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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Feb 24. 2024

61화. 군인들 (1)

<흑마법서> 소설 연재

 혜성은 처음에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여겼고, 두 사람이 계속 진지하게 그 말을 하자 그들이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이라니까요!”


 박준식이 소리를 질렀다.


 “석정 사랑 일당이 전국 곳곳에서 여러 범죄를 저질러서 경찰이 예전부터 놈들을 주시하고 있었대요. 그러다가 드디어 잡힌 거죠.”


 “정말 아슬아슬했다고 합니다. 놈들이 좀 있으면 활동을 접고 소화 본토로 돌아가려고 했대요. 그 직전에 용산 경찰이 잡은 거죠.”


 이태민이 옆에서 설명했다.


 혜성은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난, 난......”


 그는 입을 달싹거렸다.


 “난 완전히 끝난 줄 알았는데......”


 혜성은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완전히 끝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끝나는 거라고......”


 혜성은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사장님? 괜찮으신가요?”


 이태민이 걱정스럽게 묻자 박준식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장님, 아무래도 너무 좋아서 제정신이 아니군요?”


 “다들 잠깐만 밖으로 나가 주실래요?”


 “네?”


 “잠깐 생각을 좀 하고 싶어서요. 부탁입니다.”


 박준식과 이태민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순순히 밖으로 나갔다.


 혜성은 문을 닫고 문에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믿을 수 없는 행운이 다시 찾아왔지만, 그는 이 기회를 잡는 게 두려웠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이제 포기하는 쪽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와서 자신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그는 두려움에 떨며 생각했다.


 ‘또 여의주를 잃으면 어떡하지? 아니면 내가 결국 주문을 완성하지 못하면?’


 도대체 난 지금 왜 이러는 걸까? 다시 책을 만들 수 있는 희망이 생겼는데 왜 이러는 거지?


 ‘왜냐하면...... 난 이제 희망이 두렵거든.’


 그게 문제였다. 그는 거듭된 좌절 끝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석정 사랑에게 여의주를 빼앗기고 김구름이 의식을 잃은 후로 그의 마음은 책을 포기하기 직전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많은 것을 의미했다. 책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떨어져 나가기 직전인 살덩어리를 다시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태민과 박준식은 여의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그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지만 그는 자신에게 다시 시작할 힘이 남아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빚 때문에 다리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 빚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해서 삶에 대한 애착이 솟아나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혜성은 그렇게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빠르게 반추했다.


 마법사의 꿈을 품기 시작한 어린 시절, 부모님의 죽음과 자퇴, 주문을 쓰던 수많은 나날들, 그리고 불사신 서점에 들어온 이후......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까지 책을 한 권도 쓰지 못했구나. 최고의 책을 쓰는 게 평생의 꿈이었지만, 아직도 꿈을 이루지 못했구나.’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네 꿈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이대로 포기한다면 말이야.


 그는 다시 이센스의 노래 가사를 떠올렸다.


 아직 내가 못 꺼내놓은 게 있어. 그것만 찾으면 가짜와 내가 구분될 수 있어.


 이 가짜로 가득한 세상에서, 어쩌면 나 자신도 대부분 거짓과 어설픔으로 이루어진 몸뚱이에서, 나는 진실한 뭔가를 내 속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반드시.


 혜성은 주먹을 쥐었다.


 포기하지 말자.


 살아있는 한, 포기하지 말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다.


 이태민과 박준식은 응접실에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혜성이 나타나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좀 어떠세요?”


 이태민이 물었다.


 “여러분, 갑시다.”


 혜성이 말했다.


 “네? 어디로요?”


 “붕새의 여의주를 찾으러 가야죠.”


 혜성은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다시 책을 만들어 봐요.”     




 그들은 간단한 짐을 꾸려 용산으로 향했다. 혜성은 두 직원과 세 명의 경호원과 함께 용산행 기차를 탔다.


 혜성은 기차 안에서 수첩을 꺼내 주문을 썼다. 주문을 구상하는 것은 붕새의 여의주를 빼앗긴 후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혜성은 주문을 쓰면서 다시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그것이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기차 안에서 박준식은 간식을 한 아름 사서 경호원들과 나눠 먹었다. 그 옆에 앉은 이태민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뭐가요?”


 혜성이 물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용산에 소화가 지은 거대한 포로수용소가 있잖아요. 아시아 전쟁에서 끌고 온 포로들을 가두는 곳 말이에요. 뉴스를 보니까 소화에서 지금 수만 명의 노예들을 그곳으로 옮기고 있대요.”


 “전쟁 포로가 아니라 노예들을 포로수용소로 옮긴다고?”


 박준식이 물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일까?”


 “노예들을 이용해서 수용소를 공사하려는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노예들에게 무슨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포로들과 함께 수용소 안에 집어넣고 있대요. 사실 석정사랑이 잡힌 이유도, 전국 곳곳에서 숱한 범죄를 저지르던 석정 사랑이 포로수용소에 노예를 납품하는 일에 돈 냄새를 맡고 용산에 와서 일을 벌이려다가 탐정들의 눈에 띄어서 용산 경찰이 잡은 것이거든요. 제국은 왜 노예들을 옮기는 걸까요? 아무래도 이상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이상하군.”


 박준식이 과자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근데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는 일단 책을 만드는 거나 신경 쓰자고. 용산 경찰한테 전화해서 우리가 간다고 말은 했지?”


 “당연히 했지.”


 “요즘 제국의 전쟁 소식은 어때요? 새로 뜬 뉴스가 있나요? 제가 그동안 뉴스를 안 봐서요.”


 혜성이 물었다.


 “소화를 제외한 다른 추축국 동맹국들이 전부 항복한 거 아세요?”


 이태민의 말에 혜성은 깜짝 놀랐다.


 “정말요?”


 “어? 모르셨어요?”


 옆에 있던 박준식이 끼어들었다.


 “그건 최근 일이잖아. 사장님은 몇 주 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으니까 모를 수도 있지.”


 “아, 모르셨구나. 소화를 제외하고 추축국들이 모두 항복했어요. 이제 연합군에 저항하고 있는 건 소화뿐이에요.”


 “와, 그랬구나......”


 혜성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럼 잘하면 우리나라도 수십 년간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러길 바라야죠. 제국이 빨리 무너져야 강점기가 끝날 테니까요.”


 “혹시 제국이 노예들을 모아서 용산의 포로수용소로 보내는 것도 그거랑 관련이 있는 거 아닐까?”


 박준식이 과자를 씹으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 제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태민의 말에 혜성은 주문을 쓰던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열차가 용산역에 도착했다. 경찰서는 용산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포로수용소 역시 역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던 터라 이곳의 분위기는 다소 황량했다.


 혜성 일행은 경찰서에 들러 신분증을 보여주고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경찰은 그들을 물품 보관소로 데려갔다.


 “여기 있는 것들이 석정 사랑 일당에게서 압류한 것들입니다. 혹시 이 중에 찾으시는 게 있습니까?”


 그것은 한눈에 들어왔다.


 “네! 이거예요.”


 박준식이 달려가서 투명한 구를 들어 올렸다. 혜성과 이태민도 그 물건을 살펴봤다.


 확실했다. 붕새의 여의주였다.


 “이게 맞습니까?”


 혜성은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경찰에게 맞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간단한 서류를 작성한 뒤 여의주를 넘겨받았다. 경찰은 그 물건을 그저 값비싼 장식품으로만 알고 있었다.


 혜성 일행은 여의주를 들고 경찰서를 나왔다. 박준식은 만세를 하며 외쳤다.


 “만세! 다시 여의주를 되찾았다!”


 “축하드립니다.”


 경호원들이 옆에서 박수를 쳤다. 혜성은 여의주를 품에 꼭 껴안았다.


 “이제 다시는 잃지 않겠어.”


 혜성은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다시 서점으로 돌아가시죠.”


 “에이, 뭘 그렇게 서두르세요. 우리 아직 점심도 안 먹었는데 이 근처에서 뭐 좀 먹고 가요.”


 혜성의 말에 박준식이 말했다.


 “기차 안에서 과자를 그렇게 먹었으면서 배가 고프냐?”


 이태민이 핀잔을 줬다.


 “과자랑 밥은 다르다고. 넌 배 안 고프냐?”


 “물론 고프지.”


 그러자 혜성이 말했다.


 “그럼 점심부터 먹고 가시죠. 안 그래도 지금 점심때가 한참 지났긴 했으니까요.”


 그들은 근처에 있던 식당에 들어갔다. 박준식이 생선이 먹고 싶다고 해서 매운탕 집에 들어갔다. 혜성은 자리에 앉아서도 여의주를 넣은 가방을 계속 끌어안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안고 있지 않으셔도 돼요.”


 이태민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 아는데 그냥 불안해서요.”


 “하하! 사장님,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떻게 흑마법서를 씁니까?”


 박준식이 먼저 나온 밑반찬을 집어 먹으며 웃었다.


 가게 안에 걸려 있는 TV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연합군은 추축국 동맹을 모두 무너뜨리고 이제 유일하게 항전 중인 소화 제국에게 즉각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황제는 오늘 아침 공개적으로 항복을 거절했다. 황제는 제국은 끝까지 싸울 것이며 아시아의 통일이 머지않았으니 모든 제국인들이 한 마음으로 싸울 것이라 역설했다.


 “미친 새끼.”


 이태민이 중얼거렸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그래봐야 자기들만 더 힘들어지지.”


 박준식도 거들었다.


 “황제도 알 거야.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걸. 제국은 옛날부터 가망이 없었어. 전쟁도 너무 오래 했잖아.”


 “근데 저렇게 자신만만한 게 이상하지 않아?”


 이태민의 말에 박준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네 말대로 미친놈인 거지. 제국 전체가 미쳤어. 전쟁 때문에 모든 걸 쥐어짜 내서 답이 없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잖아.”


 그들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혜성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왕이었다.


 “저 잠시 통화 좀.”


 혜성은 밖으로 나와서 전화를 받았다.


 “윤아, 무슨 일이야?”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혜성은 웃음을 터뜨렸다.


 “중요한 일이었네.”


 “여의주는 찾았어?”


 “찾았어.”


 여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정말 다행이다.”


 “그러게. 나도 꿈인지 생시인지 싶어.”


 “그럼 이제 다시 책을 만들 거지?”


 “응, 다시 시작하려고.”


 혜성은 힘주어 대답했다.


 “지금까지 한동안 너무 우울하게 살았는데, 이걸 되찾으니까 다시 희망이 생기네. 물론 희망이 생겨서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아. 다시 시작할 거야.”


 “그래, 바로 그거야. 네가 기운을 회복해서 너무 다행이다.”


 여왕의 목소리에서 기쁨이 묻어났다.


 “네 덕분이야. 네가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 준 게 큰 힘이 됐어.”


 “하하, 내가 뭘.”


 “이제 주문도 거의 다 써가고 있거든. 아마도 조만간......”


 그때 갑자기 어떤 사람과 부딪히는 바람에 혜성은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그는 땅에 떨어진 휴대폰을 집어 들었지만 이미 통화는 끊긴 뒤였다.


 혜성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사람은 사과도 없이 계속 미친 듯이 달려가며 멀어지고 있었다.


 “뭐야......”


 혜성이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또 다른 사람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혜성은 뒤를 돌아봤다.


 맞은편 길가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혜성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혜성을 지나쳐 계속해서 미친 듯이 뛰어갔다.


 혜성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그들을 잠시 쳐다보다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밖에 무슨 일이에요?”


 이태민이 물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사람들이 막 뛰어가는데......”


 그때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혜성은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식당 안에 앉아 있던 직원들과 경호원들도 밖으로 나왔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로부터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 대부분은 똑같은 회색 옷을 걸치고 있었다. 달리던 사람 중 한 명이 지나가던 차에 치였다. 혜성은 그 모습에 헉하고 놀랐지만,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도로와 인도를 가로질러 계속해서 정신없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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