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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문 Apr 03. 2024

두발자전거

2024.03.01.(금)

때는 2000년, 우리 가족이 대전을 떠나 잠시 강원도 동해시에 살 때이다. 어느 날  아빠는 내게 말했다.



"지문아 자전거 타러 가자!"



아빠는 자전거를 타러 가자면서 파란 공구박스를 들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아빠의 모습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지만 자전거를 탄다는 즐거움이 앞섰던 나는 헬멧을 챙기고 자전거를 끌며 아빠를 얼른 따라나섰다. 동생도 자신의 자전거를 끌고 같이 따라 나왔다.



두 대의 자전거를 끌며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파트 101동 앞에 있던 주차장이었다. 50m 정도 되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쭉 펼쳐져 있던 그 길은 당시 우리에게 최고의 자전거 도로였다. 동생은 딱딱한 보조바퀴와 도로가 합주하는 드르륵 소리를 내며 신나게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나도 동생을 따라 자전거를 타려고 하는데 아빠가 나를 멈춰 세웠다.



"너는 오늘 두발자전거를 탈 거야"

"아 왜! 싫어"

"야 인마 너 언제까지 보조바퀴 달고 탈 거야. 아빠는 너보다 어렸을 때부터 두발자전거를 타고 다녔어. 그리고 자전거는 두발자전거가 훨씬 빠르고 재밌는 거야. 아빠가 잘 가르쳐 줄게"



아빠는 나의 네발자전거를 가져가더니 공구함에서 장비를 꺼내 내 자전거의 빨간 보조바퀴를 떼기 시작했다. 나는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내 보조바퀴가 분해되는 것을 구경했다. 아빠는 양쪽에 있던 두 개의 보조바퀴를 떼어 낸 뒤 자전거 뒷바퀴 왼쪽에 자전거 보조 다리를 달았다. 고작 뒷바퀴의 일부가 바뀐 것에 불과했던 내 자전거는 마치 전체가 바뀐 것처럼 어색했다. 아빠는 공구함을 정리한 뒤 내게 말했다.



"먼저 자전거 세우는 방법부터 알려줄게. 보조바퀴가 있을 때는 자전거를 그냥 세워도 됐지만 두발자전거는 그냥 세우면 쓰러질 거 아니야 그래서 한쪽에 보조 다리를 설치한 거야. 이렇게 자전거 왼쪽 핸들이랑 좌석 뒷부분 손잡이를 잡고 발로 위에서 아래로 툭 치면 내려와. 자전거를 세우고 싶을 땐 이렇게 다리를 내려놓고 세우면 돼. 봐봐 잘 서있지?"



아빠 말대로 자전거는 왼쪽으로 핸들이 기운 체 두 바퀴와 보조 다리만으로도 넘어지지 않고 잘 서있었다. 땅에 닿는 부분이 네 부분이 아니라 세 부분밖에 없는데도 서있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보조 다리를 올리는 방법은 비슷한데 조금 달라. 아무 데나 찬다고 보조 다리가 올라가는 게 아니거든. 여기 보조 다리 윗부분을 보면 스프링에 연결돼서 튀어나온 부분이 보이지? 여기를 눌러야 보조 다리가 올라가. 보조 다리가 쉽게 올라간다면 그만큼 자전거가 쉽게 넘어질 거 아니야. 그래서 이렇게 보조 다리가 내려오는 건 쉽지만 올라가는 건 어렵도록 스프링이 설치돼 있는 거야. 여기 튀어나온 부분을 발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툭 치면서 올려주면 돼. 자 너가 한 번 해봐"



아빠는 자전거 보조 다리를 툭툭 치며 시범을 보이더니 나에게도 똑같이 시켰다. 나는 아빠가 가르쳐 준 대로 자전거를 잡고 보조 다리를 툭툭 쳤다. 아빠 말대로 보조 다리를 내릴 땐 아무 데나 쳐도 됐지만 올릴 땐 튀어나온 부분을 정확히 쳐줘야 올라갔다. 보조 다리를 툭툭 찰 때마다 자전거에 울리는 팅~ 소리가 묘한 쾌감이 있었다.



"가끔 자전거를 타는 중에 인도를 내려가거나 해서 충격을 받으면 이 보조 다리가 내려올 때가 있거든? 팅 소리가 나서 쉽게 알 수 있을 거야. 그땐 당황하지 말고 왼쪽 다리로 그 튀어나온 부분을 차 준다 생각하며 툭 치면 돼 알겠지?"



나는 아빠 말을 제대로 이해 못 했지만 빨리 두발자전거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무슨 말인지 완벽히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줄게 여기 앉아봐. 멈춰있는 건 간단해 그냥 두발자전거에 앉아서 양발로 땅을 짚으면 돼 한번 해봐"



아빠 말대로 나는 자전거에 앉아 두 발로 땅을 짚었다. 내 자전거는 '넘어지는 게 뭐죠?'라고 말하는 듯 꿋꿋이 서있었다. 나는 일부러 한쪽 다리를 굽히며 자전거를 최대한 옆으로 기울여보기도 했다. 평소 같았으면 보조바퀴에 걸려 불가능했을 각도들이 가능하자 느낌이 이상했다. 마치 이가 빠진 곳을 혓바닥으로 만지는 것 같았다.



"두발자전거는 딱 세 가지만 기억하면 돼. 첫 번째는 두발자전거는 느릴수록 오히려 넘어지기 쉽다는 거야. 보통 사람들은 처음 두발자전거를 타면 속도 내는 게 무서워서 천천히 페달을 밟는데 이게 오히려 자전거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거야. 빨리 달릴수록 자전거는 안정적이게 된다는 걸 명심해"



어떻게 빨리 달릴수록 안 넘어질 수 있는 거지? 나는 아빠 말이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는 넘어질 것 같을 때는 오히려 넘어질 것 같은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며 몸을 기울여야 한다는 거야. 초보자들이 제일 많이 실수하는 게 넘어질 것 같을 때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 거거든. 그쪽으로 넘어지기 싫으니까 본능적으로 그러는 건데 이건 오히려 "저 넘어질게요" 하는 거야. 너 스키 탈 때 니가 가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지? 그거랑 똑같은 거야. 넘어질 것 같을 때는 넘어지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고 자전거를 기울여야 한다는 걸 명심해"



첫 번째도 이상했는데 두 번째도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넘어질 것 같은 방향으로 오히려 몸을 기울여야 한다니. 아빠가 나를 속이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세 번째는 뭔지 궁금해서 일단 알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속도를 내다 멈출 때는 반드시 왼쪽 브레이크부터 잡아야 한다는 거야. 왼쪽 브레이크는 뒷바퀴 브레이크고 오른쪽 브레이크는 앞바퀴 브레이크거든? 초보자들은 자전거를 타다가 갑자기 멈출 때 오른쪽 브레이크를 잡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른손잡이라서 오른쪽이 익숙하니까 이러는 건데 이게 진짜 위험한 거야. 속도가 나는 중에 앞바퀴가 갑자기 멈추면 뒷바퀴가 튀어 오르면서 앞으로 꼬꾸라질 수가 있어. 특히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 주의해야 해. 항상 브레이크는 왼쪽부터 잡고 속도가 줄었다 싶을 때 오른쪽도 같이 잡는 거야 알겠지?"



브레이크를 잡는데 자전거가 넘어간다니 이게 당최 무슨 소린지 이해가 하나도 안 갔다. 아빠 말을 들어보니 두발자전거는 위험 투성이었다. 두발자전거를 타는 게 두렵게 느껴졌다. 옆에서 자신이 얼마나 안전한지도 모른 체 해맑게 웃으며 네발자전거를 타는 동생이 부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위험한데 두발자전거를 꼭 타야 해? 그냥 다시 보조바퀴 달면 안 돼?"

"말로 해서 무서운 거야. 한 번만 타보면 아빠 말이 무슨 말인지 한 번에 이해가 될 거야. 아빠가 뒤에서 잘 잡아줄 테니까 한번 페달 밟아봐"



아빠는 자전거 안장 뒤에 있던 손잡이를 꽉 잡았다. 아빠가 제대로 잡고 있나 실험하려고 발을 살짝 땅에서 떼봤는데 자전거는 꼿꼿이 서있었다. 마치 보조바퀴가 다시 달린 것 같았다. 난 마음의 안정을 얻고 아빠 말대로 조금씩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렇지! 그렇지! 안 무섭지? 자전거가 넘어질 것 같을 땐 핸들을 그쪽으로 꺾으면 돼 옳지 그렇게!"



아빠 말이 맞았다. 나는 넘어질 것 같은 방향으로 계속 핸들을 꺾으며 아슬아슬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 자꾸 자전거가 휘청거리지? 너가 천천히 가고 있어서 그런 거야. 아빠가 계속 잡고 있을 테니까 페달을 더 밟아서 속도를 내봐. 그럼 오히려 자전거가 안정될 거야. 브레이크는 왼쪽 먼저 잡아야 한다는 것도 꼭 기억하고"



아빠 말대로 속도를 내자 휘청거림이 적어졌다. 중간중간 브레이크를 잡는 연습도 했다. 말로만 들을 땐 무슨 소린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갔는데 자전거를 타는 순간 아빠 말이 단번에 이해됐다. 너무 재밌었다.



"그렇지! 어때 두발자전거가 훨씬 더 재밌지? 아빠가 계속 잡아줄 테니까 최대한 빠르게 페달을 밟아봐"



나는 아빠 말대로 더욱더 페달을 밟았다. 기분 좋은 바람이 나의 양 볼을 시원하게 스쳤다.



"아빠가 잡고 있으니까 계속 달려!"



아빠의 말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빠는 나도 모르게 자전거에서 손을 뗀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빠 없이 두발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작은 두려움과 커다란 놀라움이 느껴졌다. 세상은 내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빠 말대로 두발자전거는 세 가지가 전부였다. 나는 신이 나서 그대로 아파트 단지 정문을 나가 내가 평소 걸어 다녔던 문방구 앞 인도를 내달렸다. 내게 익숙하던 풍경이 익숙하지 않은 속도로 지나갔다.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내가 믿기지 않았다. 온 세상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은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 첫 번째 성취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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