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30일 자정이 넘었으니 8월의 마지막 날이다.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에 큰 딸이 다가와서 말하기를
“ 엄마, 열심히 하시네요, 좀 쉬어 가면서 하세요, 하더니 “ 9월 첫째 토요일 7일 뭐 하실거에요? ” 하는 것이었다.
수연은 별 다른 계획이 없다고 이야기 했다. 딸은 안심한 듯 “그럼 김준수 음악회 가자.” 는 것이었다. 동생 것과 엄마의 것까지 예매 하여 두 자리를 확보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엄마를 문화 생활 하게 해 준다는 묘한 뜻을 표정에 품고서 말이다.
수연은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김준수 뮤지컬 할 때마다 매번 비싼 티켓 값도 로얄석이면 십 오만원 정도 하고, 기본석도 십만원이 넘는데 공연일마다 그것을 다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딸은 십년 넘게 그렇게 해 오고 있다. 공연날이 다가오면 그 공연의 컨셉에 맞는 것을 준비하고 카메라를 점검하는라 남대문까지 왔다갔다하며 행복해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지 좋아 하는 일’ 이라 생각하자고 되뇌이지만, 한 편으로 정신적으로 허한 것이 있어 저렇게 몰두 하는가“ 하는 안쓰러움도 있다.
하지만 수연은 행복해 하는 딸을 보며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만 둘 아이가 아니니까.
수연은 은퇴를 하고 10년 간 자취를 하던 딸들과 합가를 하였다. 그동안 가까이서 본 딸은 김준수에 중독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사 과정에 있는 딸은 밤새어 논문을 쓰고 새벽녘에 잠들면 정오가 되어 일어난다. 그때서야 게슴츠레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샤워 한 후 학교에 나가지 않는 날은 침대 속에서 휴대폰을 들고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오후 쯤 되면 생기 발랄하여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한다.
그런데 김준수의 일정이 있는 때는 밤샘을 한 상태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신세계 강남의 오픈 마케팅을 가기도 하고 새벽에 줄을 서는 일을 서슴치 않고, 또 준수 관련 일은 도모하는 열성펜이다.
최근 2년 바라본 딸의 모습은 학교 생활 충실만큼 준수 덕질도 비례한다. 작년에는 준수 일정과 미국학회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한 번 덕질이 빠졌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번 공연일마다 티켓팅하여 준수와 같이 하는 일정이다. 게다가 해외 원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연은 학회일정이 준수 일정과 맞물려 주길 기도한 적도 있다. 그러는 자신이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물론 덕질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매 순간을 놓치기 아까울 수도 있겠지만, 10년 넘게 그것을 선호해 하는 일관된 태도는 가히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덕질 관련 비용은 장난이 아니다. 웬만한 가정의 생활비 수준이다.
그러나 요즘 MZ세대들은 자신의 선호와 행복만을 우선한다. 그에 따른 조언은 잔소리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면서 서로 마음이 상한다. 며칠 냉기류가 집안 전체를 흐른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원점으로 돌아가고 일상이 그렇게 반복되곤 한다.
학위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연은 순간적으로 “뭘 또 가냐?” 하려다가 “ 난. 안 간다. 너희만 가라. ” 그랬더니 “ 엄마도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예매를 했다는 것이다.
수연은 작년 이맘때 올림픽 경기장에 뮤지컬 보러 갔던 기억이 떠 올랐다.
젊은이들이 혼연일체되어 김준수를 바라보며 진행되는
음악회는 환상적인 몽환함을 주었다.
문화콘덴츠의 위력이 순기능만 있겠는가?
희열에 빠졌다가 다시 올라오는 분별력이 없다면 그건 역기능속에 허우적댈 뿐이라는 것을ᆢ
콘텐츠의 마케팅 전략에 매몰되어 경쟁하듯 준수 관련 물품을 과대 소유하게 하는 자본 심리도 경계해야할 것이다.
비단 준수 뿐이겠는가?
임영웅 따르는 엄마부대들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음악적 재능과 선호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즐기는 것이 좋지만 즐기는 방법도 중요하지 않을까?
수연은 딸의 그 말을 “ 너가 혼자 계속 보려니 미안해서 그렇구나”, 로 재해석하여 들었다.
수연도 “돈!돈! ”하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지금껏 남의 밥은 단 한번도 공짜로 얻어 먹지 않은 품성이며 언제나 남을 배려하고 자신이 손해 보더라도 먼저 지급하고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한다.
수연은 은퇴 후 연금으로 살아 가고 있다. 지금 남편의 월급은 넉 달째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수연이 받는 연금으로 박사, 석사 용돈 주고 뒷바라지 하며 매달 카드를 돌리며 살고 있는 엄마의 마음은 아예 자식은 모르는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서운함이 언제가부터 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상황으로 수연은 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로 피폐해 있다. 어떤 면에서는 말이다. 딸은 무안했는지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엄마랑 뮤지컬 보러 가지 않을 거야“는 것이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 금천구에 티켓팅을 환불하러 동생과 같이 나갔다. 나갔다 온다는 말도 없이 아파트 현관문은 꽝! 하고 닫혔다. 화가 났다는 징표다.
소심한 수연은 카카오맵을 켰다. 금천구면 1시간이상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 것을 확인하고
“그냥 아무말 없이 본다 할 걸! 잘 못 했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은퇴 전의 생활수준이 계속되고 있구나! 은퇴 했다는 것이 아직 수연의 가족에겐 현실로 와 닿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 뮤지컬 보는 문화 생활을 누리는 것이 잘못인가? 덕질은 무조건 나쁜 것인가? 딸이 행복하다는데....
도시에서 넉달 넘게 월급이 나오지 않으면 도시 빈민과 뭐가 다른가?
여러 생각들이 폭염의 기운을 담아 수연의 머리를 메운다.
행복도 돈으로 구입하는 시대!
그러나 그 옛날 지도교수가
강의 중
"라면을 먹더라도 클래식은 들어야지" 하던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