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는 당나라 유학길 도중에 해골 물을 마시고 득도하여 당니라 유학을 포기한 일화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고승대덕입니다.
그리고 신라 요석공주와의 사랑으로 탄생한 이두 문자를 창작한 설총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논문 준비 중에 작성한 것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채록 정리한 한국구비문화 대계의 <원효대사와 지명 유래>에서 퍼 온 것을 바탕으로 서사를 구분하였습니다.
원효에 대한 숨은 일화를 소개할까 합니다.
□ 원효대사가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며 공부를 하였다.
□ 기장 장안사 척판암에서 공부해도 통 득도가 되지 않았다.
□ 실망한 나머지 자결하려고 울주군 대운산의 정상인
도통골의 만학천봉에서 투신하였다.
□ 관음보살이 치마로 받으면서 그만한 일로 죽으려
하느냐고 나무랐다.
□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에 불이 났다.
□ 원효대사가 솔잎의 물을 뿌리자 불이 꺼졌다.
이야기의 서사적 전개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인과 즉 플롯이 뚜렷하지 않지만, 그 당시 우리 조상들에게 구전으로 회자된 것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로 보면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원효의 학업 정진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험난한 수련의 과정에서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기대한 결과에 못 미쳐 수도승으로서의 인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투신을 시도합니다.
이때 관음보살이 떨어지고 있는 원효를 치마로 받아 자살하려는 그를 살려내고 나무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기이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일단락됩니다.
목숨을 건 수행 정진과 그것의 좌절로 인한 절망 속에서 생을 포기할 때, 신이한 원조자의 도움을 받습니다.
인간적 결핍 요소를 종교적인 조력을 통해 제거하고 성취한다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당대 시대 반영론적인 관점에서 , 작가의 관점에서, 또 독자 수용의 관점에서 그 시대의 삶의 이해와 거기에 내재된 삶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효의 일화에서 우리 현대인들은 목표에 미달성하였을 때나 실패를 경험 하면 좌절하여 실망합니다. 그리고 수행한 이후 곧바로 그 노력의 결과를 기대하고 조바심을 내기도 합니다.
의도치 않은 결과물에 절망하여 생의 마감을 시도하고 또 하려는 사람들에서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보게 됩니다.
당대 대학자이면서 고승 대덕인 원효는 신라의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인물입니다. 원효도 그럴진대, 하물며,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번뇌는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이야기에 반영된 신라 이후 우리 민중들이 지닌 사고관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일화에 나타난 관음보살처럼,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줄 내 주위의 관음보살은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
긴 인생의 여정에서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를 도와줄 관음보살을 한번 찾아보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아가 휘청거리고 흔들릴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니까요! 삶의 버팀목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부족하지만 자신을 지킬 지지대는 하나쯤 있어야 할 듯합니다.
그것은 책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취미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가족일 수도 있고 있으며, 자신의 선택에 따라 매우 다양한 유형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가치있는 것들로 선택하면 좋지 않을까요? 나아가 어려움에 처한 타인에게 관음보살이 되어 줄 순 없을까요?
한 편의 소박한 이야기 속에 많은 것이 농축된 아름다운 우리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