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2. 20.(화)
우리 엄마는 김창옥 강연 영상을 보며 에헤헤헤헤헿헤 하고 계속 웃는다. 내가 조용히 하라고 해도 들은 체도 안 한다. 소니의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의 폐해다. 엄마는 집이 떠나가라 웃고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웃는다. 나의 몰입을 방해하는 엄마의 웃음이 난 싫고도 좋다.
아침밥을 먹는데 손발이 시렸다. 엄마가 부엌 창문을 열어뒀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손발이 시려우니 창문을 닫아달라고 말했다. 씹혔다. 엄마는 소니의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무인도에서 지나가는 배에 sos 요청을 날리듯 엄마 눈에 띄기 위한 몸짓을 계속 날렸다. 드디어 엄마가 내 몸짓을 발견하고 헤드셋을 벗었다.
“왜?”
“창문 좀 닫아줘 추워”
엄마는 창문을 닫은 뒤 헤드셋을 다시 썼다. 5분 정도 지나자 엄마는 갑자기 창문을 다시 벌컥 연다. 이유는 요리를 하던 중 음식 냄새가 났거나 몸에 열이 올랐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엄마는 본인이 창문을 열었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 것이 분명하다. 나는 또다시 눈에 띄기 위한 몸짓을 날린다.
엄마는 출근하기 전에 가끔씩 내게 본인의 옷 스타일에 대해 묻는다.
“지문아 엄마 오늘 옷 어때? 한번 봐봐!”
나는 백설 공주에 나오는 마녀의 거울처럼 이야기를 한다.
“오 완전 부잣집 사모님 같은데? 지적이고 우아해 보여. 오늘 무슨 날이야?”
“엄마 상담 있거든! 멋있게 보여야지”
“그래 잘하고 와~”
아직 한발 남았다.
“신발은 어때?”
“어 예뻐 잘하고 와”
몇 년 전 엄마는 스마트워치를 샀다. 무려 lte까지 지원하는 모델을 샀다. 엄마는 산책을 나갈 때마다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게 무겁다고 했다. 그렇다고 휴대폰을 아예 두고 가면 급한 전화를 받을 수 없기에 휴대폰이 없어도 전화를 할 수 있는 lte까지 지원하는 스마트워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오늘도 엄마는 스마트워치를 거실 충전기에 두고 핸드폰만 들고나갔다. 어떻게 하면 필요해서 샀다는 시계를 이토록 자주 까먹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거실에서 책을 읽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는 것을 충전 중인 스마트워치가 강렬한 진동 소리를 내며 내게 알려준다. 나는 얕은 분노와 귀여움을 함께 느끼며 엄마의 스마트워치를 강제 종료한다.
나는 항상 블로그 알림을 꺼놓는다. 무언가에 집중할 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블로그 알림은 집중력이 흐트러질 쯤에 한 번씩 몰아서 확인한다. 하지만 나의 방해금지 모드는 엄마가 있을 때는 작동하지 않는다. 엄마의 음성 알림 서비스가 시도 때도 없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문아 그 댓글 봤어? ~라고 하시는데 엄청 재치 있으시더라 ㅋㅋㅋㅋ.”
“지문아 그 댓글 봤어? ~라고 하시는데 엄청 잘 썼어 작가 같아.”
오늘도 엄마는 퇴근하자마자 신청한 적도 없던 음성 알림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엄마의 알림이 피곤하고 즐겁다.
2023년 8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가로 내려온 나의 생활은 서울에서의 생활과 다를 게 없었다. 틈만 나면 유튜브, 웹툰을 보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식단 관리는 전혀 없이 먹고 싶은 것들을 모두 먹었다. 그렇게 10월이 되자 나의 우울감을 한없이 받아주며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우울했던 원인은 결국 건강 문제였다. 당시 내가 겪고 있던 건강 문제는 크론병 변비, 오른쪽 어깨 통증, 전신 피부 질환으로 크게 세 가지였다. 먼저 하나라도 고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피부 질환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 결과 유제품과 밀가루가 피부 질환에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점점 줄여나갔다. 양을 서서히 줄여나가다가 일주일 만에 완전히 끊을 수 있었다.
2023년 11월이 되자 피부 질환이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지만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내 친구들은 모두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멈춰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의 복잡한 머릿속을 잠재우며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싶어 무작정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정말 효과적이었다.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어서 복잡했던 나의 머릿속 생각들이 글쓰기를 통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정렬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의 기분이나 상태, 서울에서 겪었던 일 등 나에 대한 이야기만 썼다. 글을 쓰다 보니 더욱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작가들의 강연 영상을 찾아봤다. 그러다 2024년 2월 어느 주말에 우연히 이슬아 작가님의 세바시 강연 영상을 봤다. 이슬아 작가님은 그 강연에서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살면서 너무 아름다운 일을 겪거나 너무 감탄스러운 상대를 만나고 나면 그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쉽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냥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들고요.
나 혼자서만 알기에는 아깝다는 마음도 들고요.
이슬아 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며 나도 내 주변 사람들을 면밀하게 관찰하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감사하게도 너무 감탄스러운 상대를 집에서 매일 본다. 바로 우리 엄마다. 엄마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라 가끔 나를 화나게 하지만 엄마의 행동은 그 자체로 엉뚱하고 사랑스러워서 엄마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투병생활에 많은 힘이 된다. 이슬아 작가님 말처럼 나도 내가 보는 엄마의 모습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쉬워서, 그냥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나 혼자서만 알기에는 아까워서 2024년 2월 20일 화요일 하루동안 엄마를 관찰하는 글을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