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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Oct 11. 2024

소도쿠

일상의 생각


나는 20대 초반, 어린 시절 상당히 무료한 아르바이트들을 많이 했다.

평일 오전의 손님 없는 카페, 한산한 경마장의 마권 판매,

그리고 밀봉된 해외서적의 포장을 뜯는지, 감시하는

대형서점의 수입서적 코너, 일들은 하나같이 무료하기 짝이 없으며,

또 컴퓨터나 핸드폰 사용이 자유롭지 않는 일들이었다.


그때 내 유일한 낙이 바로 일간지 귀퉁이에 있는

바로 이 '소도쿠'였다. 출근길에 일간지 하나를 어 들고는

출근하여 간단하게 출근 후 일들을 처리하고는 앉아

볼펜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숫자들의 순서와 조합을

맞춰 빈칸을 채워 가는 작업.


그 시절 나는 낱말 퀴즈보다는 소도쿠가 좋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맞춤법에 그다지 자신 있는 입장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그다지 자신이 있는 일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숫자는 제법 좋아하는 편이기도 했다.


그 당시 내게 소도쿠 만한 소일거리가 없었다.

여러 일터에서 이렇게 일간지의 빈칸을 채우고 있는

나를 볼 때면 공교롭게도 그 누구도 나를 제지하는 일은 없었다.

아마 그들도 내 직무가 얼마나 무료하고 심심한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몇몇 직원들은 내게 소도쿠의 룰을 알려달라고 하기도 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머리를 가만 두는 일이 잘 없었다.

뽀글뽀글 볶는가 하면 커다랗게 부풀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깨 넘어까지 길게 길러 늘어뜨리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도 그다지 깔끔한 이미지는 아니었을 것 같다.

그때의 취향이 남이 있는지 여전히 머리를 잘 기르는 편이지만,

그때에 비해 많이 차분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런 다소 너저분하고 다소 지저분해 보일 수도 인간이

조용히 책상에 앉아 볼펜을 굴려가며 몇 시간씩 몰두하는 관경이라,

지금 내가 생각해도 제법 흥미로운 관경이었을 것 같다.


나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가끔 집을 나와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일들을 할 때가 있는데,

지난 휴일 우연찮게 카페에서 소도쿠를 하고 있는 어린 친구를 보았다.

'요즘 같은 때에 소도쿠라니...'

제법 진귀한 관경이라고 생각하다 문뜩,

어린 시절 소도쿠를 하던 나의 모습도 남들이 보기에는

이렇게 제법 진귀하고 흥미로운 관경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도쿠 판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 어린 친구를 몰래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훈수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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