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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Dec 30. 2023

런던에서 보낸 1년 (1)

영국 워킹홀리데이

'인생은 여행.'이라고 했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 3'에서 기안 84는 영어로 답했지만 직역하자면 그런 뜻이었다. 어차피 태어난 인생이라면 저마다 다른 사람이라면 내가 살아가는 길이 바로 여행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의 삶을 원했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 말이다.

그때는 고등학교 입학 후 입시라는 경쟁과 관계에서 오는 회의에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고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말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가까스로 입학한 대학 생활에서도 남는 것이 하나 없었다. 친구도. 추억도.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다. 유럽 배낭여행 이후 영어라는 언어에 관심이 갔다. 아르바이트 점심시간, 모니터에서 뜬 팝업창에 적힌 공고를 보고 떠날 준비를 했다. 마치 꿈이라도 생긴 듯 흥얼거리기까지 하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부족한 살림에 어학원 등록을 도와주셨고, 그때 내 꿈은 큐레이터였다.

시작되었다. 내 인생의 굴곡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부모 없는 그늘이 실로 냉혹하고 차디찬 냉골인줄은 생각지 못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아빠에게 받은 애정과 자신감뿐이었다. 어학원에서의 배움은 단 2주만 주어졌고 홈스테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기간 안에 일을 구해야 했고 통장 잔고는 0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맨 땅에 헤딩’이란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으니 겨울이란 계절에는 뼛속까지 추울 수밖에 없었다.

워킹홀리데이 2기에 지원했고 어학원에서 같은 이유로 런던에 머무는 이들을 만났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취업하는 모습을 보니 영어도 중요하지만 외모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내 머릿속은 거미줄처럼 엉켜만 갔다. 나 역시 그 포지션에 지원하고 면접까지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필리핀 지배인이 남자와 일하고 싶다는 답변이었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직원 전용 식당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채용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담당 매니저는 선심 쓴다는 듯이 택시를 불러줬다. 동향 사람이라 대우해 주는 것이라 했다.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 내 모습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비쳤을지 모른다. 말을 시켜도 대답이 없었고, 초점 없는 눈에 벌어진 입 틈 사이 나오는 숨은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을 그려냈다. 런던 택시를 타본 것은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런던에서 2년을 보낼 수 있었다. 기회가 있었지만 계획 없는 날들은 계속해서 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으며 버려진 음식에 손을 대기까지 했다. 난생처음 가난을 경험했고 일을 해도 통장 잔고는 여전히 0에 가까웠다. 튼튼한 집, 폭신한 이불, 모락모락 끓는 김치찌개, 따뜻한 밥 한 공기가 너무 그리웠다. 라면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았고 통조림과 패스트푸드만으로 끼니를 때웠다.

어느 날이었다. 생리 때 피가 멈추질 않아 공공병원에 찾아가 의사들을 만나 무료 진료를 받고 약도 처방받았다. 어학원에는 나가지 못했다. 빈주머니는 평범한 삶을 뭉개뜨렸고 절망은 끝도 없이 짙어져만 갔다. 누구를 찾아가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점점 마른 비만처럼 배만 나오는 자신을 탓하기에 바빴다. 한 달이 막 지나갈 때쯤 친구들과 가족의 품이 매섭게 그리웠고 하루하루가 위태로웠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내가 살았던 렌트 하우스 인근에 있는 식당 모두와 시내 카페까지 이력서를 수백장은 돌린 것 같다. 알바계의 에르메스급이었던 스타벅스, 코스타, 프레따망제 등 유명 커피숍은 무척 콧대가 높았다. 브렉시트가 시행되지 않았을 때라 유럽 전역에 있는 노동자 신분의 사람들이 밀집해 있던 시절이었다. 겨우 한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 갔다. 그리고 나는 매일 한 문장씩 정확히 습득하기 위해서 마트나 서점에 들러 직원을 붙잡고 다짜고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스타벅스에 일하는 한국인을 만났다. 1존에 있는 스타벅스에 모조리 레쥬메를 돌렸는데 전화도 메일도 없었으니, 그녀는 마치 혜성처럼 빛나는 존재였다. 그렇게 얻은 팁으로 레쥬메를 다시 돌렸고,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웃으며 꼬박꼬박 직원들의 눈도 마주쳤다. 나의 태도를 고쳐가며 노력했고 렌트 하우스에 있는 모두가 나를 응원해 줬다.

돈이 없다는 것은 가장 서러운 일이었다. 한국에서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어둠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난 적도 없었고 영혼마저 위태로웠던 적도 없었다.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다행히 1시간도 되지 않아 채비를 마쳤다. 알람만 수십 개나 맞춰놓았던 날인데 자연스레 눈은 떠졌다, 한적한 2층 버스에 몸을 실을 생각으로 견딜 수 있었다. 버스정류장의 전광판에 뜬 도착 5분 전이라는 문구에 고개를 떨궜고 이내 버스는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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