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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Feb 19. 2024

악마들의 전쟁: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07

유대와 아랍의 끝없는 분쟁

표지 사진: 이스라엘 예루살렘 인근 고속도로에 설치된 분리 장벽.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영토 대부분에 분리 장벽을 치고 있다. / 출처: 팔레스타인정보센터





제 5 장  승자가 된 이스라엘의 잔인한 횡포



애초에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을 유대인 측에서 먼저 도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날 두 민족 간의 갈등을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악화시킨데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유대인에게 있다.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에서의 연이은 승리로 기고만장해진 유대인들은 이민족으로부터 끊임없이 박해받았던 자신들의 과거를 깨끗이 잊어버린 듯 폭력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핍박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산업>> 책표지 @ 교보문고

유대인들은 그들의 뼈아픈 역사를 통해 교훈을 조금도 얻지 못한 것 같아 보인다. 유대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려고 무진 애를 써왔다. 지금까지 홀로코스트는 수많은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의 소재가 돼왔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과 재조명이 끊이지 않는 이면에는 세계 언론계와 할리우드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유대인들의 입김이 작용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를 부각함으로써 이스라엘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참고: 노르만 핀켈슈타인 지음, 신현승 옮김, <<홀로코스트 산업: 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한겨레신문사, 2004)


애초 유대인들의 소박한 민족주의로 출발한 시오니즘은 이스라엘 건국 후 추악한 제국주의로 변질돼 갔다. 건국 이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한 박해는 나치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제1차 중동전쟁의 결과로 71여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했다. 그 이후 전쟁이 세 번이나 더 이어지면서 난민은 꾸준히 불어나 2021년 기준으로 570여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무국적 상태로 타향을 떠돌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 변천 과정 / 출처: 나무위키, <팔레스타인 / 역사>


가자지구(Gaza Strip)에 약 140만 명, 서안지구(West Bank)에 약 104만 명, 그리고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이집트 등 인근 아랍국에 약 326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수치는 난민 2, 3세를 포괄한 것이다.(출처: UNRWA the Annual Report of the Department of Health, 2022)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로 가자지구에서만 약 30만 명의 난민이 추가로 발생해 현재 팔레스타인 난민의 총수는 약 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출처: 박현주, [단독] 유엔 팔 난민기구 집행위원장 "난민 삶 최악, 韓지원 절실", <중앙일보>, 2023-10-12) 


이스라엘은 지금도 여전히 불도저를 동원해 팔레스타인인들의 집과 농장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가자와 서안지구)에 무려 8m 높이의 콘크리트 분리장벽을 설치해 팔레스타인인들을 가둬버렸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건설된 이스라엘 정착촌 분리 장벽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총과 분리장벽에 막힌 육지 속의 섬', <중앙일보>, 2012-12-07


그것은 마치 과거 나치가 독일과 폴란드 등지에 설치했던 게토(ghetto)와 유사한 형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권 유린과 학살도 서슴지 않았다. 1987년 12월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 제1차 인티파다(Intifada)가 일어나자 이스라엘은 민간인들의 비무장 봉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동원해 잔인하게 진압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시위 도중 욕을 하거나 침을 뱉는 아이를 붙잡아 입을 찢고 돌을 던지면 쫓아가 그 사람의 팔을 부러뜨렸다. 이스라엘군은 시위가 격화되면 무차별 총격도 마다치 않았다. 26개월 동안 이어진 인티파다로 인해 팔레스타인인 700여 명이 사망했고, 37,000여 명이 부상당했으며 40,000여 명이 체포 수감되었다.

 

왼편: 제1차 인티파다에 가담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 오른편: 이스라엘 탱크에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소년 / 출처: 나무위키, <팔레스타인 / 역사>


2000년 9월 28일 이스라엘의 前국방부 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Ariel Sharon, 1928~2014) 일행이 예루살렘 성전산(聖殿産, The Temple Mount)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촉발된 제2차 인티파다도 상황은 비슷했다. 5년이나 지속된 민중봉기를 이스라엘 군경(軍警)은 잔인하게 진압했다. 


왼편: 아리엘 샤론 일행의 성전산 방문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인들, 오른편: 제2차 인티파다 중 화염병을 던지며 시위하는 팔레스타인인들 / 출처: 나무위키, <팔레스타인 / 역사>


이 과정에서 또다시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제2차 인티파다로 팔레스타인은 3,334명이 사망하고 5만 3천여 명이 부상당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측도 피해가 만만치 않아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1,074명(민간인은 773명, 군인은 301명)이 사망했고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었다.      


인티파다마저 수포로 돌아가자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남은 저항수단은 오직 테러공격뿐이었다. 이후 테러공격은 점점 격화됐고 팔레스타인이 테러공격을 가하면 이스라엘이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해 대량 보복하는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2003년 10월 이스라엘 하이파의 유대인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자살폭탄 테러 현장 / 출처: 나무위키, <팔레스타인 / 역사> 


피에 굶주린 테러리스트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왜 그처럼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의 가혹한 팔레스타인 정책은 강제수용소(concentration camp)와 가스실(gas chamber)만 더해진다면 나치의 유대인 정책(The Final Decision)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다른 민족은 몰라도 유대인들만은 그 같은 만행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유대인들이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의 참사를 통해 얻은 역사적 교훈은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 유대인들이 이 같은 파렴치한 만행을 지속한다면 언젠가는 하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팔레스타인의 원주인이며 아랍인들은 집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와 눌러앉은 뜨내기들이라고 여긴다. 이제 집주인이 돌아왔으니 아랍인들은 그만 떠나야 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입장이다. 


종교적 편견에 사로잡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아랍인들의 태도도 문제지만 유대인들의 태도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대인들의 주장처럼 남의 빈집에 눌러앉은 뜨내기가 아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 못지않은 연고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솔로몬의 시대에도, 로마 제국 시대(할리우드 대작(大作) <벤허(Ben-Hur)>(1959)를 보라. 전차경주를 통해 유다(Juda ben-Hur)의 복수를 돕는 이는 유대인이 아니라 아랍 족장 일더림(Sheik Ilderim)이었다.)에도, 이슬람 제국 시대에도 그 땅에서 유대인들과 어울러 자자손손 살아왔다. 팔레스타인인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그 땅의 원주민인 셈이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이 유대인들만의 고향이고 팔레스타인인들은 그곳에서 살 권리가 없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은 허무맹랑한 것이다.


그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잠시 휴지기가 찾아온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국제여론이 조성되면서 팔레스타인은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2011년 10월 31일에 팔레스타인은 UN 산하기구인 유네스코(UNESCO)의 정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그리고 2012년 11월 29일에는 팔레스타인이 UN 총회에서 ‘비회원 옵서버 국가(non-member observer state)’의 지위를 획득했다. 팔레스타인은 UN 총회에서 진행된 표결을 통해 전체 193개 회원국 가운데 찬성 138표, 반대 9표, 기권 41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 6 장  평화를 위한 노력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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