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고 주인공은 빛이 난다. 선망의 대상은 극의 중심에 있었고 이야기는 주인공을 위해서 존재한다. 10대의 사춘기는 풋풋한 첫사랑이 싹트는 성장 드라마가 최고였고, 20대의 열정은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로 애틋했다.
30대에 워킹맘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치명적인 사랑에 현혹되고, 900년을 살아온 도깨비조차 애절해지는 판타지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40대가 되어 내가 선택한 드라마는 마음의 울림이 있는 힐링이 중심에 서있었다.
그중에서도 대사 한 조각마다 메모지를 꺼내게 만드는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면서 나이 듦에 대한 여러 가지 단상들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친구들이 노년에 들어서며 겪게 되는 저마다의 소외를 다루기에 한없이 서글프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동행하는 과정은 눈물 나게 웃기고 가슴이 저리다.
처음 봤을 때 작가인 딸의 입장에서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쫓아갔다. 두 번째 보니 엄마의 친구들이 나누는 우정이 들어온다.
세 번째 다시 보니 누구 하나 주인공이라 말할 수가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살아낸 등장인물 모두가 주연일 수밖에 없는 다양한 인생이 어우러진다.
그래서 좋았다. 마음이 녹아내리고, 저마다의 별이 무수히 빛날 때 동기부여가 되었다.
울다가 웃다가 나도 모르게
'그래, 또 내일을 살아보자'는 마음의 용기가 고개를 내밀었다
주연배우가 누구인지를 따지던 시절이 지나고 조연이 눈에 들어오고 주연을 능가하는 조연의 연기가 감정의 몰입을 이끌어 낼 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주연과 조연은 극의 흐름에서 나뉘었을 뿐이라는 걸. 오히려 모든 배역의 합이 어우러질 때 보는 맛이 나고 응원이 커지고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된다.
지금까지의 나는 마치 조연배우인 듯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존재 가치가 지구의 작은 일부이지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내 인생도 주인공의 삶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삶을 담아낸 드라마를 보며 꿈을 꾼다. 하루하루 나를 다독여 살아내는 것이 결국엔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든다는 것을.
푸르른 청춘이 있고, 지지고 볶는 가족이 함께하며, 이웃의 아픔 속에서도 희망과 온기를 담아내는 모든 드라마를 사랑한다. 드라마 같은 인생을 내가 만들어 가고 있음을 매 걸음마다 기억할 것이다.
나의 모든 시기에 드라마가 있었고,
퇴사 후 혼자의 시간이 왔을 때
무엇보다 먼저 드라마를 되짚었다.
힘이 들어도
힘이 없어도
힘을 내려면
그래도, 드라마는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