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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Jan 20. 2024

런던에서 보낸 1년 (4)

영국 워킹홀리데이

"헬로...? 경혜입니다."

"난 스타벅스 엔젤점의 매니저 알렉산드로야. 캠든점 매니저 알지? 그가 너의 연락처를 줬어.“

"정말? 너무 반가워."

"다음 주 월요일 오전 9시까지 여권이랑 비자, 은행 계좌 사본 들고 와."

".. 뭐라고? (3초간 정적) 스타벅스 엔젤점으로 서류 챙겨갈게."

"그래. 그때 보자.“


나는 이상한(?) 방식으로 스타벅스에 합격했다. 면접은 캠든점에서, 일은 엔젤점에서 한다? 나의 슈퍼 싱글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했다.  ‘나 진짜 스타벅스 합격한 거야?’ 볼을 꼬집어 볼 수도 있지만 분명 내가 아는 단어로 말했다. 그렇다면 잘못 들은 것은 아닐 터! 꿈인지 생신지 구분이 어렵다. 진짠지 아닌지는 월요일이 되면 알겠지!


주말에 합격 파티를 했다. 집안사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그간의 고생이 대단한 것처럼 격려도 받았다. 나만 일자리가 급한 워홀러였지만 진심으로 축하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당시 한국에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와 이별할 생각조차 못했고 런던에서도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시도할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어딜 가나 홀로 지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점 이 생활이 편하지기도 했다.

내가 살았던 플랏은 직사각형으로 3평이 안 되는 작은 방이었다. 내 옆 방은 킹사이즈 침대가 들어가고 방에서 뛰어놀아도 될 만큼 넓었다. 그래서 우린 그곳에서 작고 큰 파티를 열 때가 많았다. 그 큰 방에는 한국 최고의 예술학교를 졸업한 발레리노가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었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부류였다. 결혼 전까지 살았던 과거에 본가는 공사하기 전 1층에 전세를 주고 2층에 살았는데, 그때 아랫집에 대회를 휩쓸던 한눈에 봐도 예쁜 발레리나가 있었다. 그때 이후로 발레를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이 발레리노는 화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낯설고 무한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발레는 왜 그만뒀는지 정확히는 졸업 후 발레와 멀어진 이유를 그의 눈망울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 그는 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매일 마주쳐도 새로웠다. 어느 날은 어깨를 들썩이며 팔을 휘휘 젓는 거만한 행동에 놀라고 ‘(사투리를 장착하고)긍혜야~’ 부르는 소리에 두렵기도 했다. 사실 그는 내 타입이 아니었다. 망측하고 거북스러웠다. 우리의 웃음코드는 정반대였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나를 웃기려고 드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은 딸이 생기면 나 같은 애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였으면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두고 모양을 낼 수 있었지만 그저 부담이 되는 존재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친구도 가족처럼 만나서 나와 비슷하고 닮은 구석이 있어야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편이다.

유연하고 다부진 그는 갈지자 모양으로 잘 걷는다. 훤칠한 키에 쌍꺼풀이 없지만 매부리 코에 두툼한 입술을 가졌다. 실내에서만 있었던 것인지 투명한 피부도 이목을 끄는 요소였다.

“내가~ 상경해서 서울에서 지냈다이가.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잘 나갔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집이 힘들었다. 그래서 엄마 혼자 대구에 두고 용돈까지 받아쓰는 게 여간 폼이 안난다이가~ 엄마가 아무리 선생이라 해도 나도 남잔데!“

“어머니가 선생님이셔? 그래도 네가 부모 먹여 살릴 걱정은 없겠다. 서울생활이 좀 쉽나? 그리고 예술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드라. 나도 큐레이터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알아보다 결국엔 인맥에 돈줄싸움이라서...”


잘 나가던 발레리노는 끝내 꿈을 펼칠 수 없었다고 했다. 사치를 부려야 부자친구가 남아 있었고 자신을 팔아 생존했다 전했다. 탄탄대로의 길을 걷는 금수저에게는 꾸준한 연습만이, 내가 아는 발레리노는 잔존을 위해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담가야 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정치계 사람들부터 국회의원이 된 친구, 그리고 연예인이 된 발레리나도 그 무리 속 몸담았던 인물들이다.


귀를 기울였다.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가졌다. 돈이 되는 일은 다한 것 같다. 화장품을 팔며 여러 사모들과 관계를 가진 스토리는 심장 떨리게 했다. 그래서 더이상 듣지 못했다. 어려웠다. 그의 인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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