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간히 뿌리는 빗길을 뚫고 3시간을 넘게 달렸다. 중간중간 물과 간식으로 요기를 했지만, 배는 허기를 호소한다. 한적한 바닷가에 자리한 식당엔 의외로 손님들이 가득하다. 식판에 정갈하게 담겨온 음식들이 일본 특유의 색깔을 느끼게 끔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회 한 접시와 생선 조림, 바다 해초류, 국과 밥이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국과 밥은 더 시켜 먹을 수 있다 해서 한 그릇씩 더 먹고 나니 살 것 같다. 밖은 여전히 가는 비가 얼굴을 때린다. 겉옷을 챙겨 입어야 할 만큼 바람이 거칠고 쌀쌀하다. 모두들 바람막이 옷을 꺼내 입는다.
밥을 먹은 후 배부른 라이딩은 늘 버겁다. 힘든 페달링을 하며 산길을 따라가던 길이 시야를 확 트이게 하더니 바다 위로 길게 뻗은 다리가 보인다. 일본에서도 드라이브와 자전거 여행의 대표적 명소라는 쯔노시마 대교에 도착했다. 2000년에 개통된 1,780m의 다리로, 일본에서 가장 긴 해상 교량 중 하나라 한다. 완만한 곡선으로 길게 누워있는 다리는 마치 바다 위에 그어진 한 줄기 꿈같다. 맑고 푸른 수면 위로 미끄러지 듯 이어지는 다리 위를 달린다. 바람이 자전거를 흔들 정도로 거칠다. 난간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날카로운 비명처럼 쇳소리를 낸다. 바다는 거친 파도로 말을 건네고, 바람은 쇳소리로 말을 건넨다. 스무 명의 라이더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그들의 언어를 몸으로 듣는다. 마치 서핑을 하 듯, 꿈길을 달리 듯, 바다 위를 미끄러지며 달린다. 무엇에 홀린 듯 다리 중간쯤 잠시 멈춰 서서 바다와 바람이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다.
쯔노시마 섬은 작고 고요하다. 섬 끝자락에서 건너편을 바라본다.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조금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하다.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와 부서지는 포말 속에서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본다.
다시 다리를 건너 우리의 행렬은 나가토 쪽으로 길을 잡는다. 바다가 꼬리를 감추고, 산이 다가온다. 길은 점점 오르내리막으로 굽이친다. 내 두 바퀴 친구 '행복이'가 숨을 헐떡이고, 나도 가뿐 숨을 몰아 쉰다. 땀이 빗물과 섞여 짭짜름하게 입술을 적시고, 허벅지는 묵직하게 저려온다.
산 길이 숲을 품고 길게 이어진다. 숲에는 유난히 대나무가 많다. 하늘로 곧게 뻗은 대나무들이 장관을 이루며 우리에게 손짓한다. 행렬을 잠시 멈추고, 동료들과 정담을 나누며 물과 간식으로 휴식을 취한다. 조용한 숲 속에 앉아 댓잎을 스치는 바람의 울림과 새소리를 듣는다. 행복이 밀려온다.
종일 따라오던 비는 그치고, 우리의 행렬은 종착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서녘 해가 설핏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오늘 밤은 온천이 있는 곳에서 묵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글 행복을 그리며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