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표지 사진: 서울 동작구 맛집 안동장 @ 푸드투푸드-티스토리
흥겨운 분위기와는 달리 태경은 구석자리에 앉아 침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자작으로 독한 고량주를 연거푸 들이키고 있는데 형준이가 잔을 들고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왜 처량 맞게 혼자 술은 마시고 그러냐? 그러지 말고 내 술 한 잔 받아라.”
“그래 한 잔 다오. 그리고 앨범 낸 거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젠 명실상부한 진짜 뮤지션이구나.”
“고맙다. 이게 다 마누라 덕이지. 나야 음악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기타나 가르치며 틈틈이 작곡이나 하는 별 볼일 없는 신세지만 어쩌다 운이 좋아 고등학교 선생을 만나 결혼한 덕에 이러고 산다. 넌 어떠냐? 잘 살고 있니?”
“난 너무 바빠서 내가 어떻게 사는 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 네가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런데 널 보면 늘 아쉽다. 너 학교 다닐 때 정말 재능 있었거든. 사실 난 너 때문에 열등감 많이 느꼈다. 그만큼 넌 출중했었거든. 난 네가 꼭 음악으로 성공할 줄 알았다.”
“아쉽긴 뭘…… 음악이 밥 먹여 주냐? 난 지금 내 삶에 만족한다. 돈 잘 벌고, 하는 일도 재미있고……”
“만족한다니 다행이다. 그래, 인생이 뭐 별거냐? 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그게 최고지. 돈은 좀 쪼들리지만 그런 면에서 난 행복하다.”
형준과 대작한 이후 태경은 기분이 한결 더 울적해졌다. 친구 앞이라 허세를 부리기는 했지만 사실 태경은 속이 쓰렸다.
‘내 재능이 부러웠다고, 그래서 내가 반드시 음악으로 성공할 줄 알았다고…… 이런 쌍 X같은 인생!’
감정이 복받쳐 오른 태경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이미 상당히 취한 상태였는데도 태경은 폭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제력을 잃어버린 태경은 쉬지 않고 독한 고량주를 물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태경은 중간에 필름이 끊겨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토막토막 떠오르는 기억은 자신이 정신없이 취해 모임 끝 무렵에 심한 주사를 부렸다는 정도였다. 그는 모임이 끝나자 오늘 저녁 값을 모두 혼자 부담하겠다고 생떼를 썼다.
“오늘 내가 이거 다 쏜다. 나 돈 잘 벌어. 내가 말이야 ○마트 차장이야, 차장! 너희들 집 있냐? 나 작년에 아파트도 샀어. 나 잘 나간다고!”
술에 취해 고래고래 악을 쓰는 태경을 보고 선배 한 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핀잔을 주었다.
“저 자식 저거 왜 저래? 학교 다닐 땐 술버릇 나쁜 인간 질색을 하던 놈이……”
“오늘 기분이 좋아 과음했나 봅니다. 제가 데려다 재울게요.”
술주정을 하는 태경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형준이 급히 택시를 잡아 그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자정 무렵 형준에게 업혀 간신히 집에 돌아온 태경은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엎드려 뱃속에 든 것을 모조리 토해냈다. 한참을 토하고 나니 입안에 신물이 고여 무척 괴로웠다.
세면대에 다가가 물을 틀어 입을 헹궈내고는 흐르는 물을 두 손으로 받아 몇 차례 얼굴에 끼얹었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니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그대로 세면대에 물을 가득 받고 머리를 처박았다. 심호흡도 없이 머리를 물속에 담갔는데도 평소보다 훨씬 오래 버텼다. 1분이 지나도 머리를 들지 않았다.
‘이번엔 끝까지 가볼 거야. 죽자,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리자. 그러면 다시 태어나 진정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야.’
태경은 필사적으로 숨을 참고 버텼다. 억지로 호흡을 참고 있자니 관자놀이에 핏줄이 불끈 돋고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2분이 가까워 오자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고개를 획 쳐들고는 곧 숨이 끊어질 것처럼 헐떡였다. 세면대를 양손으로 짚고 서서 몸을 숙인 채 한동안 격렬하게 헐떡이던 태경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얼굴을 들어 욕실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는 이제 더 이상 젊지 않은, 지치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Bravo, 청룡! 모든 걸 되돌리고 싶다. 이런 XX,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단 말이야!”
처절한 절규를 쏟아내는 그의 두 눈에서는 통한의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눌 만큼 만취한 태경은 욕실을 나서 비틀비틀 침실로 향했다. 어둠 속에 벽을 짚어가며 가까스로 침실에 들어선 그는 외투만 벗어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침대에 엎어져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서른여덟, 강태경의 고달픈 한 해는 또 그렇게 저물어 갔다.
<완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