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타고 Day 5, 전일 해상
배 안에서만 풀로 노는 날 (AT SEA)
오늘은 배가 전일 항해하는 날이다. 기항지 정착 없이 배 위에서 머무는 날은 과연 어떨지,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가득 채운 SEA DAY로 돌아가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상추쌈으로 여는 하루: 크루즈에서 한식이 생각날 때 팁
엄마를 관찰하다 보면 은은하게 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기발한 생활의 지혜를 배울 때도 많다. 오늘은 엄마가 즐겼던 조식 뷔페를 좀 더 스마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한식이 생각날 때 유용한 방법이다.
샐러드 코너의 야채들은 대부분 잘게 잘려있기 때문에 쌈채소 같이 손바닥 만한 크기를 찾기는 어렵지만, 잘 보면 한국식 상추와 비슷하게 생긴 풀이 있다. 그 풀을 여러 개 모은 뒤 소스 코너에서 살사를 얹으면 얼추 쌈장 혹은 고추장 역할을 하는데, 이렇게 김을 싸듯 상추살사쌈을 먹으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한 가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여러 국적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식사하는 공간이기에 크루즈 식당에서는 컵라면 등을 먹기보다는 대신 볶음 고추장 튜브를 몇 개 챙겨가서 느끼할 때 볶음밥에 살짝 비벼 먹거나, 요 정도 상추쌈 대용으로 한식의 아쉬움을 달래는 것을 추천한다.
미술 작품 경매 행사(Art Auction): 갈까 말까
SEA DAY의 정오 행사 중 하나로 미술작품을 사고파는 경매 이벤트가 있었다. 궁금하긴 했지만 경매에는 참여해 본 적이 없고 특히나 미술 작품을 다룬다니 어딘가 부담이 되어서 망설여졌다. 그래도 후회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 용기를 내어 행사장으로 내려갔다.
입구에서 입장객 모두에게 나눠주는 샴페인 웰컴 드링크를 받고 나니 살짝 들떴다. 행사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고 꼭 작품을 사지 않더라도 나처럼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많았다. 경매 진행자가 작품을 하나씩 소개하며 낙찰했고, 갤러리에 걸려있는 다른 그림들도 전시회처럼 볼 수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바라본 그림이 있다.
춤추는 파도에서 피어난 해맑은 강아지 천사들
우리 슛돌이(나의 털 아들)도 저렇게 예쁘게 하늘에서 뛰놀고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생겼고, 반려견을 먼저 보낸 뒤 펫로스를 겪고 있거나 겪은 사람을 치유하고자 하는 작가의 말랑한 마음이 전해졌다.
파도에 열린 강아지 열매라니. 그것도 단체 떼샷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에 놀랐고 분명 애견인(Dog Person) 일 것이라는 생각에 찾아보니 Jim Warren이라는 이름의 작가였다. 예전에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강아지들이 천국으로 향하는 무지개 계단 그림을 보고 울컥한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 그림을 그린 작가였다.
All Dogs Go to Heaven
5년 전 작가 이름으로 검색을 했을 때에는 정보가 다소 적었는데 오늘 다시 검색해 보니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도 하고 현재는 디즈니 공식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역시 마음의 울림을 주는 작품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나 보다.
[참조] Jim Warren 작가 공식 웹사이트
Jim Warren Studios - World-Renowned Fine Artist & Illustrator Jim Warren
결론은 크루즈를 타면 그림 경매 행사에 꼭 참석해 볼 것을 추천한다. 그 이유는
1. 경매 행사가 끝나면, 상당히 잘 생긴 직원이 궁금한 작품에 대해 1:1 밀착 안내를 해준다.
2. 생각보다 중저가의 작품이 많고, 국제 배송(International Shipping) 서비스를 제공한다.
3. 입장만 해도 무료 웰컴 드링크를 준다.
4. 구매해야 하는 압박이나 없어서 아이쇼핑 혹은 전시회 온 듯 즐길 수 있다.
5.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이색 체험이라 기억에 오래 남는다.
6. 나의 감성이나 취향이 담긴 작품을 우연한 경로로 만날 수 있다.
풀사이드 스낵바와 수영장
점심에는 야외수영장 풀사이드 바에서 칵테일과 함께 버거와 핫도그를 즐겼다. 수영복에 라운지 웨어만 간단히 입고도 막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과 한낮의 여유가 좋았다. 브라우니는 맛있어서 두 번 갖다 먹었다.
크루즈 안에는 실내를 포함하여 야외 메인 수영장 등 여러 개의 수영장이 있다. 우리는 추위를 타는 편이라 물 안에서 수영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선베드에 누워서 잠시라도 바람을 느끼고 소소한 얘기들과 낄낄낄 웃음으로 오후를 채웠다.
부모님과 갈 때는 테라스 객실을 추천합니다: 불효녀는 웁니다
한 가지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자 엄마에게 지금도 미안한 점은 엄마가 SEA DAY 전 날부터 몸 컨디션이 약간 안 좋았던 것을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엄마는 "조금 누워있을게~ 나가서 구경하고 와~"라고 얘기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철없는 나는 혼자서도 배 곳곳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엄마는 원래 엄살이 없고 잘 내색을 안 하는 편인데(맹장 수술도 직접 운전하고 가심;;) 아마도 내가 여행 중에 걱정을 할까 봐 표현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묵었던 내측 객실 타입은 창문이 없어서 밖이 보이지 않아 엄마에게 답답함이 더해졌고, 기항지 투어를 안 나가는 SEA DAY 날이다 보니 더 갑갑하게 느껴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드레스업 하고 스시 레스토랑으로
오늘 저녁은 느끼함을 해소할 겸 스시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이곳은 유료 레스토랑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잘 선택한 곳이다. 우리나라 스시집과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는 기분도 낼 겸 깔끔하게 차려입고 배 안에서 포즈를 취하며 예쁜 사진을 남겼다.
유료 레스토랑이라서일까, 화려한 조명이 아래층까지 연결되는 테이블 전망이 훌륭했고 서비스도 좋았다. 자본주의의 위력이다. 또한 우리가 앉은자리는 전날에 이용한 아이스 바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어서 어제의 우리처럼 아이스 바 입장 전에 코트 색깔을 고르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스시, 롤, 야끼도리, 사케를 먼 곳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키덜트 모녀의 카지노 구경
배 안에는 카지노가 많았지만 우리는 카지노를 어떻게 즐기는지 잘 몰라서 몇 유료 정도 바꿔와 기계를 작동해 보거나, 빈자리에 앉아서 카지노에 열중인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어린이 체험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엄마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머, 어머 찍지 마세요"하고 웃는 엄마. 뉴스에서 본 현장을 따라 하는 걸까? 아무튼 너무 웃기다. 한결같은 순수함은 엄마가 가진 소녀 같은 모습 중 하나다.
내일은 드디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는 날이다! 오늘도 옴마미 덕분에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