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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Mar 13. 2024

오랫동안 미루던 영화2 <화양연화>

04 영화 <화양연화> 감상문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는 특히나 불륜이라는 요소를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다. 도덕적인 관점도 있겠지만, 불륜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고 하면, 과거 드라마'사랑과 전쟁'처럼 법적 분쟁, 서로를 헐뜯는 촌극이나 복수극이 될 때가 많기 때문이며, 요즘 말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듯, 쓸 때 없이 불륜이란 부도덕한 행위를 사랑이란 말로 미화하는 것 역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보지 않던 이 작품 <화양연화>를 드디어 보게 되었다. 아마도 비슷한 이유로 보지 않던 영화 <해피 투게더>가 감명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화양연화>는 두 가정이 같은 날 한 건물로 이사 오면서 시작된다. 두 부부가 서로의 배우자의 불륜 그리고 또 그 상대가 서로의 배우자임을 깨달은 남자와 여자가 '둘은 어떻게 시작했을까요?'라는 작은 의문으로 서로가 서로의 불륜상대를 연기해 보기로 하며, 서서히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는 흔히 속된 말로 '맞바람'이라고 하는 흔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영화 <화양연화>는 기존 90년대의 왕가위 감독의 느낌과는 다소 다르다. 하지만 또한 왕가위 감독의 어떠한 영화 보다도 애틋하고 절절하며 아름답다.


처음 이 영화를 마주했을 때, 두 주인공 '양조위'와 '장만옥'의 모던한 비주얼에 압도되었다. 양조위의 잘 빗어 넘겨진 포마드와 멀끔한 슈트, 그리고 장만옥의 고풍스러운 머리스타일과 화려한 색채의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 이 영화는 아무것도 필요 없이 이 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만큼 완벽한 비주얼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영화는 둘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서로의 배우자의 모습은 실루엣이나 목소리조차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관객이 엿보는 듯 한 느낌을 가지게끔, 거울이나 창문을 통한 화면 구도가 많이 나오는데, 아마 아무리 좋게 포장한다고 해도 둘의 관계는 삐뚤어진 은밀한 관계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는 그들과 달라요"


불륜이 아님을 우리는 연인이 아님을 우리 둘은 사랑이 아닌 연기를 하고 있음을 선을 긋는 이 한 문장의 대사가 너무 가슴을 후벼 판다. 그 둘은 배우자의 불륜이라는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졌음에도, 둘은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 한 문장에 기대어 서로의 감정에 철저하게 선을 그으려 한다. 그렇게 결국 어진 두 사람.


남자는 미소 지으며 추억을 떠올렸고,

여자는 눈물지으며 추억을 되뇌었다.

여자는 기억의 장소에서 추억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며,

남자는 기억을 피해 떠나, 추억을 외딴 사원의 구멍에 묻었다.

아마도 평생을 둘은 그리워 못네 잊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지나간 시절을 야속해할 뿐.




이 영화에는 재밌는 해석이 하나 더 존재한다. 바로 영화에서 그려지는 모든 내용이 영화 결말부, 남자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의 구멍 난 벽에 속삭여 묻었던, 추억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기억은 항상 풍화되어 미화되기도, 또 당시를 합리화하게 되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미루어 보면 두 남녀의 완벽하고 항상 흐트러짐이 없는 비주얼도 설명이 되며, 극 중 어딘가 시간의 흐름이 모호했던 부분도 설명이 된다. 극 중에 계속 사용되었던, 거울 속이나 창문을 통한 구도 역시 이것이 기억 속의 장면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라는 해석이다.


또한 이해석에 따르면 단 한 번도 그 모습이 비치지 않던 두 사람의 배우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어디까지 두 사람의 추억이기 때문에 당시 배우자는 필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해석에 따르면 어쩌면 그저 자신들의 불륜을 기억 속에서 합리화한 나머지, 실제 배우자의 불륜이 사실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두 사람이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불가용어 중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몹시 싫어한다. 간략하게 말하면 만날 사람은 어떻게 해도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어떻게 해도 해어진다는 뜻의 말인데,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연이라는 것을 너무 간략하고 쉽게 말하는 것 같아, 마치 정곡을 찔린 것 같아 이 말이 너무 야속하고 싫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영화가 끝나고, 결국 돌고 돌아 그 둘이 다시 만나는 장면을 홀로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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