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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Dec 18. 2024

29화. 평등과 혐오

<흑마법서> 소설 연재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박준식이 내뱉었다.

 “사장님이 저 상태인데 우리가 대체 뭘 해야 되는 거야?”

 세 직원들은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이태민은 말없이 팔짱을 낀 채 탁자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김구름은 뒷짐을 지고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이태민이 중얼거리자 김구름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일단 사장님이 쾌차하시는 게 우선입니다. 책이니 사업이니 하는 건 그 다음이에요.”

 “근데 저렇게 방 안에 틀어박혀 있게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거야?”

 박준식이 물었다.

 “어쩔 수 없잖아. 본인이 방 안에 틀어박혀 있고 싶다는데 어떻게 해.”

 이태민이 말했다.

 김구름은 방 안을 거닐다가 목에 멘 목걸이의 로켓을 한 번 열어봤다. 그리고는 한숨을 쉰 뒤 다시 방 안을 서성였다.

 “만약에 말이야, 사장님이 이대로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면......”

 박준식이 말했다.

 “그 때는 새로운 마법사를 구해야 하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흑마법서의 주문을 처음부터 다시 쓰자고?”

 이태민이 딱 잘라 말했다.

 “게다가 시간도 얼마 안 남았어. 본사와의 계약 기간이 다섯 달 남짓이라고.”

 “근데 사장님이 저렇게 방구석 돌부처로 지내고 있잖아. 네 말대로 가뜩이나 시간도 부족한데 말이지.”

 “나아지시겠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박준식이 볼멘소리를 했다.

 “게다가 우린 석판의 나머지 절반도 아직 구하지 못했는데......”

 “안녕하세요.”

 세 직원은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혜성이 응접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혜성은 천천히 걸어가 응접실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김구름이 그 옆에 앉았다.

 “사장님? 몸은 좀 어떠세요?”

 “그냥 그래요.”

 “그럼 머리는 어떠세요?”

 “글쎄요, 좀 어지럽기도 하고...... 아무튼 좀 나아진 것 같긴 해요. 아직도 깜깜한 건 무섭긴 하지만.”

 박준식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오, 정말 오랜만입니다, 사장님. 영영 못 보는 줄 알았어요.”

 혜성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그래요. 사실 방 안에만 있다 보니까 좀 답답하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튼 좀 답답해서 나왔습니다.”

 혜성이 일어나서 물을 마시려 하자 이태민이 재빨리 다가와 물을 따라줬다. 혜성은 감사하다고 말한 뒤 물을 들이켰다.

 “그건 그렇고, 윤이는 어디 있어요?”

 “매려 여왕님 말인가요? 그야 당연히 궁전에 있겠죠.”

 이태민이 말했다.

 “아까 내 방에 들어왔던데......”

 그 말에 세 직원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김구름이 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말했다.

 “사장님, 여왕이 사장님을 병문안 온 건 일주일 전입니다.”

 “네?”

 혜성은 깜짝 놀랐다.

 “방금 전 아니었어요?”

 박준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장님, 생각보다 많이 심각한 상태네요. 지난 일주일간의 기억이 전혀 없는 건가요?”

 혜성은 눈을 몇 번 깜박였다.

 “그게, 생각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때 방 안으로 건장한 도깨비 남자 세 명이 들어왔다. 혜성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혜성을 보더니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공자님, 드디어 방에서 나오셨군요.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남자들 중 한 명이 말했다. 혜성은 어리둥절했다.

 “어...... 안녕하세요. 근데 누구신지......”

 “저희는 여왕 폐하께서 공자님에게 붙여주신 경호원들입니다. 폐하께서 공자님을 보고 가신 직후부터 서점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공자님께서 어딜 가시든 저희가 함께하겠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런데 감사하긴 합니다만 저는 경호원이 없어도 괜찮은데......”

 “폐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공자님께서 겪으신 고초를 생각하면 경호원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폐하의 판단이었습니다.”

 경호원의 말에 이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사장님은 노예로 잡혀간 적도 있고 생매장당하기도 했잖아요. 경호원이 있는 게 안전할 겁니다. 그래서 저희도 일주일 동안 이 분들과 같이 지내고 있는 중이에요.”

 다른 경호원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공자님께서 아예 궁전에서 함께 생활하시길 바라시는데, 혹시 가능하실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제가 주로 하는 일이 주문을 쓰는 일 말고는 별로 없긴 한데, 그래도 손님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사장인 제가 계속 서점에 있는 게 좋거든요.”

 “그래도 당분간은 손님이 없을 것 같으니 여왕에게 다녀오시죠.”

 김구름이 말했다.

 “여왕님이 사장님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더군요. 좀 나아지셨으면 궁전에 가서 오랜만에 둘이 같이 시간을 보내세요. 어차피 대부분의 고객들은 인터넷으로 마법서를 주문하니까요. 아, 물론 사장님이 힘드시면 절대 무리는 하지 마시고요. 그냥 요양이라 생각하시고 다녀오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혜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다시 주문을 쓰실 건가요?”

 박준식이 물었다.

 “아직은 안돼요. 의사가 일을 하지 말고 당분간은 휴식을 취하라고 했어요.”

 이태민의 말에 혜성은 다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박준식이 혀를 찼다.

 “괜찮으니까 주문을 쓰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니까 사장님이 상태가 정말 많이 안 좋은가 보네요. 그래요, 이번 기회에 좀 쉽시다. 주문은 지금까지 많이 썼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완성을 하려면 좀 더......”

 혜성의 말에 김구름이 손을 저었다.

 “아니요, 주문 얘기는 그만 해요. 당분간은 책에 대한 생각은 하지 마시고 쉬세요.”

 혜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걸 보고 또 다른 경호원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공자님, 주제넘은 참견일 수도 있지만, 실은 모레가 폐하의 생신입니다.”

 그 말에 혜성은 고개를 들었다.

 “그래요?”

 “네. 그래서 기분 전환도 하실 겸 궁전에서 열리는 폐하의 생일 파티에 가시는 건 어떨까요? 공자님이 가시면 폐하께서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그 말에 혜성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모레가 윤이 생일이었구나.”

 그는 관에서 나온 후로 처음으로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우리 영업을 좀 쉬고 다 같이 매려궁에 가는 게 어때요?”


 혜성과 세 직원, 그리고 세 경호원은 왕실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함께 궁전으로 향했다. 혜성은 약혼식을 떠올리며 여왕의 생일 파티도 그만큼 화려할 거라 기대했지만, 막상 궁전에 와보니 생일 파티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경호원들이 혜성에게 말하길, 전국적인 만세 운동이 진행 중인 데다 제국인 폭도들에 의해 큰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애도의 뜻으로 여왕이 생일 파티를 열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궁전의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조촐하게 여왕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혜성이 궁전에 도착했을 때 여왕은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혜성이 왔다는 말을 들은 여왕은 용포를 휘날리며 달려왔다. 혜성은 자신을 껴안고 키스를 퍼붓는 여왕을 어색하게 안아줬다.

 “몸 상태는 어때? 좀 나아졌니?”

 “응, 많이 나아진 것 같아.”

 여왕은 슬픈 눈으로 혜성의 눈을 응시했다.

 “걱정 많이 했어. 널 영영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싶어서.”

 “무슨 그런 걱정을.”

 두 사람은 저녁을 먹을 때까지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후에도 붙어서 계속 대화를 나누다가 함께 잠이 들었다. 혜성은 관에서 나온 이후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꼈다.

 ‘집에 돌아온 기분이야.’

 혜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여왕의 품에 안긴 채 잠이 들었다.


 혜성은 여왕의 생일날까지 궁전에서 딱히 하는 일 없이 돌아다니거나 앉아 있었다. 여왕은 틈이 날 때마다 혜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하루 종일 너무 바빠서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오후였다. 혜성은 김구름과 함께 궁전의 정원을 느릿느릿 산책하고 있었다.

 “사장님, 오늘은 상태가 어떠신가요? 머리가 아프거나 불안하지는 않나요?”

 “그런 건 없어요. 점점 더 나아지는 것 같아요.”

 그 말에 김구름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보여요. 계속 나아지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드넓은 정원에는 다양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혜성은 손을 뻗어 꽃들을 스치듯 만져봤다.

 “다시 주문을 써야 하긴 하는데,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책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관에 들어갔다 나온 이후로는 뭐랄까, 흥미가 좀 떨어진 것 같아요.”

 “조급한 마음을 버리세요. 의사도 일을 하지 말고 쉬라고 했으니 아직은 휴식을 취할 때에요. 주문은 천천히 써도 늦지 않을 거예요.”

 혜성은 자신의 옆에서 걷고 있는 김구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가까이에서 본 김구름은 하얗고 복슬복슬한 커다란 솜뭉치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면 제가 불사신 서점에 들어온 이후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혜성의 말에 김구름이 고개를 돌렸다.

 “혹시 서점에 들어오신 걸 후회하시나요?”

 “아니요, 절대로. 서점이 절 받아줘서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혜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화제를 바꿨다.

 “그러고 보니 이사님은 가족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김구름이 바로 대답했다.

 “전 일밖에 몰라서요.”

 “결혼도 안 하셨던 거예요?”

 그 말에 김구름은 멈칫했다. 혜성이 보기에 그는 뭔가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예전에 하신 적이 있나 보네요.”

 “한 번 한 적이 있긴 하죠.”

 “그럼 지금은...... 이혼하신 거예요?”

 김구름은 멋쩍게 웃어보였다.

 “그냥 좀 복잡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혜성은 얼른 대답했다.

 “사장님께서는 여왕과 결혼을 하실 건가요?”

 “글쎄요, 대신들이 반대하고 있어서 안 될 것 같습니다만.”

 “만약 대신들이 입장을 바꾼다면 하실 건가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전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결혼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가정을 꾸리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물론 지금은 결혼을 하기에는 여왕이나 사장님 둘 다 많이 어리지만요. 어쨌거나 전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데 실패했지만 사장님은 할 수 있을 거예요.”

 “음...... 그럴까요?”

 “사장님의 의지만 있다면 말이죠. 여왕은 사장님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죠.”

 그렇게 말하고 김구름은 먼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혜성은 그가 왠지 슬퍼 보인다고 느꼈다. 그리고 문득 김구름이 자신보다 훨씬 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도깨비들은 시민견과 시민묘의 나이를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김구름에게 몇 살이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다음에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은 그에게 그런 걸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만 돌아가시죠.”

 김구름이 몸을 돌려 궁전을 향해 걸어갔다. 혜성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여왕은 생일날에도 회의와 업무를 쉬지 않았다. 회의 시간 내내 심각한 표정이던 여왕은 회의가 끝나고 직원들이 생일 케이크를 들고 들어와 노래를 부르자 부끄러워했다.

 “뭐 이런 걸 다...... 안 해도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여왕은 손을 내저었지만 궁전 직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왕에게 촛불을 불어달라고 했다. 여왕이 얼굴을 붉히며 초를 불어 끄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그 자리에 있던 혜성도 박수를 쳤다.

 “여기 선물.”

 혜성이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너에게 뭘 줘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 그래서 그냥 내가 직접 만들기로 했지.”

 그 말에 여왕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리본을 풀고 선물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동물 모양의 초콜렛과 과자가 가득 담겨 있었다. 여왕은 그걸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귀엽다. 이거 진짜 네가 만든 거야?”

 “물론이지.”

 혜성이 어제 궁전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만든 것들이었다. 여왕은 용 모양의 작은 초콜렛을 집어 한 입 물고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맛있어.”

 “그래? 다행이다.”

 여왕은 다른 과자를 집어 혜성의 입에도 넣어줬다. 여왕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들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또 한 살을 먹는군요. 시국이 좋지 않아서 생일 파티 같은 건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쨌든 이렇게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영의정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폐하, 만수무강하십시오.”

 그러자 직원들과 대신들이 모두 고개 숙여 절을 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폐하.”

 “고맙습니다. 모두에게 행복과 건강이 함께하길.”

 여왕도 화답했다.

 회의실을 나온 여왕과 혜성은 다과가 차려진 정원의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혜성이 만든 과자와 초콜렛을 하나씩 집을 때마다 모양을 보며 감탄과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별 것도 아닌데 네가 이렇게 좋아해줘서 정말 다행이다. 고마워.”

 혜성의 말에 여왕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준 선물이잖아. 정말 특별한 거지.”

 혜성은 즐거워하는 여왕의 모습에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들이 그렇게 정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궁전 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

 “폐하, 연방 정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폐하를 뵙고 논의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합니다.”

 여왕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아, 지금 왔군요. 알겠습니다.”

 혜성이 말했다.

 “중요한 일인가 보네. 빨리 가봐. 난 여기 있을게.”

 그러자 직원이 말했다.

 “공자님도 함께 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도요?”

 “예.”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함께 가자.”

 여왕이 말했다.

 여왕은 혜성을 데리고 정부 인사들이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도깨비와 인간 한 명이 여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대한민국 대통령과 자원부 장관이 보내서 온 공무원들이라고 소개했다.

 “폐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그들은 여왕에게 작은 선물을 내밀었다. 여왕은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혜성을 소개했다. 혜성은 공무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쩐 일로 대통령께서 여러분을 보내신 거지요?”

 여왕의 물음에 공무원들은 잠시 난처한 미소를 짓더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까지 소화인과 친소파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을 아시지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여왕이 대답했다.

 “그럼 그 폭동으로 인해서 서울 남쪽의 인드라망 발전소 하나가 파괴된 것도 아시겠군요. 그 때문에 현재 인드라망의 유지 및 관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대로 계속 놔두면 서울 전역의 수도와 전기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겁니다.”

 “복구가 시급하겠군요.”

 “그렇습니다. 발전소의 상당 부분을 아예 다시 건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한 인드라망 발전소가 워낙 거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파괴된 발전소의 잔해를 치우고 다시 건설하려면 수십만의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군요.”

 여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요?”

 “따라서 대한민국 연방 정부에서는 발전소를 복구하기 위해 서울시의 성인 도깨비들 중 10만 명을 무작위로 골라 동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동원령을 시민들이 순조롭게 따르게 하려면 폐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깨비 사회의 정신적인 축이라 할 수 있는 폐하께서 발전소 복구에 도깨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김혜성 사장님께서는 발전소 복구에 필요한 마법서를 공급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슨 뜻이지?’

 혜성은 눈을 찌푸렸다. 혜성뿐만이 아니라 여왕 역시 의아하다는 말투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잘 안 되는군요. 시민들을 동원한다니요?”

 “말 그대로입니다. 도깨비들을 동원해 발전소를 수리해야 합니다. 시급한 일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진행해야 하는데, 도깨비 시민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폐하께서 도와주시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입니다.”

 “노동에 대한 임금은 지불하겠지요?”

 “워낙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일이라 현재 재정 문제상 인건비는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여왕의 부드러운 눈썹이 꿈틀했다.

 “그러니까 지금, 돈도 주지 않고 시민들을 노역에 동원하겠다는 건가요? 그것도 도깨비들만?”

 “폐하, 연방 정부도 인부를 고용하고 싶지만 필요한 인력이 너무 많아서 그만한 인건비를 정부가 지급하기 어렵습니다. 저희가 제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국 정부는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이니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해결하라며 도움을 거절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시민들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시민들이 자원하지 않을 텐데요.”

 “자원이 아닙니다.”

 도깨비 공무원이 말했다.

 “이는 의무적인 사항입니다. 곧 정부에서 공식 발표를 할 것입니다. 저희는 그 전에 미리 폐하의 도움을 받고자 온 것입니다.”

 잠시 침묵하던 여왕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돈도 주지 않고 시민들을 강제동원 하겠다는 것이군요.”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렇습니다.”

 “부정적으로? 그게 사실 아닌가요? 게다가 도깨비들만 동원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도깨비가 인간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니까요.”

 도깨비 공무원의 말에 인간 공무원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깨비 시민들의 불만이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깨비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고 계신 폐하께서 이 동원의 필요성을 역설해주시면......”

 “그럴 수 없어요.”

 여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연방 정부는 지금 대단히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시민들을 강제동원하는 건 제국이나 하는 짓입니다. 게다가 이건 명백한 도깨비 차별입니다.”

 “폐하, 지금 현재 연방 정부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제국에 상납할 돈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발전소 복구를 위한 인건비까지 지불할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 백 번 양보해서 시민들을 강제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칩시다. 그렇다 해도 도깨비 차별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도깨비가 인간보다 힘이 세고 덩치가 크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충분히 노동을 할 수 있잖습니까.”

 여왕은 고개를 저었다.

 “전 이 문제에 있어서 연방 정부를 도와줄 생각이 없습니다. 아니, 연방 정부의 뜻에 반대합니다. 우리 매려는 대한민국 연방 정부의 구성원 중 하나로써 정부에 일정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도깨비 강제동원을 반대합니다.”

 두 공무원은 잠시 여왕을 황망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럼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들은 공손하게 절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여왕은 혜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니?”

 “네 의견에 동의해.”

 혜성이 대답했다.

 “연방 정부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가 뭔가 단단히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여왕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이상해.”


 다음날 혜성은 여왕을 따라서 대한민국 연방 정부 청사의 국무회의실에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이미 연방 정부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여왕을 본 사람들이 여왕에게 인사했다.

 “폐하,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이 여왕을 맞으며 인사했다. 한반도 연방 정부의 1인자인 대통령을 혜성이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통령은 혜성이 뉴스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턱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키가 훤칠한 중년의 도깨비 남자였다. 혜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여 있는 고위직 공무원들 역시 전부 뉴스로만 접하던 사람들이었다. 회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도깨비들이었고, 인간은 혜성을 포함해서 그리 많지 않았다.

 참석자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오늘 이렇게 모인 것은 서울 남쪽 인드라망 발전소 복구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서울시 내에 거주하는 비장애 성인 도깨비들을 동원하여 발전소를 복구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의견이 다른 분은 발언해 주십시오.”

 아무도 말이 없자 여왕이 말했다.

 “저는 매려의 국왕으로서 대통령님의 말씀에 반대하는 뜻을 분명히 표합니다. 시민들을 무임금으로 노역에 강제로 동원하는 것은 제국이 하는 짓과 똑같습니다. 이런 짓을 한다면 우리가 제국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더군다나 도깨비만을 동원하는 것은 명백한 종족 차별입니다. 이는 모든 종족은 평등하다는 연방 헌법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대통령이 대답했다.

 “폐하, 제가 어제 사람을 보내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정부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발전소를 복구하려면 대략 10만 명의 도깨비들을 몇 달 동안 투입해야 하는데 그 많은 인력에게 최저임금을 지불하는 건 지금으로서는 어렵습니다. 심지어 제국 정부에서 예산을 조달받는 것도 실패했지요. 폐하께서 이를 양해해 주시고 이번 동원에 뜻을 모아주신다면 참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럼 왜 도깨비만을 동원하는 것이죠? 비장애 성인 인간도 충분히 노동을 할 수 있잖습니까?”

 대통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발전소 복구 과정에는 심한 중노동이 포함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어려운 일이라 판단하였습니다.”

 여왕이 대답했다.

 “제가 알아본 결과 이전에 인드라망 발전소에서 소규모 복구 작업이 있었을 때는 인간과 도깨비 노동자를 모두 고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인간 역시 노동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 경우와는 상황이 다르죠.”

 “어떻게 다른 건가요? 복구의 방식이 다르다는 건가요?”

 “복구의 방식은 비슷합니다. 다만 그 때는 소규모 복구라서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자를 고용한 것이고, 이번에는 대규모 인력을 동원하는 것이잖습니까. 이런 대규모 노동에 인간을 동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죠.”

 “그래서 요구되는 노동의 강도가 비슷하다는 건 인정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노동을 하는데 고용의 형태일 때는 인간을 동원하지만, 무임금 강제동원일 때는 도깨비만을 동원하겠다는 말씀이잖습니까. 이건 명백한 종족 차별입니다.”

 대통령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지만 혜성이 보기에 그의 눈빛에는 살짝 곤란하다는 기색이 깃들었다.

 “폐하께서는 지금 기계적인 평등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인간과 도깨비의 신체적 차이가 분명한데 같은 노동을 시키는 것이야말로 차별이라 봐야지요.”

 “저는 인간과 도깨비에게 동일한 강도의 노동을 시켜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인간과 도깨비의 신체적 차이에 따른 노동 강도를 고려하여 두 종족 모두를 고용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인간이 신체적으로 도깨비보다 약자라고는 하나 발전소 복구에 있어서 필요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도깨비에게만 모든 노동을 부담시키는 것은 분명한 종족 차별입니다. 저는 기계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대통령 옆에 앉아있던 도깨비 여성 한 명이 말했다. 부통령이었다.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게 원칙적으로는 맞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신체적 차이에 따라 다른 강도의 노동을 부담시켜야 차별이 아니라는 주장.”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종족 간의 사회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오로지 생물학적인 차이만을 염두에 둔 주장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여왕이 물었다.

 “도깨비에 비해서 인간 종족은 신체적 약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강자와 같은 의무를 부담시킬 수는 없는 일이죠. 차별과 차이는 구별해야 하지 않습니까.”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여왕이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인간이 사회적 약자라는 말씀의 근거가 무엇인가요?”

 그 말에 부통령은 가볍게 웃었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지금 이 공간만 해도 그렇잖아요,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도깨비들입니다. 인간은 소수에 불과하죠.”

 여왕이 대답했다.

 “저는 부통령님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고위직 관료의 대다수가 도깨비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한반도의 모든 도깨비가 한반도의 모든 인간에 대해 사회적 강자라는 주장의 타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사회의 수많은 도깨비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와 하층민에 속합니다. 또한 매년 발생하는 산업 재해 피해자의 절대 다수는 도깨비입니다.”

 “그건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도깨비니까 그렇죠.”

 부통령의 말에 여왕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런 노동에 종사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입니다. 법적으로 강요된 게 아니에요.”

 “실례지만 그 말씀은,”

 여왕이 눈을 치켜떴다.

 “부적절한 발언입니다.”

 “사실이잖아요.”

 “사실이 아니라서 부적절하다는 게 아닙니다. 국민을 섬기는 정치인으로서 하실 말씀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때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폐하, 폐하께서는 도깨비 왕국의 군주이고, 도깨비들의 인권에 관심이 많으시기 때문에 이 문제가 불편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도깨비 인권은 저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도깨비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려 국왕으로서 저의 의무입니다.”

 “그래요, 폐하의 의무라는 걸 압니다. 그래서 이 사안에 대해 좀 다르게 접근하실 수는 있어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발전소 복구 작업은 몇 달이면 끝납니다.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에요. 도깨비들이 신체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간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걸 고려해서 국가를 위해 약간의 노동을 감수하는 것뿐입니다. 폐하께서 좀 더 객관적으로 보셔야 할 일입니다. 반대하실 일이 아니에요.”

 “대통령님의 말씀에는 세 가지 지적할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로 발전소 복구가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라면 인간 역시 그 노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도깨비들이 인간보다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도깨비’들만이 있을 뿐, 모든 도깨비가 모든 인간에 비해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 기득권을 가진 인간도 많을 뿐 아니라 사회적 취약 계층에는 도깨비도 많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로 국가를 위해 국민을 동원할 경우에는 더더욱 형평성에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드라망 발전소 복구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국민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발전소 복구를 통해 얻는 이익은 모든 종족이 누리지만, 복구에 필요한 손해는 특정 종족만이 감수해야 한다는 건 국가가 국민을 종족으로 차별하는 것이며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대통령님께서는 한반도 최고 수장으로서 이 점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절대로 종족 차별이 될 수 없습니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에요.”

 부통령이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왕인데도 불구하고 도깨비가 사회적 강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여왕이 대답했다.

 “성급한 일반화가 아니죠. 폐하께서는 도깨비들이 가진 특권, 기득권, 이런 것들을 좀 더 신경 쓰실 필요가 있어요. 물론 폐하만 그런 게 아니라 도깨비로서 저를 포함해 이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부 해당하는 말입니다. 폐하,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우셔야 합니다. 지도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능력입니다.”

 “공감 능력, 당연히 중요하지요. 그런데 그 전에 부통령님께서는 약자에 대한 정의 자체를 잘못 내리신 게 아닐까요? 이 사회의 도깨비들의 상당수가 사회적 취약 계층인데 단지 종족이 도깨비라는 이유로 그들을 약자에서 배제해버리는 건 약자에 대한 왜곡된 정의입니다.”

 “그래요, 물론 사회적 취약 계층에 속한 도깨비들도 많아요. 인정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기득권층의 대다수는 도깨비들이잖아요. 그걸 생각해야죠. 그리고 같은 취약 계층이라도 인간이 겪는 차별이 도깨비보다 더 크잖습니까. 같은 계층 내에서도 차별과 기득권은 존재하고, 도깨비와 인간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인간과 도깨비가 같은 계층 내에서도 겪는 차별이 다르다는 말씀의 근거는 무엇이죠?”

 “그것은 일상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딱히 말할 필요도 없을 텐데요?”

 “부통령님, 그건 무책임한 발언입니다. 논리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논리보다 중요한 게 약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입니다.”

 부통령이 답답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폐하께서는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진 채 높은 탑 안에 계시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과 감수성을 다소 잃으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폐하와 같은 입장이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건 저에 대한 인신공격의 오류입니다. 논리적으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신공격이 아닙니다. 폐하는 아까부터......”

 “그만합시다.”

 대통령이 말을 잘랐다.

 “아무튼 각료 회의에서 이 문제는 이미 결정된 바 있습니다. 혹시 여왕 폐하를 제외하고 이 문제에 의견이 다른 분이 있다면 발언해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진 끝에 대통령이 다시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여왕 폐하를 제외한 모두가 이 사안에 대해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며칠 안에 동원령을 내릴 것이며......”

 “그러시면 안 됩니다!”

 여왕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여러분은 국민을 종족으로 차별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기본적인 단계에서부터 잘못된 일입니다. 국가가 최저임금과 정당한 보상도 하지 않고 국민을 노역에 동원한다는 발상 자체가 소화 제국과 같은 전체주의적 발상입니다. 백 번 양보해서 무임금 노동을 강제한다면 건강한 성인 종족 모두가 그 노동을 평등하게 분담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소수 종족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도깨비에게만 국가를 위한 노동을 강제하는 것은, 모든 국민이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는 헌법적 질서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심지어 인간 역시 도깨비와 마찬가지로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데 그런 인간을 어떻게 약자나 소수자로 본다는 것입니까? 만일 여러분의 사고방식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도깨비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득권을 가진 특권 종족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앞에서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우리 사회의 도깨비들의 대다수는 평범한 시민이거나 하층민입니다.”

 “좀 거칠게 말해서, 도깨비는 특권을 가진 종족이 맞아요.”

 부통령이 끼어들었다.

 “그 말씀의 근거가 뭡니까?”

 “대부분의 고위직을 도깨비가 차지하고 있잖아요. 또한 신체적으로도 도깨비가 인간을 포함한 다른 소수 종족들보다 강하고요.”

 “그러니까 도깨비가 특권층이라는 말씀의 근거는 두 가지군요. 하나는 도깨비가 대부분의 고위직을 차지한다, 다른 하나는 신체적 강자이다.”

 “맞아요.”

 “문제는, 세상에는 그 두 가지 중 하나에만 해당되거나 둘 다 해당되지 않는 도깨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두 가지를 계속 언급해야 한다면 종족에 상관없이 고위직이거나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을 모두 발전소 복구에 동원해야 합니다.”

 “폐하, 폐하께서는 발전소 복구 작업을 직접 하고 싶으신가요?”

 “그걸 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그런데 본인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왜 자꾸 인간과 소수 종족들에게 강요하는 것입니까?”

 “사회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경우 그것을 모든 사회 구성원이 분담하는 것이 평등이라는 것은 어린 아이도 알 것입니다.”

 “평등, 평등, 평등.”

 부통령이 답답하다는 듯이 반복했다.

 “그것이 기계적 평등이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말했잖습니까. 인간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사회적 강자와 같은 의무를 요구하는 것은 약자에 대한 혐오입니다.”

 “혐오라고요?”

 여왕은 계속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슬슬 목소리에서 짜증이 조금씩 묻어났다.

 “지금 혐오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죠. 인간에게 발전소 복구 노동을 시키는 것은 인간 혐오입니다.”

 “올해 들은 말 중에 가장 어처구니없는 말이군요. 대통령님, 지금 부통령님이 하신 말씀을 개인적인 실언이라고 보면 되겠습니까?”

 “아니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대통령이 대답했다.

 “그리고 정부 인사 대부분은 그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계적 평등은 약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혐오입니다.”

 “죄송하지만 혹시 ‘혐오’라는 단어에 대해서 잘못 알고 계신 건 아닐까요? 국어사전에서 ‘ㅎ’ 부분을 보시면 알 텐데요.”

 “혐오가 뭔지는 우리도 잘 압니다.”

 부통령이 끼어들었다.

 “여기 있는 다른 각료들이 여왕 폐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 그것의 위험성과 해악은 한국 정부의 모든 관료들이 유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인간이 소수자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인간은 도깨비와 마찬가지로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데 소수자라고요?”

 “소수자라는 것은 항상 숫자로만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가진 발언권, 기회, 다양한 권리의 크기로 소수자는 결정되는 겁니다.”

 “말씀하신 그 모든 권리에 있어서 오늘날 인간이 도깨비보다 갖지 못한 게 무엇인지요?”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 또 말씀드려야 하나요?”

 부통령이 한숨을 쉬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고위층의 대부분은 도깨비가......”

 “산업 재해 사망자의 절대 다수 역시 도깨비입니다.”

 “그건 도깨비들이 선택한 거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고위직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선택받는 것인가 보군요?”

 “하!”

 부통령이 기가 차다는 듯이 내뱉었다.

 “세상에 고위직이 싫은 사람이 있을까요? 인간과 소수 종족들은 고위직을 싫어해서 대부분의 고위직을 도깨비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섣불리 본질을 판단하려 하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도깨비들이 고위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곧 고위직은 도깨비에게만 유리하다는 주장의 타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과 소수 종족이 고위직에 오르는데 차별을 받는다고 말하려면 그러한 차별이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 단지 고위직의 대부분이 도깨비라는 현상만을 언급하는 것은 제대로 된 증명이 아닙니다.”

 “그럼 사회적 고위직의 대부분을 도깨비들이 차지하는 이유가 뭘까요?”

 “다양한 이유를 댈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위직이 되기 위해 필요한 오랜 시간의 노력을 견딜 수 있는 체력과 의지력과 집착이 강한 사람들 중에서 도깨비가 다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할당제를 제외하고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께서는 모두들 사회적 권력과 부를 가지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아실 겁니다. 그런 긴 시간의 노력과 리스크를 감수할 정도의 집착을 가진 사람들의 상당수는 도깨비죠. 이는 도깨비와 다른 종족과의 신체적, 정신적 차이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오,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아시나요?”

 부통령이 눈을 치켜떴다.

 “지금 그러니까 도깨비가 다른 종족에 비해서 우월한 종족이다, 그러므로 고위층을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씀이로군요?”

 “제 말을 의도적으로 곡해하고 계십니다. 모든 종족은 각자 신체적, 정신적 장단점과 다양한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도깨비 종족에게도 장점과 단점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그 중 도깨비가 다른 종족에 비해 두드러지는 몇 가지 특성이 사회적 고위직을 쟁취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뿐입니다. 성공한 사업가의 대다수는 도깨비입니다. 하지만 실패한 사업가의 대다수 역시 도깨비입니다. 당선된 정치인의 대다수는 도깨비입니다. 하지만 낙선한 정치인의 대다수 역시 도깨비입니다. 시민을 지키는 경찰, 군인, 소방관의 대다수가 도깨비이지만 시민에게 피해를 끼치는 범죄자의 대다수 역시 도깨비입니다. 사회를 한 쪽만 보고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도깨비라는 종족이 가진 특성이 그들을 사회적 고위직과 밑바닥 양쪽에 모두 고르게 분포시킨다는 것을 분명하게 짚고 싶습니다. 사회적 고위직의 대다수가 도깨비라는 현상만으로 도깨비가 특권 종족이라고 말한다면, 반대로 하류층의 대다수가 도깨비라는 현상으로는 도깨비가 사회적 약자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동의하시나요?”

 “물론 동의하지 않죠. 폐하의 말씀에서는 우생학의 냄새가 나는군요.”

 “맙소사......”

 여왕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는 도깨비가 특권 계층이 아니라고 말씀하시지만 매려 왕실은 수천만년동안 오직 도깨비에게만 왕위를 세습해왔죠. 폐하 역시 그 세습의 수혜자이고요.”

 “초고대에는 인간 왕국 역시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 왕족으로만 대를 이었죠.”

 “저는 이 자리에서 초고대 역사학을 논하려는 게 아닙니다.”

 “부통령님께서 말을 꺼내셨기 때문에 언급한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이 사회의 특권층에 속합니다. 하지만 제가 특권층인 것이지 세상의 모든 도깨비가 특권층인 것은 아닙니다. 이 정부의 각료들이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그 사실을 저는 분명히 지적하고 싶습니다.”

 “여왕 폐하.”

 도깨비 남성 한 명이 손을 들고 말했다. 법무부 장관이었다.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한 마디 하자면, 우린 지금 이런 문제로 힘을 뺄 때가 아닙니다. 이런 말을 공개된 장소에서 하기는 꺼려지지만, 지금은 우리끼리 단결해도 부족한 시국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한국인들끼리 단결해서 제국과 맞서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문제로 분열하면 어떡합니까.”

 “장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부통령이 말했다.

 “지금 현재 한반도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아요. 제국은 스스로 망할지도 모르지만 한국이 여기서 더 망하게 된다면 그것은 단 하나 때문입니다. 분열이에요, 분열.”

 “분열이 걱정된다는 분이 도깨비만을 강제동원하려고 하시는군요.”

 “인간과 소수 종족에 대한 형평성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그것은 형평성이 아니라고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

 “그만, 그만하세요.”

 대통령이 손을 들었다.

 “이 문제는 어차피 다수결로 결정되었습니다. 여왕 폐하의 말씀은 충분히 들었습니다. 이번 주 안에 서울의 도깨비 시민들에게 동원령을 내릴 겁니다. 불사신 서점의 김혜성 사장께서는 발전소 복구에 사용할 마법서를 공급해주시길 바랍니다.”

 여왕은 대통령을 잠시 노려보다가 옆에 앉아 있는 혜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혜성은 여왕의 체념한 표정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혜성은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저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혜성을 쳐다봤다. 대통령도 의아하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뭐라고요?”

 “저 역시 여왕 폐하와 의견이 같습니다. 도깨비에게만 이 노동을 강요하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회의실 안에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옆에 있던 여왕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혜성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괜찮아, 안 그래도 돼.”

 “잠깐만요.”

 부통령이 말했다.

 “김혜성 사장도 지금 약혼녀와 의견이 같은 건가요?”

 “그렇습니다.”

 혜성이 대답했다.

 “도깨비에게만 노동을 시키는 건 잘못됐다?”

 “그렇습니다.”

 “그럼 김 사장도 자발적으로 발전소 복구 노동에 참여하세요. 말리지 않겠습니다.”

 부통령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논점에서 벗어난 말 같은데요. 이 노동은 참여가 아니라 강제동원이잖아요. 저는 지금 도깨비만 강제 동원을 하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 말에 부통령의 미소가 사라졌다.

 “김 사장은 발전소 복구 노동을 하고 싶은가요?”

 “저요? 당연히 아니죠.”

 “근데 왜 인간에게도 노동을 시키라고 하는 겁니까? 그건 모순 아닌가요?”

 “제가 세금을 내기 싫으니까 인간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달라고 하면 뭐라고 하실 건가요?”

 “뭐라고요?”

 “내가 개인적으로 하기 싫은 거랑 의무를 분담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죠. 이런 건 말 안 해도 아셔야 하는데.”

 그러자 부통령은 말문이 막혔는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김 사장.”

 “네.”

 “김 사장 같은 인간을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뭐라고 하는데요?”

 “명예 도깨비라고 합니다.”

 “네?”

 혜성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다.

 “그게 무슨......”

 “그게 지금 무슨 말입니까!”

 그 때 옆에서 여왕이 외쳤다.

 “명예 도깨비라니,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도깨비를 인간의 적으로 전제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그 발언은 연방이 늘 강조하는 종족 평등 사상과 정면 배치되는 도깨비 비하 발언입니다.”

 “자, 진정하세요.”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흥분하지 마십시오. 부통령님의 방금 그 발언은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명예 도깨비’라는 발언은 다소 부적절했습니다.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그리고 제 약혼자에게도 사과하십시오.”

 여왕의 말에 부통령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김 사장, 미안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대통령도 언짢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튼 김 사장, 김 사장이 어느 쪽인지는 잘 알겠으나 다수결에 따라서 본 회의의 결론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김 사장은 발전소 복구를 위해 필요한 마법서들을 공급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 말에 혜성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마법서 공급을 가지고 거래를 할 수는 없을까? 하지만 옆을 보자 여왕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혜성의 속뜻을 알아채고 그러지 말라는 뜻이었다.

 여왕의 뜻대로 해야 할까? 혜성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히고 큰 소리로 말했다.

 “거부하겠습니다.”

 대통령이 물었다.

 “무슨 뜻이죠?”

 “연방 정부는 도깨비들에게 차별적인 노동을 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차별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연방이 도깨비만을 복구 작업에 동원하는 한 발전소 복구에 필요한 마법서를 공급하지 않겠습니다.”

 장내가 술렁였다. 부통령이 큰 소리로 말했다.

 “김 사장, 그게 지금 무슨 말입니까?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기나 합니까?”

 혜성이 대답했다.

 “잘 알고 있어요.”

 “자, 조용, 조용히 하십시오.”

 대통령이 손을 들고 말했다.

 “김 사장, 지금 국가적 중대 사항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국가가 국민을 차별하는 것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건 차별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차이를 인정하자는 겁니다!”

 대통령이 큰 소리로 나무랐다.

 “도깨비에게만 중노동을 시키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차이는 없습니다.”

 다시 회의실이 시끄러워졌다. 어떤 인간 남성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명예 도깨비 같으니!”

 “조용히 하십시오!”

 대통령이 소리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내가 쉽게 조용해지지 않았다. 혜성에게 야유하는 소리도 들렸다.

 “혜성아.”

 그 때 옆에서 여왕이 말했다.

 “안 그래도 돼.”

 여왕이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혜성은 여왕의 그 슬픈 눈을 보고 더더욱 마음이 굳어졌다.

 “괜찮아.”

 혜성은 웃어보였다.

 “김혜성 사장.”

 대통령의 말에 혜성은 고개를 돌렸다.

 “김 사장은 제국과의 거래를 거절하여 많은 불이익을 샀고, 연방 정부는 평소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연방에게도 똑같은 태도로 나오는군요. 이제 보니 김 사장이 애초에 제국과 거래하지 않은 것마저도 그저 젊은이의 치기 어린 반항에 불과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건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잖소!”

 대통령이 어린 아이를 꾸짖듯 말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방금 한 말을 취소할 뜻이 있습니까?”

 “저야말로 묻고 싶습니다. 차별적인 강제동원을 취소할 뜻이 있으신가요?”

 대통령은 잠시 한심하다는 눈으로 혜성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어차피 불사신 서점이 아니더라도 발전소 복구에 필요한 마법서는 다른 서점에서도 구할 수 있습니다. 단지 불사신 서점이 고등급 마법서를 주로 취급하기 때문에 일이 좀 더 수월해질 뿐, 김 사장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발전소 복구가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아무튼 불사신 서점은 대한민국 연방과 국민을 위한 중요한 사업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불사신 서점과 연방과의 관계도 끝내는 게 낫겠소.”

 그 말은 불사신 서점이 제국 몰래 연방 정부와 맺은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럼 매려와 불사신 서점만이 협조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오늘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대통령은 그렇게 말한 뒤 방을 나가버렸다. 뒤이어 부통령과 다른 사람들도 방을 나갔다.

 회의실에는 혜성과 여왕만이 남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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