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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 immi Feb 18. 2024

스페인 마요르카섬 팔마: 크루즈 기항지 ③

배 타고 Day 4, 기항지마다 관광을 나가야 할까? 고민이라면

오늘의 도착지는 스페인 마요르카 섬의 팔마



정식 명칭으로는 팔마 데 마요르카 (Palma de Mallorca)

팔마는 휴양지가 많기로 유명한 스페인에서도 사랑받는 해안 도시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3-4년 전부터 새로운 신혼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팔마 기항지 투어 대신 선택한 배에서 놀기

아무래도 지중해라는 먼 곳까지 왔으니 정박 항구(기항지) 마다 땅을 밟아보며 그 나라의 기운을 느끼는 것도 좋겠지만, 하루 정도는 많은 사람들이 기항지 투어를 나가서 한적한 시간대에 크루즈의 시설과 이벤트를 만끽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팔마 기항지는 도보 거리에 쇼핑몰과 해수욕장이 있어서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쇼핑과 태닝을 즐길 계획이라면 기항지 투어 선택을 권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간 만큼 배 안은 조용했다. 배에 남은 사람들 중에는 휠체어로 부모님을 모시고 온 자매들도 보였고, 온종일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 모녀가 있었다.


엄마와 나는 어제와 같이 선상 테라스에서 커피로 짠! 을 하며 하루를 열었고, 배 안의 한적한 레스토랑들을 구경한 뒤 방으로 가서 꿀 낮잠을 한숨 잤다. 

배 안에서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여러 공간 중 한 곳. 클래식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한두 시간 즈음 지났을까? 나무늘보처럼 침대에 엎드려서 오늘은 무얼 할지, 어제 배달 온 뉴스레터를 보다가 '그림 색칠하기' 프로그램을 찾았다. 엄마랑 나는 평소에도 일러스트 그림이나 채색 등 예쁜 색과 관련한 것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에게 최적인 이벤트였다. 예약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간편함도 한 몫했다. 이벤트 시간에 맞춰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니, 우리 말고 2명이 더 있었고 여러 개의 도안과 색연필 등의 그림 도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각자 도안을 고르고 낄낄거리면서 한 칸 한 칸 색을 채워나갔다. 엄마랑 함께한 의미 있는 컬러 테라피 시간이었다. 

엄마랑 내가 완성한 그림, 이 때까지만 해도 우리 손에 계속 있을 줄 알았다.


멕시칸 스낵과 맞바꾼 우리의 그림들

열심히 색칠을 하다 보니 (빈칸이 어찌나 많던지) 출출했던 우리들. 점심과 저녁 시간대 사이었어서 식사보다는 간식류가 당겼다. 나쵸랑 타코, 파히타 같은 멕시코 요리들이 나오는 근처 스낵 코너로 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오는 공짜밥에 신난다. 우리가 멕시코 맥주를 주문하니 "우리나라 맥주를 시켜서 반갑다"며 애국심 넘치고 친근하게 설명해 주던 멕시칸 서버친구가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하루가 다 저물 때 즈음 안 사실, 우리는 이 레스토랑 의자에 그림을 놓고 왔다. 사진이라도 남겨서 다행이라며.. 그렇게 서로를 위로해 본다.



아이스 바(Skyy Vodka Ice Bar)

이번 크루즈 여행에서 가장 이색적인 장소를 꼽는다면 이글루 컨셉의 아이스 바다. 먼저 입구에서는 맘에 드는 코트의 색깔을 골랐고, 간단한 안내와 함께 스카이 보드카 무료 교환권 티켓을 2장 받았다. 약간은 긴장된 채로 아이스 바로 연결되는 무거운 쇠 문을 조금씩 열었다. 집에서 냉동실을 열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설레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말고도 이미 와있는 여러 커플과 가족 그리고 어린아이들도 보였다. 북극곰을 상징하는 얼음 조형물에 네온 색 조명이 더해져 더욱 특색 있는 공간이 연출됐다. 바 카운터로 가서 건네받은 '얼음으로 만든 와인 잔'. 말 그대로 레알 얼음잔에 담긴 영롱한 핑크색 보드카가 나왔다. 엄마랑 나는 이 진귀한 상황에 계속해서 웃음이 나와서 낄낄대며 사진을 찍고 또다시 짠! 을 했다. 5분 정도가 지났을까. 아니면 체감 상 5분이었을까. 약간씩 추워오긴 했지만 견딜만했다. 우리들보다 더 먼저 와있던 꼬마 아이들도 잘 견디며 놀고 있었다. 

아이스 바 안에서 보낸 즐겁고 이색적인 시간


그런데 급 신호가 왔다. 엄마랑 나는 한 여름에도 히트텍 목폴라를 입고 잘 만큼 평소 추위에 약한 사람들인데 동시에 냉기가 확 올라와서 이제는 나가야겠다고 느낀 것이다. 어딘가 사우나에 들어가면 끝까지 버티다 갑작스레 '아 나가야겠다'라고 맘먹을 때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약간 허둥대며 출구를 찾았는데 바 직원이었는지 같이 있던 손님이었는지 "어 거기 출구 아닌데"라고 얘기했다. 알고 보니 살며시 급해 보이는 우리를 보고 살짝쿵 놀린 것이다. 그들이 다시 알려준 출구 문을 열고 마지막 5초는 흡사 탈출하듯 빠져나왔다.


오 살았다!!
아이스 바(Ice Bar)에서 나온 직후 - 약간 떨면서 안도하는 모습. 스릴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우리 발로 스스로 찾아 들어갔던 아이스 바를 빠져나와서 이번엔 또 다른 바가 위치한 6층으로 옮겼다.



유료 칵테일바는 무료(일반) 바와 어떻게 다를까

일반적으로 크루즈를 예약할 때, 음료와 주류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옵션을 추가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출발일자에 임박해서 가는 라스트 미닛 여행이었기에 예약이 꽉 차서 진행하지 못했다.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평소 주량이 세지 않은 편이라면 그때마다 맥주, 와인, 칵테일 한두 잔씩을 사 먹는 편도 괜찮다. 왜냐하면 음료/주료 무제한 옵션을 추가했더라도 또다시 돈을 내고 이용해야 하는 유료 바가 있기 때문이다. 


유료 바는 무료 바와는 은은하게 차이가 있었다. 칵테일 장식도 더 예쁘고, 라이브 재즈 피아노 공연도 있었으며 바 서버도 남달랐다.



내가 아시아계 대표는 아니지만

칵테일 제조를 담당했던 바 서버 중 한 명은 본인이 필리핀에서 왔다고 하며, 엄마와 나를 무척 따뜻하게 맞이했는데 이 바에서 일하는 동안 아시아 사람을 오랜만에 본다고 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서비스 칵테일도 슬쩍 건네주었다. 아래 사진 속 핑크 잔이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으나 미국이나 유럽에서 많이 봤던 것처럼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은 유색 인종(혹은 아시아계), 서비스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일명 백인인 그림이 많이 보였다. 특히나 해당 바가 위치한 6층은 바를 포함해서 레스토랑까지 유료로 운영하는 업장만을 모아놓은 곳이었는데, 손님으로 온 사람들 중에 아시아 사람은 우리 모녀와 목소리가 조금 컸던 중국인 몇몇 뿐. 그 외 6층에는 모두 하얀 사람들이었다. 


배에서 며칠 보내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가족 단위 여행 혹은 단체 패키지로 온 사람들도 적잖게 보였는데 이곳에서는 마주치지 못했다. 유료 바라고 해서 터무니없는 가격이 아니기 때문에(한국 일반 바가격 수준) 한 번쯤 꼭 방문하면서 또 다른 분위기도 느끼고 아시안들도 많이 이용한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Chill~ 즐겨~

엄마랑 내가 발견한 외국인들의 한 가지 웃픈 특징. 우리도 배에서 지내는 동안은 매일같이 괜히 잔을 들고서는 야외와 실내를 많이 걸어 다녀봤는데, 무언가 더 여유로운 느낌도 나면서 신기하게 흥이 더 생겼다.


다들 그렇게나 술잔을 한 손에 든 채, 걸어 다닌다는 점
필리핀 서버 친구가 같은 아시안임을 반가워하며 슬쩍 준 선물 - 핑크 칵테일 | 잔 들고 걷고있는 엄마 ㅎㅎ




친구 같은 엄마

엄마는 내 또래 엄마들보다 실제로도 어린 편에 속하지만, 예전부터 새로운 경험을 지지해 주고 이해해 주는 친구 같은 엄마다. 반항심 많고 청개구리 같던 육아 난이도 최상인 내가 비행 청소년을 면할 수 있게 해 준 일등 공신이랄까. 그리고 어릴 때부터 학생 때는 물론 직장인이 되어서도 우리 가족 모두의 아침 식사를 새벽같이 차려주시거나 도시락을 챙겨주셨다. 그 시간들이 이번 7박 8일 크루즈 여행으로는 0.0000001%도 대체될 수 없겠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엄마에게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길 마음속 깊이 바란다.



용감한 엄마

엄마는 평소에는 I(내향형)으로 보이지만, 많은 여행을 함께하며 내가 본 엄마는 E(외향형)다. 새로운 음식이나 경험에 움츠려들지 않고 오히려 더 즐기는 편이다. 외국에 가서 혼자 줄 서서 영어로 주문해야 되는 상황도 서슴지 않는다. 아마도 나의 모험심은 엄마를 닮은 것 같다. 

영화배우 같은 엄마 - 나에게는 왜 그중 10%의 유전자만 온 것인지 늘 의문




팔마 해상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보랏빛 하늘

꿈결처럼 아름다웠던 풍경. 팔마를 뒤로 하고, 배에서 전일 시간을 보내는 At Sea Day 일정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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