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마지막으로 독립성이다. 첫 번째 이유의 연장선상에서 말할 수 있겠다. 집사람 안사람 구별 없는 가정의 주체로 스스로 밥그릇을 챙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은행 상품에 투자할 경우 반드시 투자 성향 체크를 하는데 그때 소득의 출처를 묻는 질문에 정확히 근로소득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독립성은 자유와 닮아 있어 자립심과 자존감을 동시에 불어넣는다.
견고한 자아형성에 필요한 요소들이 비슷해 비교우위를 벗어난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바랄 수 있었다. 그동안 쌓아온 우정의 형태와는 확연히 달랐다.
백발의 노인이 걷자, 시간이 멈춘 듯했다. 누군가 머리를 망치로 내려쳐서 그대로 쓰러진 채 겹겹이 쌓인 아코디언 연주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우상의 존재, 태양, 우주, 바다, 숲, 그리고 생각하는 나. 갈등의 불씨가 싹트고 가슴이 답답해져서 금방이라도 광장을 가로질러 4차선 도로를 질주하고 싶었다. 해내지 못한 지난날들을 후회하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제자리임을 깨닫는다. 나이를 먹고 행복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으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맥주 한 병을 들고 스크로베니 예배당 앞 벤치에 앉았다. 정확히는 건축공사가 끝날 무렵 대충 만든 콘크리트 앉은뱅이 의자 같은 것이었다. 냉기를 느껴 잠시 옴짝달싹하며 엉덩이를 움찔했지만 이내 땡볕더위가 찾아와 그 자리에 멈추었다.
“요즘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여기서 다른 남자 만나봐.”
“(피식하며) 그건 안돼.”
“왜 안돼. 넌 할 수 있어.”
보통 남의 얘기에는 아무렇게나 지껄이지만, 릴리는 진심이었다. 내가 남편 얘기를 꺼낼 때마다 똥 씹은 표정을 했나 보다. 다섯 살 연하와 결혼한들 큰 차이가 있겠냐만은 풍겨지는 아우라로 행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삶에 대한 태도부터 남다른 성인군자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들처럼 남편을 키운다면, 릴리는 남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남편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고 자신의 일인 통번역을 하며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했다.
놀랍게도 여행 전날 뜬금없이 한국인들의 해외여행 수요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국내총생산(GDP)을 알려줬고 릴리는 그것을 듣자마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또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대만인 직업을 들먹이며 마구 부러워했다.
“엔지니어가 돈을 잘 번단말이야!”
엔지니어란 직업자체에 무관심이었고 공허를 떠돌던 대화 속에서 릴리의 최대 관심사를 추측할 수 있었다.
릴리에게는 ‘돈’이 중요하고, 나는 ‘자아’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이, 학력, 직업 이렇게 세 가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인생 길잡이가 되어줄 누군가가 남편이었으면 하는 욕심이 보였다. 나약한 자신이 싫어서 도망치듯 여행을 다니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꼈고 본인 역량을 키워 자기 인생을 설계하는 릴리는 범접불가한 신상(神像)처럼 보였다.
무자본에서 시작한 프리랜서의 길이 조금씩 트이지만, 꿈꾸던 삶과의 괴리감에 자기 만족감은 멀어져 갔다.
‘런던 노동자 시절, 스타벅스에서 퇴근해 새벽같이 아이엘츠를 팠더라면. 대학생 때 필요한 국가자격증을 따놓았더라면. 고등학교 때 등록한 독서실 한달권을 전부 사용했더라면. 뒷배경이 든든하고 돈 많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자본주의 시대에 입각한 생각들이 나를 짜부시키는 게 아닌가. 네모 모양의 생각들이 짓눌려 형태를 잃어버린 것이라면, 나는 반드시 독창적인 조각가가 되어야 한다. 후퇴보다 전진을,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를 향해 달려야 한다. 처참히 무너진 나를 마주해 버렸다. 함정이라면 함정일 것이고, 그것이 아니면 질식 또는 살인이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도전이다. 차가운 잡초가 되어 절망을 벗어나야 한다. 죽음이 찾아온대도 버틸 수 있는 힘은 남아있을 것이다.
다시 베네치아행 기차에 올랐다. 릴리와 최후의 만찬을 즐겼고 더 나은 안녕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