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기다랗게 말려 있는 것이 퍽이나 재미있는 모양이다.
파릇파릇하진 않으나, 아직은 초록을 품고 있는 듯한 노오란 연두 빛,
향을 맡아보자면, 분명 녹차와 비슷한 향을 내는 것 같지만,
확실하게 다른 향, 그 아리송한 향기를 계속해서 그 들이키다 보면,
구수한 느낌이 난다. 마치 콩을 삶을 때 나는 냄새 같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마치 뭔가를 삶거나 대친 물을 마시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다소 폄하하는 표현인 듯하나, 황차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그랬다.
향기 또한 위에서 말했듯, 당장에는 향긋하거나 싱그러운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콩을 삶은 듯한 향 뒤에, 뒷맛에 녹차의 향이 살짝 가미되어 있는 느낌.
차를 마신 후에는 아주 미비하지만, 떫고 좀 알싸한 느낌이 입안에 남는다.
하지만, 이 느낌은 그렇게 거부감이 들거나 불편함을 주지는 않고,
되려 마신 후 깔끔함, 시원함 같은 어떤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알싸한 느낌 때문인지, 계속 마시다 보면, 조금의 달큰한 맛이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이 달큰함을 느끼는 그때부터 이 황차는 한결 가볍고 산뜻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처음 느껴지던 뭔가를 삶거나 대친 물 같은 모호한 인상은 없어지고,
어엿한 차 한잔으로 다가와 향긋한 향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처음에 그 콩 삶은 듯한 향에 가려져 느껴지지 않았던,
달큰한 풀내음이 은은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향은 예전에 맛봤었던,
생차의 향과 조금 닮아 있다고 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황차는 마시면 마실수록, 잔을 더해 갈수록 처음 느껴졌던 콩삶은 내음은 점점 옅어지고,
향긋한 풀내음의 향기가 점점 강하게 다가와 남겨졌다.
황차는 나에게 그렇게 향긋하고 맛있었다. 또한 상당히 진귀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마시면 마실수록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차 라니...
물론 차들은 재탕을 할수록 맛의 변화가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맛과 향의 농도의 차이에서 오는 부분일 뿐,
황차처럼 느낌이나 인상이 완전히 변하는 차는 나에게 있어 처음이었다.
중국의 6가지 색상의 6대 차. 그중 내가 마셔보지 못한 차 '황차'
나에게는 황차의 맛과 향은 늘 큰 궁금증으로 남아있었고, 내가 품은 궁금증을 친구에게 전하자,
친구는 기꺼이 소량의 황차를 어렵게 구하여 내게 보내 주었다.
그렇기에 더욱 나는 허투루 차를 우려 낭비하고 싶지 않았는데...
처음 우려냈던 황차의 맛이 너무나도 애매하고 모호하여 적잖게 당황했다.
처음 우린 황차는, 도통 무슨 맛인지 또 무슨 향인지 말로 옮기기 조차 어려웠다.
모호하고 애매한 인상. 애석하게도 나는 이전에 한 번도 '황차'를 맛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황차에 대한 이런저런 자료와 정보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나의 어떤 실수로 차를 잘못 우려낸 것은 아닐까?'
'다른 이들은 이 모호하고 애매한 맛을 뭐라고 표현하고 있을까?'
'진정 이 모호하고 애매한 맛이 황차의 본연의 맛이란 걸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정확하게는 공감되는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뒤 나는 다시 두 번째 '황차'를 우려냈다.
이번에는 좀 더 천천히 깊게 느끼고자 노력했지만,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이었다.
방법적인 것이 변하지 않았으니, 맛이 달라질 리 만무했다.
'원래 이런 맛인가 보다'하고는 우려냈던 차를 대충 입안으로 털어내고 있었는데...
한 잔, 두 잔 잔을 더해 갈수록 천천히 '황차'는 자신의 맛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방법 적인 변화 없이,
다른 맛을 느낀다는 것은 역시 차를 대하는 나의 마음의 문제였다는 얘기이다.
어쩌면 나는 '애매하고 모호하다'라는 선입견에 사로 잡혀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나의 실수로 맛을 잘못 냈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내가 찾아봤던 수많은 정보들에 스스로의 공감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황차'를 어떻게든 글로 옮기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 잡혀 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는 처음 친구가 내게 차를 소개해 주면서 '쉼'이라는 얘기를 함께 들려줬던 것이 떠올랐다.
누구나 가끔은 생각이나 사고의 환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머리를 비워내는 '쉼'이 필요할 때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 채, 홀로 생각들에 매몰되어 버릴 때가 많다.
나는 내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느긋하게, 그리고 조금 더 시원하게 되기를 바란다.
분명, 그래야지만 보이는 풍경이 있을 것이다. 오늘의 '황차'의 향긋함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