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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Jul 09. 2024

#40 호지호지호지 차

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녹차의 일종이라고 하는데, 파릇파릇한 녹색은 온대 간대 잃어버리고는,

빛바랜 듯한, 진한 흙색에 가까운 낙엽 같은 색상만 아 남아있다.

또 찻잎의 생김은 어찌나 쪼잔스러운지, 잘게 부수어져 담긴 찻잎과 줄기들은

금방이라도 거름망을 빠져나와, 찻잔으로 달음박질치듯 흘러들어

차를 마시는 나를 곤란스럽게 할 것만 같았다.


애석하게도 현제 나는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로 코가 막혀 냄새를 잘 못 맡는 터라,

찻잎을 코 바로 앞까지 들이밀어 놓고 차향을 맡을 생각이었다. 

(나는 이 시기에 여름감기를 거의 매년 앓는다, 나에게는 으래 있는 연내 행사 같은 이벤트다.)

그렇게 나는 작디 작고, 빛바랜듯한 찻잎 몇 알을 봉투에서 꺼내어 손바닥 안에 펴 놓아 본다.

그리고는 막힌 코를 훌쩍 거리며, 힘껏 숨을 들이켰다.


"킁킁"


손바닥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순간 너무나도 고소한 냄새가 들어왔다.

얼마나 고소했냐면, 가뜩이나 약기운으로 몽롱했던 정신을 꼭 부여잡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고소항 향에 이끌려,

손바닥의 찻잎들을 입안으로 털어 넣어 버렸을 것이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찻잎이라기보다는 마치 고소한 과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고 진하고

고소한 향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고소하게 구워낸 돌김의 냄새 같기도 하고, 볶거나 튀긴 곡식 냄새 같기도 한 것이,

여태껏 마셨던 차들의 은은한 차향과 달리, 아주 진하고 깊은 고소한 향이 느껴졌다.

'이거 맛이 없을 수가 없겠는걸...' 서둘러 차를 우려내 맛을 보기로 했다.

두 말할 것 없이 차의 맛 역시 고소한 향에서 느껴지는 그 맛 그대로였다.


아주 고소한 누룽지를 끓인 숭늉 같기도 하고, 아주 고소한 현미 녹차 같기도 한 것이,

어찌나 이 고소한 맛이 마음에 드는지, 마시자마자, 지금 마시는 차를 어느 정도 마시거든, 

다음에는 호지차를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소하고 따뜻한 맛이 조금 쌀쌀할 때 마시면 아주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

녹차 특유의 떫거나 쓴맛도 전혀 없어,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쉽게 권하기도 좋은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지차는 정말 고소하고 맛있는 차였다.



지난 며칠 전 친구가 백차를 내게 보내 주면서, 함께 여러 종류의 차들을 함께 보내주었다.

그간 내가 궁금해하던 '황차'를 비롯해 '숙차', '제주 화산우롱차', '청차' 등등...

또 새로운 차를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지만, 무엇부터 맛봐야 되나 고민하던 중,

친구는 물 온도의 영향이 적어 우리기 쉽고, 카페인 함량이 낮은 '호지차'를 마셔보라고 권해 주었다.

그렇게 오늘 '호지차'를 마셔볼 요량으로 포장을 뜯으려는 순가,

친구의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열탕로고 같은 그림과 '호지차'라고 작게 적힌 글씨.

깨알 같고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 새어 나왔다.

호지차의 맛 역시 친구가 그려준 열탕 그림만큼이나, 따뜻한 맛이었다.

(근데 열탕 그림이 맞나?, 만두 같기도 하고...)



호지(焙じ) 차는 맛에서도 느껴지듯, 볶은 차로,

그 해 가장 늦게 수확된 찻잎을 바싹 말려 볶은 일본식 차라고 한다.

호지의 호(焙) 자는 불 쬘 '배' 자로 볶는다는 의미도 있으며,

'배'자를 일본식으로 읽으면 '호'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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