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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May 16. 2024

그 시절, 그 홍콩으로...(후편)

10 영화 <중경삼림> 감상문-2

마치 꿈속에 있는 것만 같은 이야기, <중경삼림>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어쩌면, 머리로는 다소 이해하기 난해 할 수도 있다. 다른 '왕가위'감독의 작품들이 그렇지만, 

특히 <중경삼림>에서 개연성이나 현실성 따위를 따지는 일은 아마 의미는 없을 것이다.

만약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된다면,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길 바란다.

이 동화 같고 아리송한 사랑 이야기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하지무(금성무)가, 샐러드 가게 점원 '페이'와 스치며,

바통 터치를 하듯 두 번째 스토리로 전환된다. (정말 기가 막히고, 자연스럽게 연출되어 전환된다.)



<2>  경찰관(양조위)과 샐러드가게 점원(페이)의 동화 같은 사랑이야기.


자신의 오빠를 도와 샐러드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는 페이(왕페이), 그녀는 항상 가게에 

'마마스 앤 파파스 - 켈리포이나 드림'을 크게 틀어 놓고는 캘리포니아를 꿈꾸며 일을 한다.

한편 그녀는 캘리포니아 말고도 마음에 두는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단골손님인

경찰관(양조위)이다. 그녀는 그를 몰래 짝사랑하고 있었고, 그런 그 경찰관은 최근 

스튜어디스인 여자친구와 이별을 했다. 그의 여자친구는 공교롭게도 경찰관의 단골 가게인 

'페이'가 일하는 샐러드 가게에 작은 편지 봉투를 맡기고는 떠난다. 


'페이'는 몇 차례 경찰관에게 봉투를 건네지만, 경찰관은 조금 더 보관해 달라며,

그 봉투를 받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며, 계속 수령을 회피하고 있었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페이'는 몰래 봉투를 열어 보는데,

그곳에는 경찰관의 집열쇠와 이별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그렇게 짝사랑하는 경찰관의 집 열쇠를 얻은 페이는 그날부터 그가 없는 틈을 타

몰래 그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페이'는 청소와 설거지를 해주고는 몰래 전 여자친구의 흔적을 하나둘씩

버려 버리는 등 조금은 실술 궂은 페이의 '우렁각시' 놀이 시작된다.

경찰관은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하고, 집의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점점 이상함을 느끼다가 결국 어느 날 자신의 집 주변을 순찰하던 중.

자신의 집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놀고 있는 '페이'를 보게 된다.

그렇게 달려간 자신의 집에서 '페이'와 결국 막닥드리고,


서로 실랑이를 하던 중 끝내 '페이'는 도망가 버린다.

하지만 경찰관 역시 '페이'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일까?, 경찰관은 자신의 

단골집 이자 페이의 샐러드가게로 찾아가 8시에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의 

바에서 기다리겠다고 데이트 신청을 하고는 바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바람맞은 경찰관은 페이가 일하는 가게로 찾아 가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그저 페이가 남기고 간 편지봉투만 남아 있었다.

경찰관은 실망하여, 편지 봉투를 읽지도 않고 버리지만, 

뒤돌아 다시 주워서는 편지의 내용을 확인한다.

편지 봉투 안에는 삐뚤빼뚤하게 냅킨에 그려진 엉터리 항공권 이었다.



한번 버렸던 탓에 빗물에 젖어, 행선지가 지워졌지만, 날짜는 1년 후였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난다. 경찰관은 경찰을 그만두고 페이가 일하던 가게를 

인수하여 가게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곳에 불현듯 스튜어디스 복장을 한 '페이'가 나타난다.

'경찰관'은 그런 페이와 마주하고, 그는 페이에게 안부를 묻고는 가끔 편지라도 

달라며 멋쩍게 웃으며 얘기한다.


하지만 '페이'는 어차피 읽지도 않을 거면서, 편지는 왜 달라고 하냐 라며 툴툴댄다

그런 페이에게 그는 1년 전 받은 냅킨에 그려진 항공권을 꺼내 보여주며,

이걸로도 비행기를 탈 수 있냐고 물어보고는, 행선지가 지워졌다고 말한다.

'페이'는 1년 전 자신이 냅킨에 그렸던 항공권을 받아 들고는 재발급해주겠다고,

행선지로 가고 싶은 곳을 말해 달라며, 경찰관에게 말한다.


그런 그는 그녀에게, "아무 데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라고 답하며,

'왕페이-몽중인'음악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는 영화 <중경삼림>을 너무나도 좋아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이 두 번째 이야기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음악 '캘리포니아 드림'과 '몽중인'이 아직도 플레이 리스트에 

있을 정도이며, 시간 날 때면 이 두 번째 이야기만 돌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왜?'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페이는 그렇게 짝사랑하던 사람과의 약속에 나오지 않은 것일까?

'왜?' 페이는 그렇게 1년이나 하필 그때에 떠나야 했었던 것일까?

'왜?' 페이는 아무렇지 않게 1년 후 돌아와 그와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

'왜?' 경찰관은 하필 그 가게를 인수하게 된 것일까?

'왜?' 경찰관은 1년간 이런 그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을까?


왜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겠는가,

경찰관에게 1년은 아마 상당히 힘든 어쩌면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와서, 조금 나이가 들고, 이 영화를 여러 번 봤을 지금.

페이의 마음도 또 경찰관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중경삼림>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홍콩의 밤과 좁고 어둡고 습해 보이는 골목이나,

술집 같은 어두운 곳을 주무대로 퇴폐적인 매력을 보여 줬다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낮을 배경으로 시장, 주택가, 음식점 등 좀 더 밝고 활기찬 

곳을 배경으로 하며, 일상적인 무대라 식상할 수 있지만, '왕가위'감독의 독특하고

세련된 연출을 통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다.


여러 인종이 섞여 북적이던 뒷골목으로...

하지무가 통조림을 찾아 여기저기 뒤지던 편의점 골목으로...

금발의 그녀가 지쳐 휘청이며 들어갔던 그 술집으로...

페이가 일했던, 경찰관이 인수한 그 샐러드 가게가 있는 그 시장으로..

페이와 경찰관이 만나지 못했던 바 '캘리포니아'가 있는 그곳,


부디, 나를 그 시절 홍콩으로 대려다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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