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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Feb 10. 2024

런던에서 보낸 1년 (6)

영국 워킹홀리데이

그 큰돈도 일주일 만에 동이 났다. 아마 사막에 가짜 신기루였지? 가까이서 보니 굴절되어 버리고만 허황된 꿈이었으니깐. 멀리서 봤을 땐 뽀대 났으니깐.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깐. 그것마저 내 것이란 착각에 빠져 한동안 나를 포장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당연했고 작은 깨달음마저 없었더라면 나란 인간은 과연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또 행운이 온다고?


왜 나는 인생이 벅찰까. 노력이라고는 이력서를 돌린 것과 찢어질 듯한 미소를 장착한 것뿐. 경쟁 사회에서 필요시 되는 전문적인 것들은 뒷전이었는데, 어떻게 내가? 당시에는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매니저 있나요?”

“누구죠? 매니저는 지금 없긴 한데..”

“아 미안, 나는 오늘부터 일하기로 한 경혜라고 하는데 매니저를 먼저 봬야 돼서.”

“아마 조금 있다 올 거야.”


친근한 아시아인 한 명 없는, 삭막한 커피숍에 우두커니 서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한식당인지 스타벅스인지 헷갈리기 시작할 때쯤 매니저가 도착했다. 한국인들은 보통 늦지 않는다. 빨리 오면 좋아하고 늦으면 싫어한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매니저는 이탈리아인이다. 매니저 업무로 늦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3초간 멍하니 매니저의 행적을 쫓다 재빨리 매니저를 따라 들어갔다. 분명히 나를 봤지만 나를 귀찮아하는 눈치였다. 일이 없는 쉬는 시간에도 깨끗한 테이블과 의자, 소스통까지 벅벅 닦으며 쌓은 눈치였다. 밥 먹듯 떨어졌으니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것도 막연한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잠시만...! 기다려.”

당할 수 없는 카리스마에 주눅이 들었다.


‘내가 의문사를 해 유령이라도 되었나? 내 존재가 보이지 않는가?’

따뜻한 엄마 품이 그리웠지만 내가 뱉은 말이 있고 지금 돌아가면 그동안의 일은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참았다. 참을성이 생겼다. 괘씸했지만 영원한 을의 입장에 서있다. 겨우 컴퓨터 한 대가 들어가 있는 사무실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한없이 나약해진 나만 있을 뿐이다.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로부터 30분이 지나지 않아 매니저가 말을 붙였다.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시간처럼 느꼈다. 죄라면 죄겠느냐. 능력 없고 돈이 없는 것? 영어는 개뿔. 웃기만 하는 나약한 동양 여자애? 동양인인데 행색이 거지꼴을 한 안하무인인 애? 라고 놀려댈 만했다. 내 안에 자존감은 거의 사라졌다. 긍정도 비참하고, 낙천은 더욱 그러했다.

 

나의 참담함이 오래 머문 그 자리에 그리고 그 자리를 만든 매니저는 매서운 폭풍우 같았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고 말귀를 못 알아먹는 나를 멸시하는 눈빛을 보냈다. 입도 벙긋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너 정말 알아들었어? 알겠어?”

“...(끄덕끄덕)”

매니저가 너무 무서웠고 어쩌면 내 모가지도 얼마 못 가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트라이얼 기간도 경력이 되니깐! 참자!‘

수습 기간이 있었다. 3주간 제대로 일을 수행하지 못할 시, 나는 다시 백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행운길이었다.


우선 스타벅스 캠든점에서 카페라테와 카푸치노의 차이를 배웠다. 캠든점 매니저는 나에게 천사와도 다름없었다. 나의 천사는 우유 스팀과 머신 작동법까지 세세히 알려줬다. 같은 민족도 아니고, 같은 아시아권도 아니고, 같은 성별도 아니다. 그때는 생존에 초점을 두고 살아서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감사한 마음만 들었을 뿐. 그래서 모든 기운을 더해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우유를 스팀해 카페라테를 만들고 이탈리아의 카푸치노를 만들었다.


나의 은인이 발 벗고 나서서 빈털터리에게 손을 내미는데 어찌 허투루 배울 수 있겠는가.


1시간 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으며 카페라테의 우유 거품과 카푸치노의 우유 거품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다음날 스타벅스 앤젤점으로 복귀해 허드렛일을 하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나를 경계했다. 특히 슈퍼바이저였던 브라질인이 나를 괴롭혔다. 나에게 궂은일을 도맡아 시켰다. 직원 중 서열이 가장 아래니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10개 남짓되는 테이블을 닦고 또 닦으며 식기세척기에 컵을 넣고 돌리고 다시 원위치시키면 됐다. 훨씬 쉬웠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시켜도 납득이 되는 일이었다.


커피를 만들다가도 그녀의 지시가 떨어지면 테이블에 있는 머그컵을 부리나케 치웠다. 노동의 강도를 10으로 치면 3밖에 되지 않았고 그들이 나를 밀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오히려 일을 시켜줘서 고마웠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 사흘이 되었고, 어느덧 일주일이 되던 날. 폴란드인 슈퍼바이저가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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