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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Mar 27. 2024

악마들의 전쟁: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09

유대와 아랍의 끝없는 분쟁

표지 사진: 유대인들의 이중성, 그들은 자신들의 뼈아픈 과거를 깡그리 망각한 듯하다. / 출처: 김용민 화백, 그림만평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폭격 구경(유대인들은 가자지구가 훤히 바라보이는 스데롯 언덕에 앉아 야간에 백린탄이 쏟아지는 장면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했다. 국제 언론들은 이 사건을 전쟁이 만든 악마들의 '스데롯 시네마(Sderot Cinema)'라고 부르며 맹비난했다.)', <경향신문>, 2014-07-18





제 7 장  끝없는 분쟁



그래도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의 충돌은 멈추지 않았다. 충돌의 양상은 항상 동일했다. 하마스가 먼저 테러를 저지르면 이스라엘은 전투기와 탱크, 미사일 등 중화기를 동원해 가자지구에 대량 보복을 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2012년 11월, 2014년 7월(2023년 전쟁을 제외하면 양측의 충돌이 이때가 가장 격렬하고 끔찍했다.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이 하교하는 이스라엘 청소년 3명(두 명은 중학교 3학년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을 납치한 후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하는 수법으로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가자지구에 백린탄(白燐彈, White Phosphorous: 과도한 살상력 때문에 국제협약에 의해 사용이 금지된 무기이다.)까지 동원해 무차별 폭격과 포격을 퍼부었다.), 2016년 4월, 2021년 5월, 2022년 8월, 그리고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까지 양측의 군사적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왼편: 가자지구에 쏟아지는 백린탄, 오른편: 그 모습을 구경하는 이스라엘인들(Sderot Cinema) / 출처: 백린탄, 지옥을 만들다. 2022-06-22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분쟁이 끊이지 않는 데는 미국의 책임도 컸다. 중립적이고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내팽개치고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편만 드는 미국의 외교 정책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 이 같이 편협한 미국 외교 정책의 극치는 2017년 5월 22일 트럼프(Donald J. Trump, 1946~현재) 前대통령의 통곡의 벽 방문과 텔아비브에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 조치한 사건이었다.


트럼프 前대통령은 유대인도 아니면서(그의 사위 쿠슈너가 유대인이며, 딸 이방카는 쿠슈너와 결혼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했다.) 머리에 키파(Kippah: 유대인들이 머리에 쓰고 다니는 빵떡모자)까지 쓰고 유대 성지인 통곡의 벽을 방문해 참배했다. 이런 어이없는 한심한 작태는 모든 아랍인들을 자극해 팔레스타인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켰고, 서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신뢰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영향력을 극적으로 감소시킨 지극히 트럼프다운 멍청한 행동이었다. 


통곡의 벽을 방문해 참배하는 트럼프 前대통령 / 출처: '이스라엘,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트럼프 역’ 건설 계획', , 2017-12-28


이번 2023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는 외세까지 개입했다. 미국 주도의 서아시아 평화 계획인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을 파탄내기 위해 이란이 끼어든 것이다. 


순니파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의 상호 인정과 국교 수립을 골자로 한 아브라함 협정이 조인된다면 순니파에 맞서 서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는 쉬아파 이란과 하마스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 뻔 한 상황이었다. 특히, 주변 아랍국들마저 이스라엘을 인정ㆍ수교한다면 하마스는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1,400년 동안이나 서로 으르렁거리던 순니와 쉬아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과 이스라엘이라는 공적(公敵)에 대항하기 서로 손을 잡았다. 쉬아파의 맹주 이란이 순니파 테러조직 하마스를 지원해 대규모 테러를 유발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벌어진 전쟁이 바로 ‘2023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숙적 간의 분쟁에 이슬람의 역사적 라이벌 순니와 쉬아의 갈등까지 더해져 지금 서아시아는 전쟁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다. 이란의 사주를 받은 레바논의 쉬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Hezbollah)와 예멘의 쉬아파 후티(Houthi) 반군마저 참전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자칫 제5차 중동전쟁으로 확전 될지도 모른 위기에 처했다. 이번 사태가 어디까지 확대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다.




※ 참고: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에 관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당시 팔레스타인 측에서만 난민이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서아시아 전역에서 유대인 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인접 아랍국들에서는 말 그대로 ‘유대인 사냥’이 벌어졌다. 성난 아랍인들이 시너고그(synagogue, 유대교 회당)를 방화ㆍ파괴하고 유대인 가정에 쳐들어가 유대인들을 폭행하고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당시 아랍 각국에서 벌어진 유대인 사냥은 2023년 10월 7일에 벌어진 하마스 테러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유대인들은 아랍인들의 공격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가진 재산(현재 세계 각국의 유대인들은 대부분 부유한 계층에 속한다. 그 당시 아랍 지역도 마찬가지여서 유대인들은 대부분 부유한 지역 유지였다. 아랍계 유대인 단체의 집계에 따르면 아랍 각국에 남겨진 유대인 재산은 현재 통화가치로 환산하면 미화 3천억 달러 상당이며, 남겨진 부동산의 총면적은 현재 이스라엘 국토의 4배에 해당하는 약 1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고 추산된다.)을 모두 버려둔 채 빈손으로 황급히 이스라엘로 탈출해야만 했다. 


1948년에서 1951년까지 3년 동안 무려 약 26만 명의 유대인들이 아랍 지역에서 이스라엘로 피신했다. 이스라엘은 고작 인구 65만 명의 작고 가난한 신생국이었지만 엄청난 재정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구름처럼 몰려드는 유대 난민들을 마다치 않고 모두 받아들여 이들에게 주거를 제공하고 생계를 지원했다. 


이스라엘은 유대 난민들에게 '마바롯(ma'abarot)'이라는 임시 거주시설을 건설해 제공했다. 이 시설은 1963년까지 유지되었다. 현재 여전히 아랍 지역에 남아있는 유대인은 고작 16,000여 명에 불과하다.(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Jewish_exodus_from_the_Muslim_world


그러나 아랍은 난민을 대하는 태도가 정반대이다. 194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팔레스타인 난민을 자국에 받아들이고 재정 지원(문제는 이 돈이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가 아닌 대부분 테러를 지원(사담 후세인은 자살폭탄테러를 자행한 팔레스타인인의 유가족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했다.)하거나 아라파트 PLO 의장의 비자금으로 전용됐다는 점이다.)을 한 아랍 국가는 사담 후세인 집권기의 이라크가 유일하다. 


1990년 아랍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유대인의 박해에 맞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보호하겠노라 선언했다. 이후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살 곳을 찾아 이라크로 몰려들었다. 사담 후세인은 이들에게 집과 일자리를 제공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주어진 주택은 실은 쉬아파 이라크인들에게 강제로 빼앗은 것이었고, 제공된 일자리는 독재정권의 주구(走狗)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어디든 발붙이고 살 곳이 절실했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독재정권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개전 20일 만에 바그다드가 미군에게 함락됐고 사담 후세인 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그러자 다시 이라크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재앙이 닥쳤다. 그동안 사담 정권의 폭정에 분노를 억눌러온 이라크인들은(그중에서도 특히 박해의 대상이었던 쉬아파 이라크인들은 더 했다. 더구나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부분 그들이 적대시하는 순니파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을 독재정권의 앞잡이로 몰아 과도한 보복을 가했다. 


성난 이라크 군중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에 몰려가 이들을 폭행하고 맨몸으로 거리로 내쫓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또다시 오갈 데 없는 난민 신세로 전락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거리에서 이라크 군중에게 아무 이유 없이 폭행당하고 살해되는 참사가 잇따랐다. 


이에 보다 못한 ICRC(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국제 적십자 위원회)가 나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난민 캠프를 재공하고 보호하기 시작했다. 바그다드에 머물던 2003년 6월 11일 나는 바그다드 시내에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 한 곳을 직접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어서 빨리 죽어서 이 고통뿐인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라고 절규하는 팔레스타인 청년을 바라보며 너무나 가슴이 아파 쏟아지는 눈물을 참느라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바그다드 시내에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의 전경, 바그다드에서 함께 일했던 한국인 동료 적십자 요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 출처: @ <조선일보> 조○○ 기자


지금까지도 아랍국들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외면하고 있다. 대략 330만 명에 이르는 아랍 각국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여전히 무국적 상태로 타향을 떠돌고 있다. 아랍 각국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국적을 부여하지 않는 이유를 언제가 신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이 멸망하면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으로 귀환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파렴치한 변명이다. 


이번 전쟁에서도 이집트는 국경을 봉쇄해 막다른 곳에 몰린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자국 영토로 피난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아랍 각국은 언제나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고 선언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립 서비스(lip service)일 뿐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국가는 없다. 


UN이나 적십자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제공되는 재정지원은 그나마 거의 대부분 서방 국가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부유한 아랍 산유국들은 알카에다나 탈레반 같은 테러조직을 지원할지언정 팔레스타인 지원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도대체 아랍 산유국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오일 머니(oil money)는 다 어디다 쓰는 것일까? 왕족들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일상을 유지하는 데 탕진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스라엘과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아랍 각국이 목청 돋워 외쳐대는 ‘아랍 민족주의’는 정말 있기는 한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자랑해 마지않는 이슬람의 뜨거운 형제애는 또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랍 각국의 반성과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제 10 장  팔레스타인 지역의 평화를 위한 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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