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희준 Feb 27. 2024

64화. 가짜와 은혜

<흑마법서> 소설 연재

 다시 감방에 돌아온 혜성은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제국이 용을 만들려고 하다니.’


 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학살을 생각했다. 그리고 곧 자신의 목숨과 함께 사라져 버릴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깨어있는 것인지 잠을 자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누워 있었다.


 ‘주문을 쓰고 싶어.’


 혜성은 웅크린 채 몸을 떨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책상에 앉아서 주문을 마저 쓰는 것이었다.


 그는 벽으로 기어가 손가락으로 차가운 벽에 문자를 썼다. 그의 머릿속에는 쓰다 만 주문이 가득했다.


 ‘완성해야 해.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는 날이 밝으면 자신에게 찾아올 일들을 상상했다. 아마 그는 고문을 버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다 말할 것이다. 그다음에 하선은 쓸모가 없어진 그를 죽이거나 노예로 팔아버릴 것이다. 혜성은 두려움에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계속 생기는 것일까?’


 사실 이 모든 것은 그의 선택이었다. 그가 선택한 일들의 연속이자 결과였다. 하지만 그가 원했던 것은 그저 책 한 권을 만드는 것이었다. 무한히 위대한 작품성을 가진 고귀한 문학작품.


 하지만 내가 그걸 쓰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이 세상에서 아무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을 만큼 내가 그렇게 뛰어난 사람일까? 전혀. 나는 평균도 못 되는 인간이야. 부족한 것 투성이에 유일하게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라고는 주문을 쓰는 것 하나밖에 없지만 여태까지 책을 한 권도 쓰지 못했지. 난 그저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잡초에 불과해. 나 같은 존재가 무한에 도달하려고 했다니. 나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가당치도 않은 꿈을 꾼 것에 대한 벌로 나는 지금 여기 갇혀있는 거야.


 그런데 만약 내가 흑마법서를 쓰는 게 불가능하다면, 나는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는 지금까지 그 책을 쓰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불사신 서점의 사장이 되기 전부터,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의 평생을 바쳐서 흑마법서를 쓰기 위해 달려왔다. 그런데 그 책을 쓰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의 인생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가 지금까지 애쓴 시간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가지 질문에 맞닥뜨렸다.


 ‘나는 왜 사는 걸까?’


 그가 지금까지 바라보며 살아왔던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위기에 놓인 지금, 그는 자신이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삶은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저주였지만 그에게는 지금 무의미 그 자체였다. 꿈이 없는 삶은 무의미한 방황에 불과했다.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것은 단 한 번도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약혼녀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정작 그가 정말로 사랑했던 그의 꿈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그에게 단 한 번도 미소 지은 적이 없었다. 그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한 기분이었다.


 혜성은 제국군이 사람들을 때리고 잡아가던 장면을 떠올렸다. 제국은 곧 수십만 명의 목숨을 바쳐서 용을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내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


 혜성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할 수 있어. 내 목숨보다 책을 선택하겠어. 하지만 지금 내 목숨은 내 것이 아니잖아.


 그는 군인들이 사람들을 때리고 잡아가던 광경을 떠올리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더욱 몸을 웅크렸다. 그는 그 끔찍한 모습을 잊기 위해 계속 주문을 생각했다.


 “주문을 써야 해.”


 그는 중얼거렸다.


 “아직 내가 못 꺼내놓은 게 있어. 그것만 있으면 가짜와 내가 구분될 수 있어.”


 그 순간, 그는 무엇이 가짜였는지 깨달았다. 그 자신과 온 세상이 바로 가짜이고 허상이었다. 세상에는 오직 주문만이 있었다. 그는 여태까지 주문을 가리는 가짜에 현혹되어 살아왔다. 돈과 사람과 쾌락과 슬픔과 고통, 그리고 온 세상. 그 모든 것이 가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주문에 몰입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주문에 휩싸여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렸고, 급기야는 자기 자신마저 잊어버렸다. 그는 오직 책만을 생각했다.


 “아직 내가 못 꺼내놓은 게 있어. 그것만 찾으면......”


 혜성은 웅크린 채 중얼거렸다.


 “아직 내가 못 꺼내놓은 게 있어.......”


 눈물이 그의 얼굴을 타고 조용히 흘렀다.


 “가짜와 내가 구분될 수 있어......”


 추웠다. 혜성은 몸을 덜덜 떨었다.


 “아직 내가 못 꺼내놓은 게......”


 주문으로 가득한 그의 머릿속에서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재생되었다. 슬픔과 고통, 그리고 돈에 대해 생각하지 않던 시절. 인생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여겨지지 않던 시절. 그리고 그의 곁에 부모님이 있던 시절......


 ‘곧 나도 엄마랑 아빠가 있는 곳으로 가겠지.’


 그는 부모님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이 나에게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왔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게 없어. 그러니 책을 써야 해. 책을 써야 해.’


 혜성은 차디찬 바닥 위에서 떨며 흐느꼈다.


 ‘책을 써야 해......’


 그의 정신은 천천히 부서져 갔다. 그의 몸을 이루는 원자들도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책을 쓰고 가야 해......’


 그는 자신의 원자가 모두 흩어지고 나면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에 무엇이 남아있을지 궁금했다.


 ‘책을 쓰고 싶다는 갈망 하나만 남아 있겠지. 그건 해체되지 않을 테니까.’


 혜성은 흐느끼다가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은 인생은 아니었지만, 내 꿈은 나쁘지 않았어.’


 그는 조용히 죽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고문당하기 전에 죽고 싶었던 그의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가 누워서 오만 가지 상념에 젖어 있을 때 감방 문이 열렸다. 감방 안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공자님.”


 누군가가 속삭였다.


 “공자님, 정신 차리세요.”


 혜성은 눈을 떴다. 누군가가 그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정신 차려요.”


 혜성은 몸을 일으켰다. 낯선 도깨비 남자였다.


 “공자님, 정신이 드세요?”


 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야 해요. 사람들이 오기 전에 여기서 나가야 해요. 어서 이리 나오세요.”


 혜성은 남자가 재촉하자 일어나서 비틀거리며 감방 문을 나왔다.


 감방 문 앞에는 폐품 쓰레기가 가득 담긴 수레가 하나 있었다. 남자는 쓰레기들을 한 손으로 밀어붙이며 말했다.


 “이 안으로 들어가세요.”


 혜성은 영문을 몰라 눈만 깜박였다.


 “빨리요! 서둘러야 해요.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어서 들어가세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혹시 함정은 아닐까? 혜성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하선이 이런 함정을 팔 이유가 없었다. 하선이 그에게 원하는 게 있다면 그를 끌고 가서 고문하면 그만이었다.


 “뭐 하세요, 어서 들어가요!”


 남자가 소곤거리며 혜성의 팔을 잡아당겼다. 혜성은 순순히 그가 시키는 대로 폐품 쓰레기로 가득한 수레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혜성에게 수레 바닥에 누우라고 한 뒤 쓰레기를 덮어 그의 몸을 가렸다.


 “숨이 막혀도 조금만 참아요.”


 남자는 혜성의 몸이 밖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쓰레기 더미를 쌓은 다음 감방 문을 다시 잠근 뒤 수레를 밀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혜성은 수레에 실린 채 계속 어딘가로 운반되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수레를 밀던 남자가 긴장한 듯 멈춰 섰다. 걸어오던 발소리의 주인이 남자에게 말했다.


 “새벽부터 고생이 많으시네요.”


 “고생은요. 수고하십시오.”


 발소리가 다시 멀어지자 남자는 한숨을 내쉬고 계속 수레를 밀었다. 혜성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자는 몇 개의 문을 지나서 밖으로 나왔다. 그는 주변을 한 번 살피고는 속삭였다.


 “됐어요. 이제 나오세요.”


 남자가 쓰레기를 뒤적거리자 혜성은 쓰레기 더미 사이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새카만 하늘이 푸른빛으로 바뀌어가는 새벽녘이었다. 남자는 혜성이 수레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끌어당긴 다음 옆에 서 있던 승용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차에 타면 들킬 수도 있으니까 이 안으로 들어가세요.”


 혜성은 남자의 말대로 트렁크 안에 들어가 누웠다. 그를 태운 차는 건물 정문을 나와서 한동안 달리다가 멈춰 섰다. 남자가 트렁크를 열었다.


 “됐어요, 나오세요!”


 남자의 재촉에 혜성은 밖으로 나왔다. 시내 한복판이었다. 남자는 지갑에서 지폐를 몇 장 꺼내 혜성에게 내밀었다.


 “이건 택시비로 쓰세요. 전 다시 일하러 돌아가야 합니다. 늦게 가면 의심받을 수가 있어요. 빨리 돌아가야 하니 우린 여기서 헤어집시다.”


 혜성은 지폐를 받고 멍하니 서 있었다.


 “뭐 하세요? 어서 가세요.”


 남자의 말에 혜성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건가요?”


 그 말에 중년의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공자님이 저를 도와주셨으니까요.”


 “제가요? 제가 언제......”


 “공자님이 용산 역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을 구하셨잖아요. 그중에 저희 가족도 있었습니다. 전 단지 은혜를 갚는 것뿐이에요.”


 “아......”


 혜성은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저희 가족을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공자님을 평생 잊지 않을게요.”


 혜성은 침을 삼킨 뒤 가까스로 물었다.


 “저 때문에 위험해지시지 않을까요?”


 “제 걱정은 마시고 공자님은 집으로 돌아가세요.”


 남자는 다시 차에 타면서 혜성에게 손을 흔들었다.


 “공자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남자가 탄 차는 떠났다. 혜성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전 03화 63화. 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