으로 절대 나가지 못하며 내 몸에 부딪혀 구멍을 내었다. 혼자 끙끙 앓으며 참는 마음의 소리는 하교 후,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실 때 등 혼자 있는 내 방 공간에서 숨죽여 우는 눈물로 세상구경을 할 수 있었다.
눈물의 주제는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님, 언니와 동생, 친구들이었다. 나의 괴로움은 대인관계였고 한 때는 뱀파이어 드라마에 빠져 나도 차라리 뱀파이어여서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여서 혼자 외로움을 견딜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으면 하는 망상을 꾸며내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이런 괴로움이 내가 일찍 심리학에 관심을 매료되게 한 것 같다. 괴로움을 어떻게든 없애고 싶었다. 그만큼 내 마음이 힘들었던 거 같다.
괴로움은 어느덧 학문적 관심으로 이제는 내 밥벌이가 되었다. 병원에서 정신과 환자의 심리평가를 하고, 만성의 정신과 환자들이 모여 지내는 재활시설도 잠시 일하고 이젠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인상담을 하고 있다. 상담 테이블에 앉은 나는 내담자*에게는 치료사이지만 여전히 갓 서른을 넘은 사회초년생이자 풋내기다. 여전히 은근히 비꼬는 지인의 말에 상처받고 텃세 부리는 동료가 아니꼬우며 연인의 이별통보가 가슴 아프다. 여전히 여리고 상처받는 여린 영혼이다.
느린 듯 더디게 성장하는 나의 대인관계 일기의 첫 페이지를 적어본다. 상담자로서 나의 장점은 절대 내담자를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이다. 그들도 언젠가 움터서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대나무 같은 존재라 믿어주고 응원하고 있다. 그럼 정말로 놀랍게도 언젠가 꽃을 피워냈다. 나 역시 여전히 미미하고 작은 성장의 움트임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 지켜봐 주는 나의 동반자로 나를 바라본다. 괴로움은 양분이 되어 나의 아름다운 성장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꽃은 어떤 모양과 색이며 향기일까? 기대와 설렘을 안고.
* 내담자: 상담을 받는 분을 지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