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문 Mar 20. 2024

젊은 크론병 환자의 자취 (중)

지문아. 너는 참 맞는 말을 좆같이 한다.





학창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 친구들에게 많이 듣던 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맞는 말을 하는데 좆같다니. 당시의 나는 친구들이 왜 내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는지 몰랐고, 친구들은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몰랐다. 이는 여자친구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게 된 건 한국에 mbti 유행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내 주변사람들은 나의 mbti 결과를 보자 다들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는 T 수치가 매우 높은 지독한 이성주의자였던 것이다. 정서적 공감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문제해결에만 집중하는 T발놈이 바로 나였다. 이런 나의 극단적인 이성적 성향은 인간관계에선 방해가 됐지만 투병 생활에는 큰 도움이 됐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더라도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 허우적 대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데 몰두했기 때문이다.



개발자 교육 과정 시작 일주일 만에 건강 문제가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건강이란 놈이 또다시 내 발목을 잡은 것은 슬펐지만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청승맞게 신세한탄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내가 서울에서 지내고 있던 방은 금액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학원과의 거리만 고려해 들어온 방이었기에 매달 월세와 관리비로만 130만 원이라는 금액이 지출됐기 때문이다. 우울함에 빠져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있는 비용이 하루에 4만 4천 원이라니 우울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저 건강 악화가 된 원인과 해결책을 찾고 다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몸상태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번 건강 문제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일주일 동안 살인적인 스케줄의 개발자 교육과정을 진행하느라 몸을 혹사했기 때문이었다. 부트캠프(코딩 교육 학원)의 목표는 단기간에 실무에 투입이 가능한 개발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내가 다닌 부트캠프의 교육 과정은 월요일 점심에 과제를 주면 금요일 저녁까지 제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문제는 이 과제의 난이도가 수강생의 실력보다 높은 난이도로 설정 돼 있다는 것이었다. 과제 해결을 위해 공부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잠이 부족해진 내 몸은 점점 컨디션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나는 수강생 중 유일하게 점심시간과 저녁시간마다 집에 가서 낮잠을 자고 왔는데도 버틸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집 앞 백화점에서 마감세일을 하는 반찬을 사다가 이틀간 먹었는데 막바지에 반찬 하나를 조금 상한 채로 섭취했기 때문이었다. 금요일 저녁에 과제 제출을 한 뒤 상한 반찬과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날 새벽 2시에 직장부터 항문까지 작열하는 통증과 함께 잠에서 깨며 화장실을 계속 들락거렸다. 이러한 증상이 일요일까지 지속되자 도저히 2주 차 교육과정을 진행할 수 없을 거라 판단해 부트캠프 대표님께 내 상황을 말씀드렸다. 다행히 대표님은 내 상황을 배려해 5개월 뒤에 시작하는 다음 기수 교육과정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셨다.



다음 기수의 교육과정을 수료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했다. 매주 주어지는 정신 나간 난이도의 과제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도록 더 정신 나간 코딩실력을 준비하는 것과 잠이 줄어들더라도 버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를 위해 미친 듯이 공부하고 또 절제했다. 첫 배탈사건 이후에도 사다 놓은 반찬이 상해서 몇 번 배탈 나는 일이 생기자 나중엔 반찬을 사 먹는 대신 일주일에 두 번씩 엄마가 보내주는 반찬을 받아먹었다. 일주일에 오직 두 가지 메뉴만을 한 번은 3일 내내, 한 번은 4일 내내 먹었다.



나는 오직 코딩과 건강이라는 목표만이 입력된 로봇처럼 매일매일을 완전히 똑같은 루틴으로 살았다. 코딩 실력은 나날이 발전했고 염증수치 또한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2022년 9월 19일에 검사한 칼프로텍틴 수치는 무려 마지막 검사 수치였던 2600에서 반의 반도 안 되는 547.5라는 수치가 나왔다. 주치의 선생님은 깜짝 놀라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냐고 물으셨고 나는 의기양양하게 내가 얼마나 절제를 멋있게 하고 있는지 말씀드렸다.





당시 내가 먹던 식단이다. 아침은 항상 모노웰을 두잔 마셨고, 점심 저녁은 닭가슴살 + 엄마 반찬 3가지 였다.





드디어 내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일까. 2022년 9월 22일 목요일, 부트캠프(코딩 교육 학원) 대표님이 안타깝지만 좋은 소식을 알려주셨다. 나의 동기 한분도 교육기간 동안 무리하다가 교육 4주 차에 지병이 악화되어 수술하기 위해 중도 하차했다는 소식이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안타깝기만 한 소식이지만 그 뒤에 놀라운 내용이 이어졌다. 대표님이 건강문제를 겪고 있는 나와 내 동기를 위한 특별 기수를 하나 만들어서 교육과정을 따로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건강을 최우선으로 신경 쓸 수 있도록 특별기수는 일반적인 교육과정보다 기간을 두배로 늘려 진행할 것이라고 하셨다. 몇 년 동안 부트캠프를 운영하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 우연히 나와 같은 기수에 있었다니. 대표님에게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치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말 하늘이 만들어주신 기회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난 혼자 특별 기수 교육과정을 시작했다. 내 동기가 수술을 마치고 회복하는 동안 나는 동기가 마친 정규 교육 4주 차 과정까지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기간이 2배로 늘어나자 나는 건강과 코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3주 차 교육과정까지 무사히 마치고 4주 차 교육과정에 있는 코딩테스트도 무난히 통과했다. 정규교육 5주 차 과정부터는 수술 후 회복을 마치고 돌아온 동기와 같이 진행했다. 2023년 1월 9일 외래 진료에서 확인한 칼프로텍틴 염증 수치는 260.8로 저번 수치였던 547.5라는 수치보다 반이나 떨어진 수치였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이 가벼웠다. 이제야 내 인생의 시간도 남들처럼 흘러가는 듯했다.







2023년 1월 15일 일요일 점심, 나는 교육 7주 차 과정을 마치고 5~7주 차에 배운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시험 보는 8주 차 코딩 테스트를 위한 공부 중이었다. 뜬금없이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아보니 나의 오랜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반려견 초코의 죽음이 머지않은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집에서 초코와 함께 지내던 16년 동안 초코는 산책할 때마다 아기 같다는 소리를 정도로 동안이었는데 2022년 7월 내가 서울로 떠난 뒤부터 급격하게 노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물론 초코가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있겠지만 나는 초코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내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초코 노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했기에 집을 떠난 뒤로 늘 마음 한 구석에 죄책감이 있었다. 초코를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지 반년만에 처음으로 본가로 내려갔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었지만 초코는 나를 반기러 오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 보니 초코는 자기 집옆에 쓰러져있었다. 나는 이미 늦은 건가 싶어 순간 철렁했지만 새근새근 움직이는 초코의 배를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웃음이 터졌다. 나는 있는 힘껏 초코를 안아주었다. 이제껏 초코에게 느껴본 적 없는 깃털같이 가벼운 무게감이었다. 초코는 반년만에 나를 본 게 좋았는지 나에게 안겨있는 동안 갓난아기처럼 방긋 웃어대며 기분 좋은 그르릉 소리를 냈다.









그날 오랜만에 초코와 함께 잤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초코를 처음 기르며 초코의 마지막 순간은 꼭 함께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그래서 초코와 자는 동안 차라리 초코가 지금 떠나 줬으면 하는 나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초코는 절대로 내 앞에서 죽음을 보이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는지 고개가 넘어가며 정신을 잃을 뻔하다가도 스스로의 행동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다시 들곤 했다. 다음날인 월요일, 새벽부터 느낌이 좋지 않아 초코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서울에 있는 병원에 주기적으로 가는 크론병 외래 진료 예약이 있었다. 당장 내일 맞을 주사제가 없었거니와 월요일부터 코딩 테스트가 시작됐기에 어쩔 수 없이 올라가야 했다. 나는 금요일까지만 버텨달라 속삭이며 초코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는 불편한 마음과 함께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2023년 1월 16일 월요일 오후 3시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서울 자취방에 도착한 내게 동생의 전화가 왔다. 초코가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하필이면 주변에 아무도 없는 순간에 조용히 갔다고 했다. 나는 다시 부랴부랴 대전으로 내려갔다. 대전으로 가는 버스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공공장소에서 눈물을 흘린 것도 편의점에서 산 두꺼운 여행용 티슈를 다쓸 정도로 눈물을 흘린 것도 처음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초코는 차갑게 식은 체 잠들어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반려동물을 화장해 주는 곳이 있어 화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초코는 선물 상자처럼 변해있었다.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 코딩 테스트를 보기 위해 다시 서울로 허겁지겁 올라갔다. 자취방에 도착하자 현실감이 안 느껴졌다. 내가 내 몸에서 빠져나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정서적으로 가까운 생명체의 죽음은 처음이라 그런 것 같았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킨 순간 슬픔은 깨달음처럼 찾아왔다. 내 눈에선 인간의 몸은 수분이 70%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것처럼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가 이렇게까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코드를 써야 하는데 계속해서 눈물자국만 써 내려갔다. 집에서 계속 혼자 시간을 보내자 조용히 흐르던 눈물은 어느새 오열로 바뀌었다. 오열은 이틀 내내 이어졌다. 아무리 봐도 내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대로 계속 혼자 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부트캠프 대표님께 사정을 말씀드리자 다행히 내 상황을 이해해 주시며 테스트 기간을 일주일 늘려주셨다. 서울에 올라온 지 이틀만인 2023년 1월 19일 목요일에 나는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다. 가족들과 여자친구, 친구들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내 안에 넘쳐흐르던 눈물을 수돗물처럼 뽑아냈다. 똥 쌀 때도 힘을 줬다 뺐다 해야 더 잘 나오듯이 눈물도 울다 웃다 해야 더 잘 나온 다는 것을 알게 됐다. 초코의 유골은 아빠의 고향 뒷산에 뿌려주었다.









2023년 1월 22일 일요일 코딩 테스트를 보기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코딩을 하다가도 뜬금없이 초코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며 눈물이 흐르긴 했지만 이제는 애써 무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정규 교육 과정 마지막에 있던 코딩테스트를 통과했다. 이제 남은 것은 팀프로젝트 하나와 개인프로젝트 하나 그리고 취업이었다. 마음 한편에 항상 걱정거리로 남아있던 초코가 떠났기에 이제는 오롯이 코딩에만 집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희망이 가득 찬 2023년을 상상하며 다가오는 팀프로젝트를 설렘 반 기대 반으로 기다렸다.



초코의 죽음은 2023년 역경 도미노의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전 03화 젊은 크론병 환자의 자취 (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