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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Feb 15. 2024

악마들의 전쟁: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05

유대와 아랍의 끝없는 분쟁

표지 사진: 1941년 11월 28일 독일 베를린에서 히틀러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고 아민 알 후세이니 / 출처: Wikipedia, <Amin al-Husseini> 





제 4 장  아랍과 이슬람의 왜곡된 유대인 관념 01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은 세 차례나 더 전쟁을 치렀지만 결과는 항상 정신전력에서 앞선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미국 대학가에서 이스라엘 유학생과 아랍 유학생이 동시에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 2023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스라엘 유학생들은 귀국해 조국을 지키려고 자원입대하기 위해, 반면에 아랍 유학생들은 징집영장이 날아오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캠퍼스를 떠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놓고 볼 때, 과연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 네 차례 패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유대인에 대한 아랍인의 인식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절대 용인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겪은 2천 년간의 고난과 박해는 그들이 지은 죄(sin)에 대한 신의 징벌이기 때문에 결코 동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명작 <쉰들러 리스트(Shindler's List>(1993)는 아랍 권에서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유대인에 대한 불필요한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랍의 反유대주의(anti-Semitism)를 대변하는 또 다른 실례는 아랍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나치(Nazi) 독일에 대한 지지와 숭배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록 소수이기는 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추축국의 일원으로 참전했었다. 그들은 독일군복을 입고 유럽 내에서 유대 혈통을 숨기고 은신해 있는 유대인들을 색출해 나치에 넘기는 임무를 수행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자원입대한 무슬림 병사들을 격려하는 아민 알 후세이니 / 출처: Wikipedia, <Amin al-Husseini>


이들을 선동한 인물이 바로 극렬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이자 反유대주의자였던 무함마드 아민 알 후세이니(Muhammad Amin al-Husseini, 1897~1974)였다. 그는 전쟁 기간 내내 적극적인 친나치 활동을 벌이고, 홀로코스트(Holocaust)에 동조했다. 


‘예루살렘 大율법관과 全팔레스타인 대통령 그리고 무슬림 최고 평의회 의장(Grand Mufti of Jerusalem, President of All-Palestine, and President of the Supreme Muslim Council)’이라는 어마어마한 직함을 가지고 있던 아민 알 후세이니는 공개석상에서 "아랍인들이여, 최후의 단 한 명까지 봉기하여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싸우라. 유대인들을 찾아내는 족족 죽여 버려라. 이것은 알라와 역사와 우리의 땅을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명예를 지킬 것이며, 알라께서 그대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라는 극언마저 서슴지 않았다. 그의 이 저주로 가득 찬 섬뜩한 발언은 오늘날 하마스 강령에도 버젓이 등재되어있다.(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Haj_Amin_al-Husseini)  


왼편: 1929년에 찍은 아민 알 후세이니의 초상, 출처: Wikipedia, <Amin al-Husseini> / 오른편: 팔레스타인 깃발, 출처: 위키백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현재 시리아의 집권당이자 과거 사담 후세인 통치 기간에 이라크의 집권당이었던 바트당(Ba'ath Party)은 나치의 이념이었던 ‘국가사회주의’를 그대로 차용한 정당이다. 


1990년 걸프 전쟁(The Gulf War, 1990년 8월 2일 ~ 1991년 2월 28일) 당시 전선에 투입된 이라크 최정예 부대 중 하나였던 살라딘 전차여단의 탱크에는 독일의 전쟁 영웅 롬멜 장군(Erwin Johannes Eugen Rommel, 1891~1944: 제2차 세계대전 중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전격전(電擊戰, blitzkrieg)을 펼쳐 영미 연합군을 거세게 밀어붙인 독일의 명장이었다. 사막의 여우(Desert Fox)가 그의 별명이었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출처: 주디스 밀러, 로이 마일로이 공저, 진영수 옮김, <<사담 후세인의 대야망: 페르시아만의 위기와 그 진상>>, 경향신문사 출판제작국, 1990) 


그뿐만 아니라 히틀러를 포함한 많은 나치 전범들은 대다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평화 봉사단(Peace Corp)의 일원으로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안지구의 임시 행정 수도 라말라(Ramallah)에서 보조교사로 봉사했던 미국의 한 여대생(그녀는 사실 미국계 유대인이었다.)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1906~196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진두지휘했던 최고 책임자, 전후 아르헨티나에 은거하다가 모사드 요원들에게 납치돼 이스라엘로 압송된 후 재판을 통해 사형선고를 받고 1962년 6월 1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이 불쌍하다며 울부짖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출처: 토머스 프리드먼 지음, 이건식 옮김,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북이십일, 2010) 

  

왼편: 1942년에 찍은 SS 장교복장의 아이히만의 초상, 오른편: 1961년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아이히만 / 출처: 위키백과, <아돌프 아이히만>





<제 4 장  아랍과 이슬람의 왜곡된 유대인 관념 0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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