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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Jan 06. 2024

런던에서 보낸 1년 (2)

영국 워킹홀리데이

좀처럼 응고된 고독함은 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까맣고 큰 돌덩이가 자리한 것처럼 걷기 힘들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매일이 생존의 문제였고 내가 하루라도 일을 쉬게 되면 더 이상 급여를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돈이 떨어지면 그대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기에 누군가에게 의지할 생각도 미처 하지 못한 채 버거운 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바늘구멍 크기의 빛도 보이지 않던 시간. 아름다운 노동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날들. 매달 120만 원씩 내며 쪽방살이를 했다. 박사과정을 밟던 30대 부부와 어린아이 한 명, 일본어를 능통하게 하는 30대 여자, 그리고 잘 나가는 발레리노였던 20대 남자 한 명 이렇게 총 6명이 2층 집에서 지냈다. 1층은 주인 부부가 쓰고, 2층에는 3개의 방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작은방에서 약 8개월을 지냈다.

런던 시내와 가까운 한인들이 주로 모여사는 스위스 코티지를 훌쩍 지나 골더스 그린 쪽에 가까운 집이었다.

골더스 그린은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내가 살던 곳은 그곳과 버스 두 정거장이면 오갈 수 있었다. 한인 마트와 스타벅스가 있어 자주 방문했고, 검은색 중절모를 쓴 구레나룻과 턱수염을 엮은 유대인들을 볼 수 있었다.


런던에는 다양한 유학생들이 존재한다. 학생 비자로도 주 20시간을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공부하면서 용돈벌이를 하는 한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한식당에 일하는 직원 간에도 차이가 존재했다. 공부하며 용돈 벌이를 하는 대학생과 월세 내기도 힘든 외국인 노동자는 어감부터가 다르다. 목표의 가치 또한 달랐다.

나의 전 플랏메이트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패션 전공자인데 한 달 용돈이 너무 적어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지내는 방보다 2배는 넓고 채광도 끝내주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는 그런 그녀를 마냥 부러워했다.

“한 달 용돈이 200만 원인데 뭐가 부족해요?”


런던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아시아 여자를 노리개로 본다는 것인데, 소수의 영국인이 그렇다. 그때 나는 행색이 초라했을 터. 건조함이 얼굴 전체에 퍼져 푸석푸석하고 물이 빠져 검은색인지 회색인지 모를 청바지와 목이 늘어난 호피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스타벅스 아이스커피를 한잔 시켜 자리에 앉았다. 얼굴이 따갑다. 누군가 자꾸 나를 노려보는 것 같다. 타자를 치는 중에 어떠한 검은 형체가 드리워짐을 알 수 있었다. 사탄 같았다. 문을 열면 낭떠러지가 있고 또 그 아래에는 갯벌처럼 끈끈한 진흙투성이가 있는 웅덩이가 그려졌다. 본능적으로 그 자릴 떠야 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었다. 돋보기안경을 낀 중년의 남성이 어느덧 내 옆에 앉아 있다. 그 아저씨는 나를 흥미롭다는 듯 쳐다본다. 혹시 하고 미간을 넓혀 바라봤다.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멀리서 나를 계속 지켜봤다고 실토하더니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랑 사귀면 제대로 된 영어를 알려줄게. 또 우리 집에 방 한 개가 남는데 공짜로 잘 수 있어. 그곳에 살려면 나와 필수로 잠자리를 가져야 해.”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떠올랐다. 등산하고 내려올 때면 각종 야채를 팔고 있는 꼬부랑 할머니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던 그들이다. 그래서 매번 등산 후 집에 오면 채소파티를 했고 동네 사람들과 나눠먹기를 밥먹 듯했다.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나를 지켜야 한다고 몸속에서 들끓는 피가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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