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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Jan 13. 2024

런던에서 보낸 1년 (3)

영국 워킹홀리데이

나는 수백 장의 레쥬메를 돌렸다. 그러곤 연락을 기다렸다. 여전히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한숨만 쉰다.

글로벌 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지방국립대를 졸업하고 경력이라곤 여수엑스포에서 잠깐 일한 것과 주민센터에서 일한 경력뿐. 그리고 대학생 때는 고깃집과 마트에서 용돈벌이를 했다. 첫 아르바이트는 마트 서점이었고 그 이후로 마트에서 시식과 시음을 권하는 행사직원으로 일하며 반짝 돈을 벌었다. 명절이나 특수일에 알바를 뛰면 수입이 짭짤했다. 그러다 대박을 친다. 발렌타인데이 때는 담당 브랜드를 완판 하는데 이르고 인센티브를 왕창 받게 된다.


외국에서 세금을 내는 것은 ‘모국어’를 잘한다는 뜻이다. 외국인 노동자로서 어느 정도 그 나라 언어를 할 줄 알아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하루살이처럼 살면서 영어 공부를 미뤄선 안 됐다. 그래서 나는 유일하게 인터뷰를 본 곳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졌고 결국엔 탈락 통보를 받게 된다. 그러곤 목이 터져라 세상이 떠나갈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불과 스물네 살 때였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냈고 땅이 꺼져라 소리쳤다. 또 며칠간은 침대에 누워 죽은 사람처럼 지냈다. 끝이 보여 바닥에 주저앉아 현실의 벽을 치고 있었다.


그는 악덕 사장이다. 입에 욕모터를 단 듯, 자신의 아내에게 상스러운 말을 퍼붓는다. 그는 런던 내 한인사회에서도 유명한 나쁜 놈이다. 직원이 다 있는 홀에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속사포로 쏟아낸다.

“저는 더 이상 욕 듣기 싫어요.”

“근데 어쩌겠어. 입 닥치고 일하지 않으면, 또 자기 부인 데려와서 우리 들으란 식으로 욕할 거잖아?“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애를 일찍 낳은 두 명의 중국인들과 함께 일했다. 한중전처럼 보이겠지만 애엄마가 매니저였고 우린 그 밑에서 허드렛일 하는 한국인 노동자였다.

그리고 또 다른 곳의 사장은 독신녀였다. 그녀는 지긋지긋한 히스테리를 달고 사는 전형적인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작은 실수에도 소리를 꽥꽥 지르고 정을 붙이려던 사람들마저도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제대로 된 한식당은 소호에 많았지만 손님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장이 사업 전선에 뛰어들어 있어 아르바이트생들을 힘들게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을까.’

화려한 제스처를 취하던 스타벅스 매니저가 그저 신기했던 날이다. 인터뷰할 때 느낄 수 있었다. 족히 100장은 넘는 이력서를 돌리고 딱 한 군데서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했지만 인터뷰를 본다고 다 붙는 게 아니었기에 영어가 한참 부족한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대부분 캐주얼한 차림으로 면접을 가기 때문에 나 역시도 평소에 입던 것 중 가장 스타일쉬한 착장으로 골라 입었다.

영국 스타벅스 캠든점은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로 유명하다. 그만큼 관광객도 많고 로컬도 많다. 또한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넘친다. 나 역시도 2층 테라스가 있고 새하얀 외관이 인상적인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싶었고 운 좋게 인터뷰까지 본 것이다.

오후 4시쯤이었나 인터뷰를 보기 위해 30분 전에 도착해 대기했다. 일하고 있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내가 몇 번째 면접자인지 슬쩍 물어봤다. 내 다음 순서에 한 명이 남아 있고, 나는 아홉 번째로 면접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수십 명의 지원자를 만나고 단 한 명을 색출하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그저 그들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였고 한국에서 보던 아르바이트 면접과는 정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면접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 금방 내 차례가 되었다. 그가 내가 하는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나는 20가지가 넘는 질문을 받으면서 매번 같은 단어, 짧은 문장을 구사하며 부연 설명과 머리 속에만 가득한 근거들을 내놓지 못해 그들을 지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서로에게 득이 없었던 면접이 끝나고 매니저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경혜, 잘 들어. 사실 네가 면접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여기 일하고 있는 어느 직원 때문이야. 네가 직접 이력서를 건네면서 받은 인상이 좋았다고 했어. 그래서 우린 너에게 면접의 기회를 준거야. “

“(마치 직감이라도 한 듯)아.. 그랬구나. 그 사람한테 정말 고마워. 그리고 면접을 진행한 너희들에게도 고마워. 내가 질문에 알맞은 대답을 하나도 못한 것 같은데 끝까지 경청하려고 노력해 줘서 고마워.”

매니저가 오래도록 나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애써 웃으며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가 되든 안 되든 연락은 갈 거라고 했기 때문에.


정확히 3일이 지나 모르는 전화번호로 연락이 왔다.

“경혜, 잘 지냈어? 캠든 스타벅스야. 아쉽지만 우리랑 함께 일하지 못할 것 같아..”

“아 정말.. 알겠어. 그리고 고마워.(ㅠㅠ)”

“근데 우리랑 일은 못하겠지만 내가 다른 곳 한 번 알아봐 줄게.”

“아.. 그래? 알겠어. 고맙고 잘 지내.”


영국 런던에서 본 최초이자 마지막 인터뷰였다. 무모했고, 눈이 높았다. 워킹홀리데이 초창기라 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낮았고 소통이 어려우면 뽑지 않았다. 당연히 안 될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을 못 이뤘던 때였다. 이 기점으로 내가 런던에 남느냐 떠나느냐가 결정되니깐. 고작 2주 동안 어학원에 다니는 것은 될 일이 아니었고 불가능으로 가는 과정이었다. 그래도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계속 도전했다. 지옥 같은 식당에서 벗어나고 싶은 절실한 마음에서였다.


여느 때와 같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나에게 전화를 걸 사람은 거의 없는데, 특히 모르는 번호는 더 그렇다. 주변엔 한국인들뿐이고 외국인들에게는 메신저 아이디만 알려줬기 때문이다. 시답잖은 진동이 울리자 고요 속에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처음 보는 번호라 받을까 말까 망설인다.

‘최근에 이력서를 낸 코스타 커피숍인가?‘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모르는 전화 같은데 진동이 울리는 몇 초사이 받을까 말까 엄청 고민했다. 이내 식은땀은 등줄기를 타고 흘렀고 상기된 표정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책상 아래 깊숙한 곳에 떨어져 있던 이력서를 청소하다 발견한 것일 수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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