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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Aug 28. 2024

베네치아의 여인들 (10)

공통분모 찾기

문득 남편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오늘은 대만 친구랑 파도바에 왔어. 원래 계획했던 베로나는 다음으로 미뤘어. 사랑의 도시라고 불리니 당신과 함께 오면 좋을 것 같아 말이지. 비행기 티켓은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턱이 없는데 이해해 줘서 고마워. 항상 고마운 거 알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배려심과 이해심인 것도 결혼 7년 차가 되니 깨달아. 부모님 용돈 문제로 각방 쓰면서 보낸 날들은 결혼 생활 중 절대 잊지 못할 귀중한 시간일 거야. 내 고집만큼이나 당신 고집도 세다는 걸 알게 되고 그동안 몰랐던 모습을 보면서 당황했는데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 그만큼 나 위주로 결혼생활을 영위하려고 했던 오만한 태도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더라고.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평생 광대처럼 살았을지도 모르지. 껍데기만 가득한 알맹이는 없는 가짜 인생을 걸었을 거야. 그래서 고마워. 든든한 백이 생겨서 언제든 무얼 하든 안심이 돼. 세상 어디에서 살 수 없는 정말 큰 축복이고 행운이야. 늘 겸손하고 오늘을 감사하게 여기며 살자. 파도바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지만 어떻게든 버텨보려 해. 퇴사하고니까 5년 만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서 기뻐.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나지만 시칠리아를 같이 여행하고 홀로 베네치아를 걸으니 외롭기도 했어. 산토리니에서 붉은 띠를 두른 낙조에 반해 느지막한 청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고. 인생에 열정이 가득하길 바라야지. 그리고 노력해야지. 항상 고맙고 우리 또 여행하자!’


남편은 나에게 선생님이자 아들 같은 존재다. 단순해서 배울 점이 많다고 해야 하나. 불결한 일이 생길 낌새에는 거의 대부분 남편에게 연락을 취한다. 뼛속까지 문과생과 이과생의 만남은 구구절절한 사랑보다 시트콤 그 자체지만 말이다.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나와 일기를 써본 적 없는 남편이라서 깊은 대화를 위해서 진솔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나열해 얘기한다. 어느덧 남편도 감정 표현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인상 찌푸리고 화도 내기 시작한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질 않으나 속으로 올게 왔구나 싶었다. 싸움이 격해질까 봐 참는 것보다 가슴에 담아두지 않는 게 중요하단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뼈와 살을 깎다시피 해서 평화로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대만친구는 나와 공통점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유부녀다. 심지어 다섯 살 연하와 결혼했다. 그 역시도 해외에서 일하고 있어 자주 보지 못한다고 했다. 혼자서도 아주 잘, 무탈하게 지내는 게 대수라는 뉘앙스였다. 내 생각으로는 어쩌면 드라마틱하고 굴곡 있는 삶을 누려봄 직해 장거리 부부가 나쁘지만은 않다.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그리며, 서로의 공간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릴리(Lily) 또한 그랬다. 짧은 대화가 오가는 동안 내 머릿속은 평소 고민이던 돈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퇴사 후 백수로 회귀하면서 무자본으로 돈 버는 방법을 궁리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블로그였고, 시작할 당시 가족 중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어 블로그를 운영하게 되었고 그때 기본적인 프로세스를 배웠다. 용돈벌이 겸 독학으로 하면서 상위노출과 체험단에 대해 알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개인 블로그를 개설하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첫 발판이었는데, 성장을 위해서는 확장이 필요하단 생각을 한다.


과거에 나는 보수가 없으면 무쓸모라 여겼다. 인생을 돈으로 채우다 보니, 마구 꼬꾸라져 간다는 것을 비로소 여행을 통해 깨우치게 되었다. 소매치기를 당하고 헤르만 헤세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만의 정답을 만드니 만물이 단순하게 느껴졌다.

그도 전 세계 어디서든 돌아다니며 일할 수 있는 돈주머니를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애송이에 불과하다면 릴리는 고수였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대범한 성격 덕분에 짧은 영어로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디지털 노마드다. 디지털 유목민이란 신종 직업이 생겼을 때 낯설어하던 내가 떠올랐다. 사업장에서 월급쟁이로 일하는 게 정정당당하고 남들보다 빠르게 부자가 되는 길이라 믿었다. 그런데 블로거라는 직업을 고수하고부터는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실감했다. 소위 자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문구에 혀를 차며 몸서리쳤는데 지금은 그 문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는 파도바에서 관광대신 나눌 이야기가 샘솟았고 대화에 생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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