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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Jul 02. 2024

#39 입문자의 한여름 밤에 '봄'

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월광 고수 백차'라고 쓰인 둥글게 그리고 곱게 접어 겹겹이 쌓인 종이를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나의 생각과 달리 처음 나를 맞이해 주는 것은 꾸덕하게 뭉쳐져 말려진 찻잎덩어리가 아니라

향이었다. 달콤하고 싱그러운 향기, 마치 언젠가 우연찮게 마셔본 허브차 같기도 한,

하지만 훨씬 은은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그런 달콤한 꽃향이 방을 가득 매웠다.


분명 이 향기를 맡는 다면 누구나 파릇파릇하고 싱그러운 봄을 떠올릴 것이다.

따뜻한 늦봄의 향기. 그렇게 차는 나에게 잠시나마 봄을 선사해 주었다.

단어적 의미에서 본다면 이 또한 '회춘(春)'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봄 향기와 함께, 처음 만져보는 차 한편,

나는 차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이렇게 차 한편을 온전히 갖게 되었다.


사실 조금 우쭐했다. 이런 좋은 차를 내가 갖게 되었으니,

뭔가 내가 고수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입문자 티를 벗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좀 했지만,

해괴를 위해 차칼을 들고 여기저기 찔러보고는 겨우겨우 조각난 찻잎을 떼어내어,

저울에 올렸다가는 모자라서, 다시 조금 떼어내어 다시 올리고, 이렇게 몇 번을 반복했던지...

나의 이런 한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직은 멀었구나 싶었다.

여전히 나는 입문 자다. 조금 엉터리인 입문자.


나는 지난겨울 친구가 전해줬던, 백차를 몹시 떫고 쓰게 우려 마신 탓에

백차에 대한 느낌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친구는 올해 첫 백차를 내게 권했고,

조금 망설였지만, 다시 한번 마셔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전과 동일하게 우리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고심하여, 물의 온도를 맞추고 다시 천천히 백차를 우려냈다.


이전 떫고 쓰던 맛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날 우린 백차의 맛과 향은 달콤했고 향기로웠다.

즐거웠다. 백차의 맛도 향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전혀 떫고 쓰지 않았다는 점과 더불어

백차를 옳게 우려내는 방법을 깨달은 것만 같아 아주 즐거웠다.

'어쩌면 진짜로 이제 입문자가 아닐지도?'라고 다시 우쭐해졌다.


하지만 차를 마신 후 다시 차편을 종이에 곱게 접어 보관해야 하는데,

도무지 둥글고 예쁘게 다시 접을 수 없었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씨름하는 꼴은

영락없는 초보고 입문자다.


입문자면 어떡고, 초보면 어떠한가, 나는 이제 백차를 떫지 않게, 그리고

쓰지 않게 우려낼 수 있는 입문자가 되었다.

그날 나는 차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마셨던 백차를 다시 우려 마시게 되었고,

이전보다는 훨씬 올바르게 맛을 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또 봄으로 되돌아가서 백차를 다시 마주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날 밤의 차는 정말 향기로웠다. 그날은 분명 한여름밤의 봄이었다.

.

.

.

지난 쓰고 떫게 우려 버렸던 백차에 대한 안타까움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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