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9.(목)
어릴 적 나는 오줌을 자주 지렸다. 아무 때나 지린 건 아니고 웃을 때마다 지렸다. 오줌을 지릴 정도로 웃겼던 건지 요도가 약했던 건지 모르겠다. 아니, 둘 다였던 것 같다. 난 빵 터질 때마다 새우처럼 등을 꺾고 온몸에 힘을 주며 박장대소를 했는데 나의 뇌가 '이 양반이 소변기 앞에 섰구나'라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빵 터질 때와 오줌 쌀 때 배에 힘이 비스무레하게 들어가는 것 같다.
큰 삼촌네 집에 온 가족이 모인 어느 명절날이었다. 당시 난 초등학생이었다. 사촌 형과 방에서 놀다가 웃음이 터졌다. 오줌도 터졌다. 나의 소중이가 좌회전 중이었는지 뜨거운 용암같은 오줌이 왼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식은땀도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시간이 없었다. 바지 색이 진해지기 전에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사촌 형한테 들킨다면 개 쪽팔리니까 말이다.
"형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급해가지고!"
방에서 나가며 슬쩍 확인해 보니 나의 다리 안쪽 피부와 바지가 접착제를 붙인 것 마냥 착 달라붙어 있었다. 이미 내가 알던 바지 색이 아니었다. 부엌과 거실에 계신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거실 화장실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거실 화장실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벌컥 열었다. 아니, 벌컥 열고 싶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누군가 안에 있었다. 화장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사람 있어요~"
이런 제기랄 거. 엄마였다. 아빠가 엄마 보고 괜히 누에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진짜 볼 때마다 똥을 싸는 것 같다. 명절이라 먹은 게 많으니 싸는 것도 많았다. 엄마는 정말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 생각하며 다급하게 안방 화장실로 뛰어갔다. 바지에 오줌을 지린 채 외삼촌의 안방에 들어오니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의 부끄러움을 처리하는 것이 먼저였다. 다행히 안방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방 화장실에 후다닥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바지에 벼락같은 무늬가 생겨있었다. 그날 나는 집에서 속옷만 가져왔기에 여유분의 바지가 없었다.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날지 생각했다.
'실수로 샤워기를 틀었다고 하고 물로 적실까? 아니야 어떻게 실수로 샤워부스에 들어가서 샤워기까지 틀어 말이 안 돼. 오줌 묻은 곳만 빨고 드라이기로 말려볼까? 아니 한쪽이 완전히 오줌으로 뒤범벅인데 이게 드라이기로 금방 마를 수가 있나? 하...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이 없었다. 부끄럽지만 엄마에게 솔직히 말한 뒤 가져온 속옷과 친척 형 바지를 하나 빌려 입는 방법뿐이었다. 섬세하지 못한 엄마를 슬쩍 불러서 오줌 쌌다고 말하면 "뭐라고 지문아?! 오줌 쌌다고??!!"라고 말하며 동네방네 소문낼 장면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얼굴이 빨개졌다. 절망적이었다.
그때였다. 화장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아니 잘 들어보니 견기척이었다. 바로 외삼촌네 강아지 하늘이었다. 안방 화장실에 오줌을 누러 온 것이었다. 그때 머리가 번뜩했다.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착하게 살게요'
나는 감사의 기도를 날리며 하늘이가 화장실 문을 열어달라고 낑낑거리는 것을 무시했다. 평소에 하늘이가 화장실 문이 닫혀있을 때마다 화장실 문 앞 마루에 오줌을 쌌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자 하늘이는 화장실 문 앞 마루에 오줌을 싸고 떠나버렸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하늘이의 오줌 위에 철퍼덕 앉았다. 나의 엉덩이와 허벅지에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곤 삼촌네 집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아악!!! 하늘이 이 자식 오줌을 어따 싸는 거야!!! 엄마!!!!!!!"
"헉 지문아!!! 무슨 일이야!!!"
"아니 화장실에서 똥 싸고 나와서 바닥에 앉아서 양말 신으려다가 하늘이가 싸놓은 오줌에 앉아버렸어 ㅠㅠ"
그렇게 난 하늘이 도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어느 날 아랫배로부터 배변 신호를 받았다. 신호를 분석한 결과 일반적인 똥이 아닌 파인애플에 며칠 재어둔 갈비처럼 푸슬푸슬 한 똥일 확률이 높았다. 이런 똥은 소름 돋는 복통을 동반하기에 일반적인 바나나 똥에 비해 참기가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 다행히 당시의 나는 집에 있었기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화장실 앞으로 갔다.
난 어릴 적에 변을 볼 때마다 하반신을 통째로 무장 해제했다. 내 두 다리가 스노보드를 타는 것 마냥 바지에 묶여 행동반경이 제한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바닥에 있는 물기가 바지에 묻는 것도 찝찝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변을 보기 위해 하반신을 무장 해제하고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배트맨처럼 갑자기 아빠가 나타나더니 나를 번쩍 들고는 거실로 데려갔다. 그리곤 내게 말했다.
"못 가"
'뭔 소리지 이건?' 나는 아빠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화장실에 빨리 가려 했다. 이미 내 몸은 내가 짧은 시간 내에 변을 보는 줄 알고 괄약근의 긴장을 일부 풀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빠랑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아빠를 지나쳐 가려는 순간 아빠는 올림픽 레슬링 선수마냥 나를 번쩍 들더니 다시 거실로 내동댕이 쳤다.
"못 간다고"
아빠의 눈빛을 보니 진심이었다. 난 울부짖으며 말했다.
"아니 나 지금 진짜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빨리 비켜!! 안 비키면 싼다?!!"
나는 다시 화장실로 뛰쳐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레슬링 경기장 로프 반동에 걸린 것 마냥 아빠에게 걸려 거실로 되돌아와버렸다. 아빠의 장난도 똥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싸버렸다. 얌전하게 싸긴 싫었다. 어떻게든 아빠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나는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마냥 아빠에게 붙어 마구 싸버렸다.
"아니 이놈이 미쳤나!"
"아악!!! 아빠 때문이잖아! 아빠 때문이잖아!!!"
아빠와 나 그리고 똥은 거실에서 함께 뒹굴었다. 그날 이후로 아빠는 내게 화장실 막기 장난은 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