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1. 19.(금)
내 여자친구에게는 세기의 라이벌이 있었다.
바로 나의 반려견 초코였다.
여자친구는 초코를 향한 나의 관심과 애정을 늘 질투했다.
내가 여자친구에게는 애교가 거의 없었지만 초코에게는 "우리 쪾꼬!!! 우리 쪾꼬는 왜 이렇게 귀여운 거양!!! 형아 미치겠어 정말 ❤️" 하고 조수미 뺨치는 하이톤으로 애교 폭탄을 퍼부었기 때문에다.
솔직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여자친구는 2016년에 처음 만났지만 초코는 2006에 처음 만났는데 말이다.
여자친구를 만나기 이전부터 초코와 나는 강산이 변하는 걸 함께 지켜본 가족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돌연 미친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 미친 짓이란 바로 내가 여자친구 집에 도착할 때마다 여자친구는 뭘 하고 있든지 간에 하던 일을 멈추고 벌떡 일어나 현관문으로 "오빠~!" 하며 나를 마중 나오는 것이었다.
이걸 처음 봤을 때 난 이렇게 생각했다.
'얘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초코를 질투하다 못해 돌아버렸나? 왜 초코를 따라 하지? 미친 건가?'
실제로 한 생각이었다.
요새는 사회화를 통해 학습된 공감을 적절히 사용하지만 당시의 난 친구들에게 맞는 말을 좆같이 한다는 소리를 듣는 T발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친구에게 이런 나의 속마음을 솔직히 말할 순 없었기에 최대한 스윗하게 이야기했다.
"뭐 해? 비켜"
물론 당시 내 기준에서의 스윗함이다.
속으로는 미친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만 말한 거면 얼마나 스윗한가?
여자친구는 이날 이후로 매번 나를 마중 나왔다.
미친 짓도 계속 보니 익숙해져 나중에는 좀 더 부드럽게 반응했다.
"오빠~! 안아죠!"
"비켜 손부터 닦게"
시간이 흘러 2023년 1월 16일 17년 동안 나와 함께했던 초코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집에 들어오면 항상 나를 마중 나오던 초코가 없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집에 들어오면 나를 반겨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초코가 떠난 뒤에도 매번 나를 마중 나오는 여자친구가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누군가 나를 마중 나온다는 게 이렇게 따듯하고 좋은 거였구나 싶었다.
마중의 따뜻함을 알게 된 나는 엄마와 동생이 집에 돌아올 때마다 마중을 나가기로 하기로 했다.
직접 해보니 마중을 나가는 건 내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마중을 나가기 위해 하던 일을 강제로 멈출 때마다 나의 뇌 자원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보다 생산성을 중시했기에 직접 마중 나가는 것을 관뒀다.
대신 내 방이 현관문 바로 옆이었기에 엄마와 동생일 돌아오면 그냥 정겹게 "어 왔어~?"만 하기로 했다.
직접 마중을 나가보니 내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몇 년간 꾸준히 개(강아지)같이 나를 마중 나오던 여자친구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더 이상 마중 나오지 않는 초코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모두 여자친구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