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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Feb 25. 2024

62화. 군인들 (2)

<흑마법서> 소설 연재

 “이게 무슨 일이죠?”


 이태민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물었다.


 “그러게요. 마치 다들 뭔가로부터 도망치는 듯한......”


 그때 건물 사이의 도로에서 커다란 군용 트럭들이 튀어나왔다. 여러 대의 트럭은 순식간에 대로 가운데를 막아섰다. 차가 멈추자마자 트럭에서 군인들이 뛰어내렸다. 제국군이었다. 군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몽둥이로 마구 내려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른 군인들이 최루탄을 발사했다. 최루탄 여러 개가 도로 위를 스치고 지나가며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공자님, 저희도 피해야겠습니다.”


 경호원 한 명이 그렇게 말하며 혜성을 잡아끌었다. 다른 두 경호원과 두 직원도 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박준식이 소리쳤지만 그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옆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거의 대부분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지만 일반 시민들도 많이 섞여 있었다.


 그때 도로 앞에서 또 다른 군용 트럭이 나타났다. 트럭에서 내린 군인들은 앞으로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군인들은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팼다. 사방에서 비명과 고함 소리가 터졌다.


 “이쪽으로!”


 혜성의 손을 잡은 경호원이 방향을 꺾어 다른 길로 뛰어 들어갔다.


 “더 빨리 달려요!”


 경호원이 외쳤다.


 “잠깐만 기다려 봐요, 나한테......”


 “빨리 와요!”


 경호원이 박준식의 말을 끊고 외쳤다. 몸집이 작은 박준식은 가방을 멘 채 헐떡거리며 간신히 그들을 따라오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가지?”


 “일단 역 안으로 들어갑시다!”


 경호원이 그들의 손을 잡고 역으로 이끌었다. 그때 군인 한 명이 그들에게 달려왔다.


 군인은 혜성에게 냅다 몽둥이를 내리쳤다.


 혜성이 미처 피하지도 못하는데 경호원이 재빨리 군인의 팔을 막았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군인의 팔을 꺾은 뒤 몸통을 들어 던져 버렸다.


 “공자님, 어서.”


 경호원은 다시 혜성의 팔을 잡고 달렸다.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군용 트럭 한 대가 달려와 지나가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트럭에서 내린 군인들이 차 문을 열더니 운전자를 진압봉으로 때리면서 밖으로 끌어냈다.


 혜성 일행은 용산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역 안은 이미 군인들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로 가득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혜성이 회색 옷을 입은 사람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제국군이 우리를 죽이려고 했어요! 우린 간신히 탈출했고요!”


 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제국군이 가스실에서 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했다고요!”


 사람들은 언제 군인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겁에 질려 웅성거리고 있었다. 지쳐서 벽에 기대고 있거나 주저앉은 사람들도 보였다.


 “사장님! 사장님!”


 그때 박준식이 혜성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저에게 차원문 생성 장치가 있어요!”


 “네? 지금 그게 있다고요?”


 “그동안 이런저런 사건을 하도 많이 겪었잖아요. 그래서 혹시 몰라서 올 때 그걸 가져왔어요. 이걸로 일단 여기 있는 사람들을 서점 안으로 피신시켜요.”


 “힘들지 않을까?”


 옆에서 이태민이 말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려면 차원문을 한참 켜둬야 하는데 그럼 서점의 마력이 다 떨어질 거야.”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지. 일단 여기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봐야 할 거 아니야!”


 박준식의 말에 혜성이 대답했다.


 “좋아요, 일단 빨리 차원문을 생성합시다. 군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일단 역 안에 있는 사람들부터 구해야 해요.”


 박준식은 가방에서 차원문 생성장치를 꺼냈다. 그들은 차원문의 크기를 최대한 크게 설정한 다음 사람들로 북적이는 역 안에서 장치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허공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반원이 생겨났다.


 갑자기 생겨난 차원문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서 실내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혜성은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저희는 불사신 서점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이 차원문을 이용해서 서점 안으로 여러분을 순간이동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안전을 위해서 이 문 너머로 대피해 주세요!”


 사람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혜성을 쳐다만 볼뿐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혜성은 다시 외쳤다.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군인들이 지금 오고 있어요! 서점 안은 안전하니 모두 이곳으로 대피해 주십시오!”

 혜성과 직원들은 목청껏 외쳤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대부분 망설였지만 하나둘씩 차원문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차원문 안으로 들어갔다.


 “부장님이랑 차장님은 먼저 서점 안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통솔해 주세요. 경호원 분들이랑 저는 사람들을 계속 들여보낼게요.”


 “알겠습니다.”


 이태민과 박준식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원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혜성은 경호원들에게 역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혜성 역시 역의 2층과 3층을 뛰어다니며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외쳤다.


 “여러분, 1층에 불사신 서점으로 들어가는 차원문이 있습니다! 모두 이리로 대피하세요!”


 그중 상당수는 혜성을 선뜻 따라오지 않았다. 혜성은 그런 그들에게 매달렸다.


 “제발 제 말을 믿어 주세요.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군인들에게 잡히기 전에 오셔야 돼요!”


 경호원들도 바쁘게 오가며 사람들을 이끌고 왔다. 혜성과 경호원들은 양 떼를 몰듯 차원문 안으로 사람들을 부지런히 몰아넣었다.


 혜성은 목이 터져라 외치며 뛰어다니다가 구석에 아이들 몇 명이 모여 있는 걸 발견했다. 꼬마 셋이 겁에 질린 채 기둥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혜성은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갔다.


 “얘들아, 너희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몰라요.”


 “모른다고? 부모님이랑 여기서 헤어진 거야?”


 그러자 꼬마 한 명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두 명은 고개를 저었다. 혜성은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일단 날 따라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자.”


 혜성은 아이들을 데리고 차원문 쪽으로 향했다.


 차원문 앞은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경호원 한 명이 차원문 옆에 서서 사람들에게 밀치지 말고 들어가라고 외쳤다. 혜성은 앞에 있던 도깨비 여자 한 명을 붙잡았다.


 “죄송한데 이 아이들 좀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주시겠어요?”


 여자는 알겠다고 말하며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혜성은 다시 몸을 돌리다가 역 바깥에 군용 트럭이 들어오는 걸 발견했다.


 그는 소리쳤다.


 “제국군이 오고 있어요! 빨리 들어가세요!”


 그 말에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졌다. 사람들은 서로 마구 밀치며 차원문을 향해 달려갔다.


 트럭에서 내린 군인들이 역을 향해 뛰어왔다. 혜성은 자신도 차원문 쪽으로 가려다가 정문 앞에 어린 인간 소녀 한 명이 넘어진 채 울고 있는 걸 발견했다.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혜성은 차원문 근처에 있던 경호원을 불러서 메고 있던 가방을 던졌다. 붕새의 여의주가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이걸 갖고 부장님에게 가세요! 지금 당장!”


 “공자님은요?”


 “저도 곧 들어갈게요!”


 그렇게 말한 뒤 혜성은 아이가 있는 정문 쪽으로 달려갔다. 정문은 차원문의 정반대 방향이었다.


 아이는 넘어져서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혜성은 재빨리 아이를 일으켰다.


 “착하지, 빨리 가자.”


 혜성은 아이를 안고 차원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때였다.


 차원문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차원문은 작은 크기를 잠깐 동안 생성시키는데도 엄청난 마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커다란 크기의 차원문을 계속 열어두자 서점에 내장된 차원문 생성용 마력이 다 떨어진 것이었다.


 역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거의 다 차원문 너머로 들어간 상태였다. 혜성은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었다. 힘이 약한 그는 아이를 안고 뛰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의 등 뒤에서 군홧발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국군은 역 안으로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었다.


 차원문 너머에 있던 경호원 한 명이 혜성 쪽으로 오려고 했지만 안으로 몰려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밀려났다. 어느새 커다란 차원문은 점점 줄어들어서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공자님!”


 차원문 너머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어서 빨리!”


 “가고 있......”


 혜성은 헐떡거리며 내뱉었다.


 군홧발 소리가 점점 커졌다.


 “거기 서!”


 뒤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야, 한 명도 놓치지 마!”


 차원문은 이제 맨홀 뚜껑만 한 크기의 구멍이 되어 허공에 떠 있었다. 혜성은 차원문을 향해 다이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잠깐, 그러다가 나도 중간에 걸려서 이무기처럼 허리가 싹둑 잘리면 어떡하지?’


 하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는 뒤에서 바짝 따라붙은 발소리를 느꼈다.


 ‘거의 다 왔어.’


 그 순간 뒤에서 군인이 그의 머리에 곤봉을 내려쳤다.


 혜성은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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