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워킹홀리데이
스타벅스에 일하기 전에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무려 일당이 20만 원에 달하는 일이었다. 시답잖은 한인 사장밑에서 최소 시급 받고 일했던 것에 비하면 황금마차를 타고 출근한 뒤 퇴근 후에는 우아하게 칼질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비록 3일밖에 되지 않지만 며칠은 거뜬히 살아낼 수 있는 돈이었다.
런던에서 ‘코리아 브랜드&한류상품 박람회(KBEE) 2013’을 열었다. KOTRA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고 산업통상자원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는 박람회였다. 박람회 개최 소식을 한인사이트인 '영사 uk'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알았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재빨리 지원서를 넣었다.
전에는 일자리 구하려면 직접 원서를 넣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산 교대역에 위치한 국제신문사 앞에는 서류를 내려온 인파가 마치 백제 사신들 같다고 들었다. 여기에 지원하며 수많은 경쟁자들을 생각하고 우연히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원 버튼 클릭 한 번이면 되니 실감은 안 나지만 국가에서 진행하는 행사라 그 문턱이 과중되었으리라 생각했다.
이것은 우연한 기회였고, 신물 난 일상을 탈피하기 위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인구직사이트에 출석했기 때문이었다. 현지 한인들만 지원이 가능해서 영어 점수도 필요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공고를 보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와 이를 계기로 다른 물꼬가 트이지 않을까 싶었다. 가슴에 콕 받힌 희망인지 모를 응어리를 달래기 위함이었다.
런던에서 열린 단기 박람회가 열리기 전에 소집회가 있었는데 11월 초였던 것 같다. 타워브리지와 인접한 곳에서 행사가 열렸고 행사 오픈 전 선발된 인원을 전부 모아 설명회를 열었다. 나는 단 한 번의 참석을 위해 세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야만 했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부스는 아직 행사 준비로 어수선했고 2층 전시장에서 설명을 들었다.
어떻게 시작되고 끝났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나만 빼고 모두가 바빴다. 그들과 나 사이 다른 시간이 흘렀다.
게임회사 부스에서 일한다고 전달받는다. 그곳의 안내원 역할을 수행한다. 멋진 양복을 빼입은 신사들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물 빠진 검은색 청바지를 입고 있다. 비싼 안경테와 은은한 광이 도는 구두, 완벽한 정장차림은 나를 압도한다.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은 또 벌어진 채 두리번거린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행사장에서 일하며 동갑내기 친구, 동생, 언니, 오빠들도 만났다. 나이가 어려도 원어민같이 자신감 넘치고 일도 잘하는 똑순이와 캐나다에서 어학연수 후 런던대학원 예술학과를 다니는 금수저 언니, 영어는 부족해도 자신감 하나는 끝내주는 고려대생과 같이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생겼다. 그리고 이 일이 끝날 때 엔씨소프트 직원들에게 명함을 받는 장면은 아직도 또렷하다. 나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작은 점보다 더 작아졌다. 방송용 카메라를 들고 온 현지 프리랜서 감독이 요청한 인터뷰에 응하지 못했고 나를 제외한 동기들은 유창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당당한 그들 사이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합격한 이유가 궁금했다. 어떻게 서류만으로 합격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그 궁금증은 일할수록 심해져 갔다.
24살의 이력서에 적힌 그럴싸한 굵은 고딕체는 그것뿐이었다. ‘여수엑스포’란 다섯 글자 밖에 없었다. 대전 엑스포 이후로 19년 만에 열린 BIE 공인박람회였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돈을 벌어 갔다.
그랬으니 말이다. 런던의 스타벅스 면접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내 이력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했다.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것이. 화려한 경력보다 끈기와 절실함이 필요한 일이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물론이거니와 카페 경력도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생초짜 동양여자애를 두고 어떤 근거에 의해 그러한 판단이 내려졌는지 모르겠지만 추측해 본다. 고깃집이나 마트 일이 다였는데 어떻게 바리스타를 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