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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는 길

by 윤기환


서울에서 부산, 다시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일본 시모노세키로 가는 먼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먼 길을 떠나는 여행은 부산스럽고 귀찮은 일이기도 하지만, 그 길은 늘 설렘이 실린 길이었다. 그 설렘이 있기에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불편하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오늘도 나는 길을 떠난다.


어제 꾸려놓은 배낭을 둘러메고, 내 두 바퀴 친구 '행복이'와 함께 집을 나선다. 지하철 7호선. 출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조금은 붐빈다. 승객들을 비집고 자전거를 들이밀기가 미안하다. 맨 뒷칸에 가까스로 자전거를 세웠다.


수서역 근처 식당에서 함께 떠나는 열혈청춘 동료들을 만났다. 거의 1년 만에 떠나는 해외 라이딩에 모두 밝은 얼굴이다. 이번 라이딩은 '열혈청춘만만세' 모두 함께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며칠 전 갑자기 생긴 집안일로 인해 한 명이 빠지면서, 아쉽게도 톱니 하나 빠진 여섯이서 떠난다.


지하철 3호선, 수인분당선, GTX, SRT가 교차하는 수서역은 평일인데도 혼잡하다. 오가는 사람들의 어지러운 발자국을 피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자전거를 포장했다. 늘 해오던 일이라 모두 쉽게 마무리하고 떠날 채비를 마쳤다. 열차 출발 시간이 다가온다. 무거운 가방과 자전거를 들고 플랫폼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길게 드러누운 SRT 열차가 우리를 기다리며 가쁜 숨을 고르고 있다. 열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으니, 편안한 행복이 스민다.


열차가 서서히 레일 위를 미끄러지며 창 밖으로 도시의 풍경이 빠르게 스친다. 한참을 달려 도시의 경계가 흐려질 무렵, 산과 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번잡한 도시를 버리는 일은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 듯 홀가분하다. 열차는 산과 들, 간간이 흐르는 강줄기를 품고 달리며 오랜 세월의 얘기를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흐르는 강물 위로 햇살이 부서진다. 우리가 국토대장정 라이딩을 할 때 지나던 강, 들, 산이 낯설지 않게 스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며 한잔 술과 함께 하룻밤 묵던 도시들도 스친다. 그리 멀지 않은 추억을 안은 풍경이 하루치의 행복을 안긴다.


남으로 남으로 달린 열차는 두 시간 반 만에 우리들을 부산역에 내려준다. 오후 세 시가 조금 넘었다. 다시 자전거를 조립하고 부산항으로 향한다. 부산역에서 부산항으로 가는 길은 고가육교로 바로 연결되어 편하다. 부산항이 시야에 들어온다. 회색 시멘트 바닥 너머로 드넓게 펼쳐진 앞바다에는 정박한 배들이 하늘하늘 가볍게 흔들거린다. 해는 은빛 윤슬을 바다에 뿌리며 서녘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다.


부산항 첫 만남


시끌벅적한 부산항 터미널.


자전거를 동반한 낯선 얼굴들이 하나 둘 모인다. 우리와 함께 할 라이더들이 분명하다. 서로 멋쩍은 얼굴로 삼삼오오 앉아 있다가 집합 시간이 되어 한 곳에 모였다. 서울 6명, 대구 5명, 경주 5명, 양산 3명, 부산 1명 등 모두 스무 명이다. 우리의 라이딩을 추진한 '여행스케치' 대표의 안내에 따라 각자 돌아가며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여러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출국 절차는 언제나 번잡한 일이다. 그래도 항공기 출국에 비하면 한결 빠르다.


배로 출국하는 첫 설렘을 안고 승선을 마쳤다. 갑판에 올라가 철제 난간에 기대어 항구를 바라본다. 뱃전 위로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눈앞에 펼쳐진 부산항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고요하다.


이제 곧, 바다를 건널 시간이다.


부산항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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